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우리가미국에온지일년이되었을

아이들이다니는공립초등학교에서학비를내라는통지가왔다.

불법체류자의자녀는괜찮지만유학생자녀는돈을내라고.

교육구(ArlingtonIndependentSchoolDistrict)에서그런결정을내렸는데

학생당달에270.

우리는아이가셋이니270×3=810불을매달내야하는것이었다.

대책은가지였다.

학비받는동네로이사를가던지

결정에반대해서투쟁을하던지

그러나

바로동네라도언제돈을받기로결정할지는없는것이다.

수입잡는일은누구나좋아하니까

얼떨떨한상태에서개학날이되어

아이들을등교시켜보니배정이되어있고,

교장이앞에서아이들을돌려보내고있었다.

다행이우리아이들이다니는학교는돌려보내지는않았지만

대학바로근처에있는에이미가다니는초등학교는이미시행이되고있었다.

아이들도쫓겨겁니다

성질이곧고급한에이미아빠가말했다.

에이미아빠는대책을마련해서교육구에대항하자고했다.

그러나이미약삭빠른일부유학생들은이사를가기시작했다.

우리부부는나름어려운결정을해야했다.

남아서싸울것이냐,이사를것이냐?

양쪽시간과돈이많이드는일이었다.

미국온지1년차유학생이사실교육구와대항해서싸운다는것은무리였다.

미국물정도모르고영어도딸린다.

하지만

에이미아빠는박사학위논문막바지에있어무척바빴는데도

가만히당하고있지는못하겠다며앞장서서투쟁동지를규합했다.

당시대학에는한인유학생이제법많았다.그러나

그들아이들은취학연령전이고,모두겁이나는지뒤로물러앉았다.

평소옳고거룩한말만해서우리가별명을목사라고붙여박도

잽싸게이사를가버렸다.

결국에이미아빠와투쟁을벌일동지는중국학생포함다섯가구쯤되었는데

우리도어물어물하다가끼게되었다.

에이미아빠학과의교수분이인권협회일에관여하고있었는데

분이주선해서인권협회변호사와대학변호사의도움으로

교육구를상대로소송에들어갔다.

미국이나한국이나소송이라는것이귀찮고복잡하다.

거의일년동안여러법원을거치고,다시교육구산하기관등등으로

미국남부의여러지역을왔다갔다하다가판결이났는데

학비는받지마라”.

일종의권고사항이었다고한다.

소송은일년쯤갔지만아이들은동안학교에다닐수는있었다.

판결,

우리아이들은동네에서계속고등학교까지다녔다.

지금은모두자기들밥벌이하고나름미국사회에기여있게되었으니

바라건데

자신들이졸업한학교에기부금도내고감사의마음을갖기바라고있다.

그리고이런억울한생기면도와주는사람이되길바란다.

그때느낀것이

부당한일에맞서는것이결코쉽지는않지만

정의를위하여과감히앞장서는사람이있는

하늘이돕는다는생각을했었다.

상대가너무힘이세서모두도망가고싶을

앞장서는사람은훌륭한사람이다.

기회가되면

우리아이들에게에이미아빠이야기를것이다.

그가앞장섰기에우리가어려운처지를모면하고

이렇게너희들이자랄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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