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돌한 그녀
어떻게미국에오게되었어요?”

처음보는젊은엄마가옆에앉기에물었다.

우리는맞벌이부부였는데,저는교사,남편은엔지니어였어요.

아이가둘이나생겼는데,도무지가족이함께모일시간이없더라구요.“

그래서

젊은부부는직장을때려치우고,

일년만미국에가서놀다오자생각하고미국에왔단다.

학생비자로미국에와서가족단합대회를셈이다.겁도없이

나는그녀얘기를들으며속으로

아무튼요즘젊은이들,배짱도좋다.직장때려치우고일년간놀러?’

그들은미국에온지일년이되어한국으로돌아가려는데,

아이들이미국이좋다고했다.

그래서미국에남기로하고아이들아빠가미국내에서직장을잡기로했단다.

다행이한국회사에취직이되었다.

지금아이들은초등학생이고,아내는대학에서간호학공부를하고있다고한다.

이예요?”

서른여덟이요.”

나이에아이데리고직장집어치우고미국에?대단하네….그런생각이들었다.

그런데,

가만히생각해보니나도그랬었다.아니,우리부부는했었다.

아이데리고내가서른여덟,남편이마흔살에유학을떠났었는데,

그것도30전에

당시남편은요즘소위말하는신의직장이라는곳에다녔었는데

그는아무와도의논없이,심지어나에게도한마디없이,

1980년대중반어느연말에

다니던회사에사표를던지고미국유학을간다고공표!

미안했던지나에게는그나마생맥주한잔사주면서통고를했었다.

미국에도착해보니,동료한국유학생들이우리를슬슬피했다.

그때는우리가나이가많아서그런줄로알았는데,

나중에고백하길,우리처지가너무한심해보여서그랬었다나?

정말겁도없고엉뚱했네.

구글이미지

올해우리가미국에온지30년이된다.

고생은했지만한번도신세타령은했다.후회도안했다.

정신만똑바로차리고부지런하면

굶지않고아이들공부시킬있는곳이미국이고

그래서미국의12과정의무교육을우리아이들은알차게받아먹었다.

우리가족은지금도그때배운것으로먹고산다.

옆에앉은젊은엄마를보니나의삼십년의세월이너무후딱지나갔음을깨닫는다.

나는젊은엄마보다더엉뚱하게보였겠지?

당시

우리가미국유학을거라고하니까모두농담으로받아들였다.

너희가족에게누가비자를주겠냐?

아이데리고나이에공부하러간다면너라면믿겠어?”

시댁에서는자기들버리고우리끼리만살려고미국에이민간다고생각했고,

친정에서는불안하긴하지만사위가결정이니,공부열심히하라고격려할수밖에.

절대로받을거라고한미국비자도어쩐일인지군소리?없이줬다.

그것도인터뷰에서.

당시는비자받으려면미국대사관건물담을빙빙둘러싸고줄을길게섰었는데

그때섰던아들이지금은미국외교관이되었다.

이건여담이지만,

아들이외교관이되고나서부임지가서울이었는데

마침그때내가한국에다니러나갔다가미국대사관에일이있어갔더니

아들이자기동료들과윗사람들에게인사를시켜줬다.

나는아들의보스에게

참으로감개무량합니다.영어로감개무량을뭐라고하나요?”물었었다.

구글이미지

각설하고,

과거생각을해보면젊은엄마는하나도당돌한것이아니다.

30,한국서달라송금도쉽지않았던시절,무턱대고온우리무댑보.

젊은엄마가옆에서고등어구이를맛있게먹었다.맛있어,맛있어,하며

겉절이와오이지무침도맛나게먹었다.

나는집주인이몫으로음식보따리를그녀에게건네주었다.

괜찮아요,주셔도되요.”

가져가요.아이들과식구넷이오늘저녁식사로충분할걸요?

이게떡이냐,하고받아가세요.”

정말받아가도되요?”

그럼요.우리는이제신나게먹어줄식구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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