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사람

요즘정치판에’종북논쟁’이일면서한번은짚고넘어가야할소위’민주화운동가’들의실체를되새겨볼좋은기회가되었다.

그들은말과행동으로버젓이’친북행세’를하면서도입만뻥긋하면평화주의자요민주운동가라고떠벌인다.

누구말처럼’소가웃을일’이다.

그들의그말같잖은변명(?)을국민들은속아줄것이라고생각하는가.

그파렴치한작태를보면서문득고인이되신진정한사회운동가였던제정구선배의얼굴이떠오른다.

제정구선배를만난게1985년3월로기억된다.

벌써30여년전의일이다.

그때제선배는정치에발을들여놓기전이어서댁(경기도시흥시복음자리마을)에계실때였다.

당시신협중앙회에근무했던나는복음신협을소개하기위해복음자리마을을방문했었다.

조합이사장과실무책임자로부터현황을듣던중에초창기발기인대표로참여했던제선배의활동에대해들었고,서울청계천에서시작하여안양천을거쳐복음자리까지오게된도시빈민(철거민)들의애환을들을수있었다.

또복음자리란마을이름도김수환추기경님이지어주셨고매년성탄절이면이곳을찾아와어려운분들과성탄의기쁨을나누신다는얘기도들었다.

이사장은복음신협이설립인가를받기위해재무부로몇번씩서류를보냈지만번번히반려되었다고말했다.이유는발기인대표가당시정부로부터요주의인물로지목된제정구씨였기때문이었다.

결국제선배가물러나고서야설립인가를받았다고한다.

볼일이끝나자이사장이나더러제정구씨를한번만나보겠냐고물었다.

좋다고했더니그분의댁으로안내했다.열세평남짓한단층기와집인데그런집들이수십채늘어서있었다.

집에있던제선배는이사장의소개로나와인사하고오후였지만간단한자리를갖기로했다.

인근중국음식점으로향하는데길에서구두를닦던청년이인사하자선뜻같이가자고권했다.

그럭저럭대여섯명이방에앉아탕수육을시켜놓고고량주를돌렸다.

내가인사로요즘어떻게지내시냐고묻자경찰서장이자주문안전화를줘서잘지낸다며활짝웃는다.

반백의머리에체구는작았지만약간검은얼굴,초롱한눈은매우인상적이었다.

전혀격을따지지않고사람들을편안하게해주었고,사회운동가라면떠오르는딱딱하고투사답지않게따뜻한분이었다.

시종웃고시국이야기는한마디도없었다.

후에정치에참여하여국회의원으로모범적인모습을보여주셨다.

약자를위해선몸을아끼지않았지만자신에겐엄격한분이었다.

나라를사랑하는마음도누구못지않게뜨거웠고-.

자칭’민주화운동가’라고떠드는사람들의같잖은행태를보니,제정구선배의의연했던모습이자꾸떠오른다.

내가제정구의원을선배라고한것은후에그분이고교선배였음을알았기때문이다.

처음만났을때선배인줄알았다면대화가훨씬재미있었을터인데,참아쉬운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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