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내 새끼 (2)

하바드외에는몰랐다

"얇은봉투는reject(불합격),두꺼운봉투는accept(합격)된거예요."

편지를꺼내들고집으로들어오는데다리가후들거렸다.
12월중순이나4월초에날라오는대학입학통지서.
12월에는조기합격,4월은정시합격통지서가오는데,
두꺼운봉투는합격과동시에여러가지서류와안내서가들어있기때문에두껍고,
얇은봉투는그냥미안하다는편지한장달랑들어있기때문에얇다.

하버드와예일에서온편지봉투는얇았다.
나는그걸밥상위에놓고망연히앉아있었다.
11월얼리액션에하바드에지원하고,

디펄드(deferred,합격통지가연기된)상태로조마조마몇달을기다린것이었다.

"어떻게한다?…"
아이들은아직학교에서돌아오지않고있었는데,
큰아이를볼생각을하니막막했다.그아이,얼마나상심할것인가…

큰아이는,
사실상우리집의기둥이었다.
동생들의롤모델이기도했지만,부모가믿고의지하는자식이기도했다.
그애는9살부터수많은문제거리들(다섯식구가덜렁미국에도착한순간부터)앞에서

한번도당황하거나주눅이들지않은채성실하게자기일을해나갔었다.
적어도내게는그렇게기억된다.
그런이아이에게던져진불합격통지서…가슴이찢어지는듯했다.

1767년의하바드(위키피디아에서)

나는그불합격통지서를뜯지도않은채감추어놓았다.
남편에게우선전화하고,
가족이다모인후에자연스럽게본인이열어보도록하기로했다.
가슴이후들거려서도저히저녁식사준비를할수가없었다.
미국이싫어졌다.
우리를,내아이를이렇게내치다니…

스탈린그라드의난민,1941년.위키피디아에서

큰아이는학교에서돌아오자마자편지를찾았다.
미리와있던남편이그편지다발을밥상위에내어놓자딸은열심히뒤졌다.
하바드리젝트,예일리젝트,
모두묵묵히그편지봉투를보고있는데갑자기딸이
‘오,마이갓!’하더니왠두툼한봉투하나를신문속에서꺼내들었다.
그것은다트머스(Dartmouth)대학에서온봉투였다.
"축하합니다.1년에3만불씩그랜트를주겠습니다."

딸은울기시작했다.
동생들도덩달아소리를지르기시작했다.
"언니,정말3만불스칼라쉽이야?와우,오마이갓!"
남편도’어디보자!’하면서봉투를채갔다.
나만멍하니있었다.
하바드가아닌다트머스.
다트머스는홍정욱의책에잠깐나왔던그학교,작은하바드라는학교아닌가?
혹시하바드가안될경우를대비해’안전빵’으로하나넣어두었던학교.

1773년의다트머스칼리지.위키피디에에서

그날,
저녁을집에서먹었는지어쨌는지생각이잘안난다.다만,
좋아서눈물범벅이된아이들이셀리브레이션을하자고해서
늦은시각에아이홉(팬케익하우스)에갔는데
아이들이옆자리의모르는사람들에게,
‘우리언니가다트머스에서3만불장학금을받았어요’라고떠들던모습만기억난다.
나는그저멍하니비실비실웃으며앉아있었다.
"결국하바드가안되었구나…"그생각만하면서.
그때가1994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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