결혼을 앞둔 딸에게 쓰는 편지 (1)

결혼을앞둔딸에게쓰는편지(1)

1975년2월18일새벽

선아,
너에게무슨할말이꼭있는것같기에붓을들었지만막상쓸려고하니순서가가려지지않는것같구나.
그실,이애비가할말이란네가생각하고처리하는사고보다나을것도없겠지만말이다.
좌우간들을만한말이있으면듣고,그렇지못하면할수없는일이다.

네가이번결혼에대해서여러가지로생각이많은듯한데,이미결정된일생일대의중대사에대해서

벌써어떤불만이나후회같은것을갖는다면너무나자기자신을천시학대하는것이아니냐.
네자신이본인을보고또어미애비가옆에서보아주고,그뿐아니라시골가정환경까지직접탐색을하고

작정한것이아니냐.
똑똑히는모르겠다마는네가불만스러워하는것은오직경제사정같은데,

만일이것이사실이라면이애비에게는할말이많다.

인생이란똑같은지점에서동일한시간에출발했을때
물론돈이나권세나명예나이런것들이많고충족한입장에서출발한사람이,그렇지못한사람보다

당분간은잘하면나을는지모른다.
그러나출발점자체가영원하다는보장은없지않느냐,또영원하다치더라도위세가지이면인간생활의전부냐

하면그렇지도않은것이다.
이런조건은생활의골격은될지언정생활에가장중요한"살"이나"피"는될수없다.
생활을느끼는인간의태도,가치관이것이중요하지않을까.

돈이나권력이나명예가가정과융합이안될경우는,요사이신흥부자들에게흔히있는

알맹이없는가정처럼변질될수도있지않느냐.
지금내이야기는우위의출발점에서스타트한후계속그위치가허물어지지않았을경우이고,

만일일생의긴여정에서굴곡이생기게된다면무에서,하위에서차곡차곡쌓아올라간사람보다는

너무나비극이클것이다.

이애비는항상결혼관에대해서한말이있다.
남남끼리만나는순간에어떻게행불행을즉석에서판가름할수있겠느냐말이다.

그래서결혼은"공집기"라는말을잘해왔다.지금도그렇다.

인생은짧다고도하고길다고도한다(뒷면으로)
그러니네게하고싶은말은출발점이남보다조건이좀나쁘다고낙심하지말라는거다.
무에서유를낳는것도인생의희열인것이다.
단맛에익은입은더단맛을몰라.쓴맛을본입이라야조금만달아도단맛을느낄수있다.

평범한진리다.이애비가일생을그렇게살아왔으니까이것은이를테면경험철학이다.

~~편지(2)포스트에계속됩니다.

*설명달기:의사인내아버지는5.16이나자무의촌으로쫓겨갔다.그래서나는중학생때부터부모님과헤어져살며수백통의편지를주고받았다.
오늘,짐정리를하다몇통의옛날편지를발견했는데,이마저잃어버릴까봐내컴퓨터에입력시킨다.

그많은편지들은다어디로갔을까?
편지본문은거의그대로다.독자의이해를돕기위해띄어쓰기와한자를한글로바꾼것뿐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