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덟번의 편지 (4)
네번째편지:두바이보이(DubaiBoy)

요즘너는하루종일아랍어연수를받으면서힘들어죽겠다고엄살이지만,네가두살때는모슬렘기도문을

가르쳐주지않아도다따라불렀었다.

두바이에는하루에도몇번씩온도시가떠나가게기도문을틀어놓았지.집안에서도그게들리니까

저절로따라부른거야.

1981년,네가5개월이되었을때아빠가두바이지사로나가게되었다.

5,4,5개월된너희들을데리고비행기를탔는데,아이를셋이나낳은엄마가야만인으로보였는지

노스웨스트의한국스튜어디스가,

"왜아이를이렇게많이낳으셨어요?"하며장난감이랑크레파스,컬러링책을가져다주었다.

글쎄아빠랑떨어져산날이많은데도,어쩌다줄줄이셋이나낳게되었네.

주은택님과리사님이현재사진을올려보라고해서얘기했더니,

"그렇지만,소개팅은한국에서한걸로끝이예요."한다.

평소에는저런표정안짓고무뚝뚝한데사진기를의식했는지눈웃음도치고…

두바이에도착해서부터너는설사와감기를반복하기시작했다.

당시두바이는외국인에게도모든의료서비스가공짜였고약도한보따리씩주었는데,

의사는네병보다네가포경수술을안한것을아주이상하게생각하는거야.

네가태어났을때,할머니가좀기다렸다하라고해서미루었었지.

너는기운도없어보였고,얼굴색도안좋았다.

카펫을깔은집이라서오줌지릴까봐기저귀도늦게떼고,말도늦었다.

모슬렘기도문을비롯하여모든노래를"어어으으"로부르는데,음정박자는아주정확했지만

가사는한줄도못지껄였다.

두살반이될때까지엄마,맘마,쉬등몇가지단어밖에몰랐고,나머지의사소통은고개끄덕이는것과

손짓발짓으로했었다.

좀모자라는애가아닌가,라고사람들이생각하는눈치였지만,엄마생각에는네가모자라서가아니라

엄마가너와안놀아줘서그러려니했다.

비록아들낳았다는안도감은있었지만,시댁과의심한갈등으로우울증에빠져있던엄마는너희들이재롱

떠는것을봐도그냥,

"다른집에태어났으면얼마나사랑을받고있겠니…"했었다.

엄마가사랑을못받으니까너희도그렇다고생각했던거지.

2살반이넘자영국유치원에집어넣었다.

너는놀이터에서자전거만타다가집에왔는데,아빠가픽업하러가면그때부터자동차에서수다를떨기시작

했지.동네사람들이모두,

"돈이야,너그동안입이근지러워어떻게살았니?"하며신기해했어.

그때,한국엄마들은너를소아신경과로데려가보라고했었지.(두바이에서그게가능했는지?)

참오지랍도넓은사람들이야.

4년전,시카고에서그들중한분을만났는데,네가스탠포드를나왔다고하니까깜짝놀라며,

"아니돈이걔가정말요?,말도못하던좀그랬잖아요."하더라.

그때쯤,우리는스포트클럽에멤버십을들고매일저녁(낮에는더우니까)야외수영장엘갔다.

그랬더니점점건강해지는거야.

노할머니말씀대로"흙집어먹고놀때되면저절로건강"해지는모양이다.

그후,너는수다쟁이에다아무나끌어안고뽀뽀하는이상한아이가되어한국으로돌아왔다.

치과에가서도싹싹하게굴어,치과의사가너를"두바이보이"라고부르며귀여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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