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의 도시 오크릿지 (2)

세번째들른곳은X-10.
플루토늄핵폭탄제조를위한흑연반응로가있는곳.
이반응로는지금은작동하지않는다.
실내가무덥고멀미가날듯답답했다.

이번에는카메라를안가지고들어갔는데,
나를이상하게보던다른사람들이사진을찍고있어
나도스마트폰을들이댔다.

어느곳에가나미국이왜핵폭탄을만들게되었는가,하는
당위성이자세히설명되어있다.
아인쉬타인이루즈벨트대통령에게보낸편지,
나치독일의핵개발위협,
조속한종전(2차대전),

냉전시대의러시아와의긴장,
그리고전후원자력의평화적이용…등등.
지금내가받은방사선치료와진단은방사선의의학적연구결과다.

네번째버스가멈춘곳은K-25사이트.

멀리서바라다보기만했다.
기체확산동위원소분리시설이라는데

이것도역시모르는말이지만,이쯤에서나는
내가보고있는것들에대해한가닥감을잡았다.
"우라늄농축이어려운기술인가보다…"
이암호들,
Y-20,X-10,K25들이나타내는건물들은다
우라늄,플루토늄만드는시설들이었던것이다.

이것은폭탄이아니고,K-25내에있던컨버터.우라늄을더얻으려는시설인데

1500개가있었다고한다.지금은제거작업이진행중이다.

사실
나는핵폭탄이무섭다는것만알뿐이지
우라늄농축이나핵폭탄등에관해서는전혀모르니
이정도만알아채도박물관이의도한투어에합격했을것같다.
그래도,
이만큼이나마미국정부가일반인들에게핵무기제조동기와과정을오픈하고,
국민의이해를돕는다는것이고마웠다.

더많은비밀이있다한들나는이해할능력도못된다.
참고로,
이버스투어는미국시민권자에게만허용된다.

오크릿지가연구소로낙점된이유중의하나는철로망이잘되어있어서라고했다.

다른이유는,산속의외진지역,강물이풍부한것등이좋은조건이라고.

당시

ORNL(오크릿지연구소)에는원자탄을만들기위한
우라늄을비롯한구리,은등의광물질확보가급했다.
그래서
그확보과정에일어나는에피소드도많았다.

한예로,

Y-12에서사용하던켈루트런이라는설비에는
약5천톤의구리와6천톤의은이필요했다.
그래서담당자는당시미재무성의차관이었던벨에게6천톤의은을요청했다.
은6천톤!
이이야기를들은재무장관은,
"이보게젊은이,
자넨은을톤단위로생각할수있는지몰라도
난평생동안은을셀때는트로이온스(1트로이온스는31그램)를단위로했다네!"

실제로
이때사용된은은14,700톤에달했는데,
나중에전쟁이끝난뒤시설을해체하며
이은을미국정부에다시반환했을때의손실율은1/3,600,000이었다고한다.
극히미미한손실률이었다.

중앙정부에은을달라고했을때가1942년,최종반환시점이1970년이니까
28년동안은을빌려쓰고다시돌려줬는데
손실율이겨우360만분의1이라니그들의정직함이놀라울뿐이다.

일본과함께세운평화의종.오크릿지시내에있다.

국가의핵심사업에쓴물질을
이정도로정직하게관리를한담당자들,과학자,군인,정치인까지도모두존경한다.
과연원자폭탄만들자격이있다는생각이들었다.
한편으로는작금한국의원자력발전소부품비리가생각난다.

AMSE박물관

이곳박물관의공식명칭은
미국과학에너지박물관(AmericanMuseumofScienceandEnergy)이다.
구글에서그냥OakRidgeMuseum을찾아도나온다.
과학에관심이많은사람이방문하면더욱흥미롭겠지만
아무것도모르는나같은사람도
업적을성취하는과정을보는것만으로도감명깊었다.

70여년전,
비밀과암호의도시에서시작된이런일들이
21세기지금,북한의핵무기위협으로이어질줄을
그때는아무도상상치못했을것이다.

테네시주의스모키마운틴이나,녹스빌시를
방문할기회가있는분들께한번들러보길권하고싶다.

(참고: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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