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19): 그녀를 보니 내 꼴이 보였다

박장로가족이교회로빌린아파트로들어갔다.
아들만셋인그가족이남의집에더부살이한다는것은누가봐도무리였기때문이다.
그아파트는두바이가아닌옆토후국’샤르자’에있었는데,자동차도없는그들을두바이에나올때마다,아이들학교에데려다줄때마다누가일일이다챙겼는지지금은잘생각이안나지만,아마도조집사가아닐까한다.

"물이없어요.마실물이…"
일요일예배를마치면거기서밥을해먹는데,밥할물이한병도안남았다는것이다.
중동은병물로밥을짓는다.샤워나빨래,변기등에쓸물은바닷물을정수해서상수도로공급해주지만,

먹을물은에비앙이나다른병물을상자로사다놓고쓰고있었다.
교회아파트에도열상자씩사다가재어놓고쓰고있었는데,

박장로가족이들어오면서그물을사다놓는대로홀라당다마셔버리는것이었다.

그래서거의매주물난리가났다.
기름값보다비싼물값.
그들은물만공짜로마셔대는것이아니라쌀,라면,김치,반찬등아파트에가져다놓는먹거리를자기들것처럼싹싹다먹어치웠다.
그러나고등학생을포함한한참자라는아들삼형제가있으니그러려니하고모두참았다.

"김치는잘절여야맛있는법이야!나는딱두시간만절여.사람들이내김치가맛있다고하는이유가바로거기있어."
박사모김치먹어본사람하나도없는데,그녀는그렇게자랑하곤했다.
교회물이떨어지면,
"물좀넉넉하게사다놓거라!손이작다,겨우열박스가뭐꼬,한스무박스씩사다놓지!"
"침대없이자려니우리장로님,온몸이쑤신단다."
그녀는목사마누라나된것처럼큰소리를뻥뻥쳤다.

한열명쯤나오던아줌마들이점점안나오기시작했다.
"예수를믿으면바보가되냐?그런꼴을보며왜거길가는거야?"
우리여자끼리모여박사모흉을보는것은괜찮은데,남편들까지거드는것은싫었다.
그래서박사모를변명하게되는데,그럴수록박사모의횡포는점점심해져갔다.
목사부인이될뻔한장로의부인,박사모.
그는모든사람들의골칫거리가되어가고있었다.

당시두바이는세끼밥해먹고나면별로할일이없는그런동네였다.
한국사람들이생각하는것처럼,낙타를타고사막에나가별을세는그런낭만은없었다.
아라비아의왕자를만날길도없었고(아마런던이나파리,알프스,지중해에가면만날수있을지도…),세이크의아름다운셋째부인은더욱더만나기가어려웠다.
그래서,
본국에서출장오는사람들이어쩌다가져오는한국책들을너덜너덜해질때까지돌려보고,새로생긴쇼핑센터를몇시간씩훑고다니다가,저녁이면액션장면하나없이의자에앉아줄기차게말로만떠들어대는영국TV를보다가,지겨우면’아하아~~랄랄라’하는인도영화로채널을돌리고…그러다가더심심하면성경을읽기도했다.

어느날,
"그는사람들에게멸시를받고,
버림을받고,고통을많이겪었다.
…..
사람들이그에게서얼굴을돌렸고,
그가멸시를받으니,
우리도덩달아그를귀하게여기기않았다."(이사야서53장3절,새번역)

이구절을읽다가문득,박사모생각이났다.
예수님이당한사실이지만박사모에게대입하니꼭맞았다.불쌍해서눈물이핑돌았다.
박사모는실로,
내가받았을지도모를고통을대신받고,
내가겪어야할슬픔을대신겪고있을지도모른다…
그러나,
아…얼마나다행인가,지금내가박사모신세가아닌것이…
비록그녀가자신의처지를모르고큰소리를치고는있지만,
반면교사가되어주니그런그녀가가엾기도하고,고맙기도하고,한편미안하기도했다.
내가나를이렇게모를수도있겠구나…
사태는하나도변한것이없었지만,나는그녀에게잘해줘야겠다는생각이들었다.

정말엉뚱한해석이었지만,
이사야서53장은내가눈물을흘리며읽었던최초의성경말씀이어서그런지,
어렵다는그예언서가그후로나에게는항상친근하게다가왔고,
나대신손가락질을받고돌아가신분은박사모가아니라예수님이라는것,
나도여차하면박사모처럼뭣모르고날뛸수있다는것을깨닫게해주었다.

속죄양예수,
성경교사하나도없었던두바이에서,
이어려운신학적과제를하나님은박사모를통해쉽게풀어주셨다.
그녀를보니,내꼴이보였다.
나도속죄양이필요한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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