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1981 (11)

겁나는영어

종합무역상사가한참잘나가던시절,

수출역군이었던내남편은해외출장을많이다녔는데,외국에서국제전화를해오면

나는가슴이떨려서전화를받을수가없었다.
반가워서가아니라,전화교환수가영어로뭐라고하는것이겁나서였다.
"헬로"도쉽게못하던시절이었다.

‘니깝’을두른아랍여인(위키피디아에서)

사실,두바이에서는영어못해도염려할일은없었다.
얌전히집구석에서아이들기르고,살림만하면아랍어건영어건별로쓸일이없었기때문이다.
그런데,쇼핑을갈때는뭔가입이떨어져야했다.

당시두바이에서는여자의운전이금지되어있었다.(미국과영국의운전면허증을가진여자는제외)
그래서쇼핑이건외식이건집밖에나가려면모두남편이데려다줘야갈수있었는데,

내남편은나를쇼핑센타에그냥내려놓기만했지절대로함께쇼핑하는사람이아니라서

할수없이나는몇마디영어를배워야했었다.
"Showmeplease.(보여주세요)"
"Howmuch?(얼마?)"
"Discount,please.(깎아주세요)"

이런식의영어였지만,한국에서는그나마한번도쓴일이없었던것이었다.
다른아줌마들도대강나랑비슷한수준이었는데,

그래도그들은이영어가지고만불짜리홈세트도척척사고,비싼가구들도잘사들였다.

한번은다른상사직원에게전화걸일이있어다이얼을돌렸는데,
그쪽에서영어로전화를받았다.나는숨을크게들이쉬고,
"MayIspeaktoMr.Kim,please?"하니까
"Speaking."했다.
나는나더러말하라는줄알고다시한번같은말을되풀이했는데,그쪽에서또"Speaking"하는것이었다.
속으로,
"아니,바꿔달라고말하는데왜자꾸스피킹,스피킹하는거야?나지금말하고있잖아?"
그래서다시또"MayI…"하는데,

저쪽에서"여보세요,제가김복동입니다.말씀하세요."하는것이었다.
나는갑자기무슨말을해야할지몰라"어머머…"하다가정신을차리고,
"아유,영어로전화를받으시니정말떨리네…"했더니,
"그쪽영어발음이너무좋아서외국인인줄알았습니다.하하…"
하며놀렸다.

나는외국에나온김에영어를좀배워가야겠다는생각을해서,

두바이"영국문화원(BritishCouncil)"에등록을했다.
"아유,돈이엄마는영어박사가되시려나봐?"
주위의아줌마들이한마디씩꼬았다.

그러거나말거나눈총을받으면서도몇학기제일높은레벨까지다녔다.

영국선생은나를볼때마다"speak,speak"하면서,

필기시험은잘보는데,왜말을못하는지알수없다는표정을했다.

다른외국아줌마들은떠들기는잘하는데단어실력도,문법실력도깡통이었다.

하루는같은클라스의’디나’라는아줌마가우리집까지데려다주겠다고했다.
그래서그녀의벤츠에올라탔다.우리아파트이름을대니까모른다고했다.
할수없이,
"알구레아센타,플리즈"
‘알구레아센타’는당시두바이에새로지은큰주상복합건물이었다.

한국사람들이많이살고있어거기내리면누구네집에든지들어가남편에게전화를걸심산이었던것이다.
디나는알구레아센타도몰랐다.
나는거리이름을하나도못외우고,영어로설명도못하고꿀먹은벙어리처럼앉아있으니까

거리를뱅뱅돌던디나는짜증을내더니차를세우고지나가는사람에게알구레아센타를물어겨우

나를거기에데려다주고갔다.
그후부터디나는내근처에얼씬도하지않았다.

몇년전,
한국에서영어몰입교육이야기가나왔을때나는혼자생각하기를,
"돈많은아줌마들이외국가서우아하게돈을쓰고싶어서그런가?"했었다.
돈은있는데,말을못해서사고싶은것,먹고싶은것을못하면정말답답할것이다.
그러나,
영어는"돈을쓰면서배우는것이아니라,돈을벌어가며배우는것"이라는

내남편의지론도한번쯤들어둘만하다.
이상하게도,

돈을벌어가면서배우는영어가돈을쓰면서배우는영어보다더빨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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