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을 풀 때

필라델피아에사는친구를40년만에만났다.
우리는남자학교에서살아남은여학생.
할머니가된지금도나는,그끈끈하고호기심많은남학생들의시선이뒷꼭지에따라붙던,

몸둘곳없던교정을잊지못한다.
그러나,

친구는나와는달리희귀종여학생의특권과평등을많이누린것같았다.
"얘,너그선생님생각나?우리더러’여자가시집이나가지여긴왜와있어?’하시던…"
생각나지,물론.
여자졸업생은다소용없어,결혼하면그만이야,하면서우리를그냥’여분’취급을하시던교수님들…

지나보니맞는말같기도하다.

우리는40년전의좋았던시절과,
그후미국에와서겪어야했던여러가지충격과,도전,그리고성취,등등을말하며
향기좋은자스민의카페인에취해새벽까지버텼다.
"얘,너내가달러얼마가지고미국에온지알아?맞춰볼래?"
150불이내가들은제일적은액수였다.그래서,
"100불?"
"아냐,15불."
갓스물의처녀가,그것도홀홀단신샌프란시스코로떠나면서15불이라니!
"거기다,동경에서비행기갈아타며그돈에서6불짜리선글래스를샀어."
"너,참,대단하다!"
미쳤구나,그렇게말할뻔하다가참았다.40년의세월이아직다메꾸어지지않았기에…

많은공통점을지닌우리.
그대부분이좋게말하면진취적인성격이었다.아니면,

‘무식하면용감하다’라는내좌우명일수도있고…

나는스스로에게이제’이만하면됐다’고생각하며사는데,
그녀에게는자꾸경이로운높은점수를주고싶어진다.

그녀의멋진집에는

대형크리스마스트리와그밑에장식된선물상자들이화려함을자랑하고있었다.

그것을바라보며나는문득,
"구약성서에나오는선지자들,예언들,예수님의제자들…

이모든것이’예수라는선물’을싼포장입니다."라던목사님의말씀이생각났다.

나를포장한것은무엇일까?
높은학력,좋은경력,좋은집,좋은남편,잘자란아이들,이런것?
그러면,그포장지는언제벗겨질것인가?

이미벗겨지고있는것일까?
다풀어젖혀진다음,드러날’나’라는선물의실체는무엇일까?
으스스떨린다.

그렇게비웃던과대포장,
알맹이보다포장에더비싼돈을들이는미국사람들의선물을보며,
미국생활몇십년동안나는무던히도과대포장을무시하려고애썼었다.
그런데,
이제와서는그렇게과대포장해버리는것이편하다는깨달음(?)을얻었다.

그래서비싼포장지와선물상자를사서거기다별볼일없는선물을담는다.

상대방을생각하며의미있는선물을고르는일도,
그걸사러다니는수고도,
정성껏포장하는일도…지나치게신경쓰고싶지가않고,
돈이들더라도그저후딱해치우고싶다.
그래도요즘세상은

받는사람이겉포장만보고입이헤벌쩍해지니까괜찮다.
나중에자기집에가서,나없을때뜯어보고뭐라고하건간에…

생각이비약해서자식들의혼사까지간다.

과대포장.

친구를오래간만에만나서좋은것은,
어릴때의꿈을상기하는것은물론,
그꿈이지금나를어떻게만들었는가,
그리고,
그동안나를포장하고있던것들은무엇인가,
그포장을풀때,
실체는어떤모습으로들어날것인가를생각하게되니까좋다.
과연,
인생에대차(大差)가있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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