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있어 늘 푸근했던 비봉산

고향진주를떠올릴때먼저생각나는건비봉산과남강이다.

흔히고향을상징하는첫표적이동구밖에우람하게서있는정자나무이듯진주의관문인새벼리모퉁이를올라서멀리비봉산자락을보았을때아,고향에왔구나하는실감을느낀다.

이처럼비봉산은진주의상징이고어머니처럼그리운자태로항상가슴속에남아있다.

그런데도진주사람들은때로는비봉산을얕보기도했다.

내가다닌초등학교와중학교,고등학교가모두비봉산을등지고있지만교가에는한마디의언급도없다.

진주중교가는"보아라하늘높이솟은지리산만고에푸른빛이가심이없다"고노래한다.

진주고교가역시"지리산높이솟아우리의기상"이라며산청,함양의지리산만드높이고있다.

아,봉래초교의교가에는"비봉의높은뜻을"이란구절이들어있구나.

그렇지만비봉산은봄이면화사한꽃을피워소년들의가슴에꿈을심어주었고,여름이면푸르른녹음으로삶의충만함을보여주었다.

또가을이면불타오르는단풍으로자연의아름다움을만끽하게했고,겨울이면텅빈모습으로겸손의미덕을가르치기도했다.

이처럼비봉산은우리들미완의시절에어머니처럼등을두드리며꿈을키워주고삶의지혜를여물게해준스승이기도했다.

기록을보면,비봉산은해발162m의얕으막한산이다.

본래이름은대봉산(大鳳山)이었는데비봉산(飛鳳山)이된데는기막힌사연이있다.

진주강(姜)씨집안은대대로인물이많았다.그것은대봉산위에엤는봉암(鳳岩)때문이라고했다.

이에조정에서사람을몰래보내봉암을깨어없앴고봉이날아갔다고해서비봉산이되었다고한다.

진주강씨집안은날아간봉을부르려면알[卵]자리가있어야된다고해서’봉알자리’를만들기도했다.

비봉산의수난은그에그치지않았다.

비봉산은진주도심의북쪽에서시내를에워싸고동과서로크게날개를펼친모양이다.

그서쪽날개쭉지에가마못이있는데본래의이름은봉이이못에서살았다고하여서봉지(棲鳳池)였다.

그러나조선을세운태조이성계는진주지역에왕실을위협할인재가날것이란무학대사의말을듣고서봉지를가마못으로이름을바꾸게했다.진주에인물이많음은비봉산의정기를받음에있다고보고이산의맥을끊어가마못으로바꿈으로써못이가마솥처럼펄펄끓어봉이얼씬도못하게하기위함이었다.

지금은가마못을메워택지가되었다는데이처럼비봉산은인고(忍苦)의역사를지니고있다.

그렇지만내겐늘거기있어푸근했던비봉산이었다.

초,중,고교를다닐때교문을들어서면가장먼저어서오라고손짓하는것이비봉산이었다.

때로는어머니의품속처럼,스승의회초리처럼우리들을품어주기도하고가르치기도했다.

그비봉산이있어고향은항상마음의등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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