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 타지마할

타지마할에 갈 때까지 나는 이 유명한 건물이 묘지라는 걸 몰랐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Mausoleum), 타지 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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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가리라고 생각한 적도, 여행을 꿈꿔보지도 않았을 때에도

어디에서인가 ‘타지 마할’ 사진은 여러번 보았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가 지금 인도에 와 있는데, 타지마할이라는 곳은 어디쯤 있을까?”

“여기 라지스탄에서 동쪽으로 약 5시간쯤 가면 아그라라는 도시에 있어.”

“그러면 거기에는 못 가보는 거야?”

“예정에 없지. 여기서 바로 델리로 가서 그곳이나 돌아보고 집에 가려구.”

못 간다고 하니까, 갑자기 사진에서 보았던 하얀 궁전이 눈앞에 아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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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인도에 가서 뭘 보고 왔냐고 물었을 때

한마디로 ‘타지 마할!’ 하면 될터인데,  그것을 안 보다니…

간단한 대답을 위해서라도 거길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한나절 고민하더니 델리로 가는 비행기표는 취소하고

(다행이 페널티는 없었다) 대신 타지 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갔다가

당일 저녁 택시 편으로 델리로 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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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가 끝난 다음 날 새벽 4시에 택시를 탔다.

아그라까지 가서 타지마할을 관광하고 다시 델리까지 가는데 250달러.

아그라까지는 고속도로로 달린다. 고속도로 옆 커다란 간판에는

톨게이트를 무료로 통과할 수 있는 자동차 리스트가 써있었다.

방위군, 경찰, 소방차, 앰블란스, 주 정부 누구누구. . .

호텔에서 일찍 떠나는 손님을 위해 브랙퍼스트 박스를 주었는데

택시 안에서 그걸 우리끼리만 까먹으려니 운전사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어쩌겠나…

동행한 미국사람들은 하나도 미안한 기색없이 우적우적 잘 먹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숨을 죽이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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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쯤 아그라 시내에 들어섰는데 마침 출퇴근 시간,

그 혼잡함이란 정말 무서웠다.

반대편 차가 막 우리를 덮칠것 같이 보이는데

앞좌석에 앉은 동행은 계속 오마이갓을 연발하면서도 사진을 찍어야 된다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러나 운전수는 우리의 반응을 즐기는 듯, 계속 곡예운전을 했다.

입구에서 가이드를 만나 입장권을 사고, 시큐리티 체크로 갔다.

요즘은 어디엘 가나 주머니에 있는것, 핸드백, 모든 소지품을 검색당한다.

가이드가 쵸코렛이나 껌 등은 뺏기니 차 안에 놓고 가라고 해서

공항에서 산 다크 쵸코렛을 차 안에 놓고 내렸는데, 어쩐 일인지

핸드백에서 껌이 나왔다. 오잉? 이 껌 어디서 난 거지?

아, 알마티 공항에서 샀구나! 아까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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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에 들어서니 머~얼리 하늘 위로 궁전이 하나 둥글게 솟아있었다.

방금 목욕을 한 처녀 같다고 할까, 아니면

달콤한 바닐라 크림이 덮인 생일케익 같다고 할까…

입을 헤~벌리고 쳐다보다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3월 초인데, 날씨는 덥지도 않고 딱 좋았다. 그래도 햇살은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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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관광의 특징은 사원이나 특정 건물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다는 것.

(그러나 공항에서는 신발을 안 벗었다)

타지마할에서는 신발을 벗는 대신 신발 커버를 줬다.

멀리 정문 입구에서 볼 때는 얼른 다가가 몽글한 건물을 만지고 싶었는데

막상 건물 밑에 서니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벽면에 새겨진 각종 조각과 무늬들, 섬세한 기술들을 보며

그 거대한 건물을 한 공간도 남김없이 메꾼 장인들의 수고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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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왜 이런 묘역이 지어졌을까?

샤 자한 (왕)과 뭄타즈 왕비의 러브스토리에서 비롯되었다.

샤 자한은 무굴제국 최전성기의 왕이다.

그에게는 많은 왕비가 있었지만 그 중에 뭄타즈 마할을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뭄타즈 마할은 14명의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중에 여덟이 죽고),

14번째 아이는 뭄타즈 마할이 왕의 원정에 동행했다가

거기서 해산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임신을 한 왕비가 왜 전장터에 따라갔는지 궁금하지만 알 수 없고…

(아마도 원정 기간이 오래 되어 현장에서 임신과 출산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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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때 유언을 남기기를, 자기가 죽은 다음에 무덤을 잘 만들어 달라고…

그래서 22년의 공사 기간을 거친 후,

아름다운 흰 대리석의 천성같은 묘궁이 세워졌다.

지금도 그 묘지는 마치 구름 위에, 하늘 위에 세워진 궁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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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샤자한은 왕자의 반란으로 아그라 궁전에 감금된 채로

멀리 뭄타즈 왕비가 묻힌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지내다 숨졌다고 한다.

그리고 뭄타즈 옆에 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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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궁전을 짓기 위해 들어간 재료들과 노동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수많은 건축가들이, 역사가들이 그 사실을 기술해 놓았고

수많은 관광객(2015년 한해에 5백만명)과 사진작가들이 모습을 찍어놓았다.

인터넷에 ‘타지마할’이라고 치면 그림같은 사진과 정보가 주루룩 뜬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누구의 사진에도 타지마할의 모습은 똑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무슨 조화일까? 타지마할은 완벽한 포토제닉?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끝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정말 아름답지요? 그러나 다시는 이와같이 아름다운 묘궁을 짓지 못하게

샤 자한은 건축에 관련된 자 모두의 손목을 잘라버렸답니다.”

6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4월 3일 at 10:06 오후

    프라하의 종탑의 시계만든 사람도 눈을
    멀게 했다드니 여기서도 그런 잔인함이…
    아무튼 후손들은 또 그래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으니 역사에도 정답은 없는것 같아요.

    나는 인도를 못가봤어요.
    덕분에 구경 잘 합니다.

    • 벤조

      2016년 4월 21일 at 12:00 오후

      왜 응답 글이 없었는지 방 주인인 저도 잘 모르겠네요.ㅎㅎ
      데레사님 벌써 사월이 종반으로 흘러가고 있네요.
      후손이 팔아먹는 관광수입, 대개 그 배경에는 폭군의 광포함이 있더라구요.
      그것이 왕권을 지키는 방법인지?

  2. cheonhabubu

    2016년 4월 4일 at 6:14 오전

    누구나 벤죠님 처럼 타지마할을 들고 사진을 찍지요.
    저는 언제나 시작 책 표지에 타지마할 보속으로 장식된 정교한 부조부분을 확대하여 넣었을 정도입니다. 타지마할, 다시보니 더더욱 아름답네요.

    • 벤조

      2016년 4월 21일 at 12:02 오후

      타지마할은 잘 보존 되었는데, 다른 궁전은 약탈이 심했어요.
      아마도 묘지라서 그런건 아닐지요?
      소리님, 안 가보신데 있으면 말해보세요. ㅎㅎ

  3. enjel02

    2016년 4월 4일 at 7:14 오후

    그 왕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저 무담이 말해주는듯합니다
    그토록 긴 시간에 많은 인력과 돈이 들었겠는데
    슬픈 사연도 있군요
    그 무덤이 인도에 커다란 공헌을 하네요
    하지만 건축한 사람을 다 쥭였다 하니 슬픈 사연이
    보여서 슬프네요 벤조 님 덕분에 잘 보았네요

    • 벤조

      2016년 4월 21일 at 12:06 오후

      저 궁전을 짓는데 경비를 너무 많이 써서 무굴제국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고도 합니다. 어찌보면 제국의 정점에 뭄타즈 왕비가 죽었는지도 모르지요.
      아들의 반란이 있었고, 아들 오랑제브는 타종교를 용납 안해서 민심을 잃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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