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히스토리

초등학교에들어가면서나는살이찌기시작했다.
내가다니던초등학교는운동장과학교건물사이에높은계단이있었는데,
거기서조회를하며시상식을할때면나는그계단을올라가상을받아야했다.
뚱뚱한내가계단을올라갈때면전교생이박수치며웃어댔다.
그래서상받는날이제일두려웠다.

케더린헵번과그녀의4개아카데미상트로피

중학교에들어갔을때는아주무섭게살이쪄서,지나가던사람들이다쳐다볼정도였다.
신체검사가있었는데,나만따로불려가이리저리몸을체크당했던기억이있다.
동계고등학교에떨어지고,2차고등학교에들어가자살이빠지기시작했다.
아마도심리적인충격때문이었을것이다.

대학에들어갔을때는더이상뚱뚱하지는않았지만,내마음은항상"뚱뚱하다"라고말했다.

다행인것은,아니진심으로감사드리는것은,
내부모님께서는한번도,정말한번도내가뚱뚱하다는말씀을안하시고,그냥"보기좋다"고만하셨다.
사실

그땐거의모두가작고말랐었기때문에지금처럼살찐사람을비판하는사회분위기는아니었던것같다.

살집이있으면후덕하고부잣집맏며느리감이라고오히려값을더쳐주었었다.
그래서나는살이쪘을때도별로부끄럽다는생각은안했었다.
키가큰것은부끄러워꾸부정하고다니기는했지만…

신혼초에는정신적인시집살이와임신으로살이많이빠졌다.
시내버스를타면몇정거장못가서어지러워내려야했고,

출산후에도땅이휘까닥뒤집히는경험을몇번씩해서의사인아버지께주사를맞기도했다.
세번째막내아들을낳을때까지그런상태를유지했다.
그런데막내를낳고나니까속이계속헛헛해서그배고픔을호소했더니
친정어머니께서꿀대두2병(옛날에는정종큰병이있었다)과사골한들통을해오시며혼자만먹으라고

당부하셨다.
그걸다먹고나서어느날,연말파티에가기위해옷을입어보니하나도안맞았다.

심지어구두까지도안맞았다.

그런모양대로두바이로떠났다.
과체중때문에다리가너무아파쇼핑도갈수없었다.
그래서스포츠클럽에등록하고아이들과매일수영장에다니자다리통이굵어지며몸도덜아프게되었다.
그후,
한국에돌아와장승백이에살았는데,시내나갈때일부러노량진역까지걸어가서전철을타고다녔다.

많이걸어서그런지사람들이살이빠졌다는소릴해주었다.

미국에와서한3년은괜찮았다.
그런데조금씩살이붙기시작하더니못자고안먹어도계속살이찌기시작했다.
미국은워낙큰사람이많아살이좀쪄도보통으로밖에는안보이는데,
한국에나가거나한국사람커뮤니티에가면내가살이쪘다는것이드러나곤했다.

"목사님처럼머리를쓰는직업은테니스나다른운동을즐길수있으시겠지만,
저처럼하루18시간씩몸둥이를써서일하는사람은그런운동할시간도,기운도없어요!"
운동하라는말을전도하라는말보다더자주하시는목사님께이렇게대꾸했다가찍혀버렸다.

그러다2년전위암에걸렸다.
여러가지검사를받느라고굶기시작하자식사량이팍줄었고안먹어도배가안고팠다.

거기다맵고짠음식을못먹게되니입맛도사라지고별로먹을것이없어조금씩먹으니

석달새살이쫙빠져버렸다.
그때이후지금까지거의비슷한체중을유지한다.

건강할때는나더러인물좋다는사람이없었는데,
죽을병이들어살이빠지니인물이좋다고한다.
늦게나마그런말을들어다행이지만,한편씁쓸하기도하다.

"아이들이아빠를닮아재능이많은가보지요?"
거의모든사람들이우리아이들칭찬을할때는아빠닮았다고했다.
그것도바로내코앞에서.
아이들아빠는얼굴한번보지못했으면서도,그렇게말한다.

(어떤아줌마들은"아빠닮았다는데뭐가나빠요?"라고되묻기도하지만)
살이쪄서미련해보이는엄마가무슨음악적재능과똑똑한두뇌를가졌으랴…하는심보인것같다.

그게아니라면,

자기들이한번도보지못한아빠를닮았다고우길근거가어디에있는가?

이조각의제목은행복한사람입니다.

표정을직접보면그렇구나…하게됩니다.

(포트레잇컴프티션에나온작품인데,작가이름은생각이안나는군요)

살찐사람의비애란,
아무리재능이많고,성품이좋고,머리가좋아도,뚱뚱하다는이유로사람가치를인정받지못한다는것이다.
반대로,
정말무재주에,못된성질에,돌대가리라도배짝마르면사람들은그속에뭐가들어있는줄로착각한다.

옛날의사들은바짝마른사람을환자취급했었는데,

21세기의사들은뚱뚱한사람들을환자취급한다.

못먹어서죽건,잘먹어서죽건그러니의사는항상할말이있다.

지금나는암에걸려살이빠졌다.그래서

"마른사람우대사상"을보면그게참으로무섭고웃기는21세기’개념’인것같다.

정신은보지않고몸뚱이만보는천한풍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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