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내가좋아하지는않지만,존경하는사람이있다.
시어머니.
내신혼시절은경상도남자와서울여자의문화충격으로부터시작해서시어머니의갱년기증세까지겹쳐

얼룩이많이졌었는데,그후유증이35년이지난지금까지남아있어이렇게말하지만,

그분의삶은존경할부분이많다.

그중에서비교적최근의일은,
자기가사는시골의아파트를팔아손자둘의등록금을대준것이다.
당시,

우리형제들은조카들의등록금까지내줄형편이못되었기에서로눈치만보고있었는데,

바로그때내린어머니의그결정은우리모두에게충격이었다.
그리고커다란교훈을주었다.

미국에서고등학교에다니다돌아간조카둘은,

IMF후아버지사업이망하자어렵게들어간의과대학등록금도못낼지경이되어군대에가기로했다.
내시어머니인그들의할머니가이소식을듣고,
"학교를다니다가중단하면공부맥이끊어지고,의과대학을졸업하면군의관으로갈텐데

지금은군대갈시기가아니다"라며자신의아파트를팔아등록금을댄것이다.
그들은지금의사가되었고,군의관이되었다.
그들의부모는여전히어렵게살지만아들이둘이나의사가되었기에마음은부자다.

내시어머니께서는,
자식농사잘짓는것을자신이세상에태어난이유라고생각하시는분이다.
"나는무학촌부(無學村婦)의몸으로너희들을대학공부까지시켰으니,너희는더넓은세상에가서

자손을더크게길러야한다.그것이내가생각한3대에걸친성공계획이다."
그녀가케네디가문을알리도만무하고,미국의교육시스템을아는것도아닌데,
한국을떠나오는우리에게그런주문을하셨었다.
다행이,
우리아이들은고등학교까지는미국의무교육의혜택을받고,

대학에가서는장학금과융자를받아모두대학을졸업했다.

아이들을기르다보면,
부모의결단이얼마나중요한일인지깨닫게된다.
"우리는부부의노후문제도생각해야한다고믿습니다.그래서에이미를주립대학에보내기로했습니다."
에이미는아이비리그대학입학허가를받아놓았는데,둘다교수인부모가자기들의노후계획을위해주립대학에

보낸다고했다.미국사람의상식으로는당연한일인지모르겠지만우리부부에게는참안타까웠다.

우리는아버지가학생이던시절에도두아이를유명사립대학에보냈었기때문이다.

내아들의베스트프랜드제프는입양아였다.
그도공부를아주잘했는데,군인인양부모가지방의사립대학에보냈다.
전액장학금에생활비,책값까지그학교에서받을수있는최고의장학금을받았기때문인데,
제프는1학년이끝나자낙제를하고장학금도끊기고경고를받았다.
공부가너무쉬워보였고,그동안받았던규제가풀리며긴장이풀렸기때문이다.그래서1학년동안

술과게임에만몰두했다.
지금은대학졸업도못하고여기저기서시간당기본임금을받으며아무렇게나살고있다는소식이다.

극단적인예를들은것같지만,
미국부모들은자식의장래보다는자신들의장래에더신경을쓴다.
그러면서도꺼떡하면이혼을하는데,내좁은소견으로는부부의노후보장제1투자는

이혼안하는것이라고생각한다.남자나여자나아이들이나이혼하면모두손해이기때문이다.

고등학교3학년가을어느날,
전년도에일등으로졸업한선배가가슴에빛나는대학뱃지를달고나타났다.
눈부시게멋졌다.
그녀의학교는남녀공학.그래서나도남녀공학에가기로결심을했다.
그때까지막연히여자대학입시준비만하던나에게이것은큰도전이었다.
부모님께서도우려하셨지만,목표가뚜렷해진나는남은몇달을열심히공부해서

그선배가다니던학교에합격하고큰성취감을느꼈었다.

인생의중요한때에중요한인물을만나도전을받는다는것은큰축복이다.
혼자잘나서성공했다고말하는사람은그스토리를더이상들어볼것도없는루져(loser)일뿐이고,

또환경이어려워어쩔수없었다는사람의변명도흥미없다.
다만,
이제인생을접어가는시기에든나에게소망이있다면,

나도알지못하는사이에어떤젊은이에게중요한만남과기회를주는사람이되고픈것이다.
그것은,
무학촌부내시어머니도해냈던귀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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