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날에

하늘이푸르면왜뛰쳐나가고싶을까?
그냥쳐다보면됐지…
이렇게좋은날이면골프장한바퀴돌고싶은생각이굴뚝같다.
갈수있어도못가는내신세.
나혼자가야하기때문이다.

골프장에혼자가는것,그것참어색하다.
지금까지
여자혼자골프치는모습은한번도못봤다.
그래도작년엔가,미친척하고딱한번혼자나가봤는데,
내가뭐골프에환장한여자도아니고,
형편없는내꼴을보고남자들이비웃을까봐
전후좌우신경쓰느라골프치는데집중할수가없었다.
골프장에서는할머니도여자로치나?쳇!

멍하니밖을내다보다가
‘킴’이자기밭에서솎아다준,그저께씻다가말은달랑무생각이났다.

밖에나가그거나마저씻어김치담그자…뜨락도바깥이니까…
커다란다라이(한국말로뭐지?)와소쿠리를꺼내놓고
차고앞수도꼭지밑에서솎은배추와달랑무를씻었다.
혹시옆집아줌마가보면
‘저산더미같은채소를씻어뭘하는걸까?’생각할지도모른다.

낙엽이얼갈이배추위에툭하고떨어졌다.
사진,사진찍자…외로워보이니까…요즘은별걸다찍는다.
집안으로들어가사진기와전화,자동차열쇠를가져왔다.
자동차의라디오를크게틀어놓고
카메라를쥔김에뒷뜰의단풍도찍고김치거리도찍었다.

그럭저럭조카를데리러갈시간이되어후다닥씻어차고에들여놓았다.
허리가휘청.
애고,보나마나힘들어서오늘중으로김치담그기는글렀다.

조카데리고오면곧바로저녁해야지,먹고치우고나면밤8시가넘을거고…

2박3일걸려서오늘에야겨우끝냈다.

‘아,김치참맛있다!’라는소릴들어보지도못하면서

뭘이렇게열심히담그는지나도잘모르겠다.
우리집남자들은김치를잘안먹는다.
먹어봤자저녁식사때한끼뿐인데
그것도젖가락으로깔지락거리다가코딱지만한조각한두쪽집어먹는다.

혹시내김치가맛이없어그런가싶어

가게에서파는시뻘건김치를사다놔도마찬가지다.

조카는입맛이중국식이라서지지고볶는기름진것을좋아하고,
남편은맵고짠경상도김치먹던버릇이라서
나의이북식허연김치를와작와작씹는맛을모른다.
그래서항상김치가시어꼬부라져빈대떡에들어간다.

한병은조금맵게,

한병은나를위해서허옇게…해연님의알타리동치미를흉내내며담갔다.
얼갈이배추는더맵게,

한집에각기다른입맛의김치삼국지다.

킴이아주여린갓도한주먹뽑아다줬는데,그걸깜빡잊고있다가

나중에동치미에넣었다.

마지막끝물이라고,

또다른친구가따다준깻잎도김치를담갔다.
이친구는여름내내방울토마토와바나나고추,오이,깻잎등을따다줬는데,

그래서올여름에는채소를별로안샀다.

날씨좋은날,

나갈데가없어장난질삼아담근김치.

그걸바라다보니

항상그러하듯이,부자가된것같다.

그래도하늘은여전히푸르고(부자에게나가난한자에게나똑같은하늘),

노란낙엽들은그밑에서하늘하늘,

이렇게좋은날에어쩌란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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