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를 추억하며 3 – 미완성교향곡

월요일이군요,슈베르트선생.

좋은날두고월요일아침에다시선생을대하니지난시절’월요음악회’가생각나네요.

군대제대하고1970년연초,’주피터음악회’에이어’심기일전’의각오로새로시작했던것이’월요음악회’였지요.

그때촉석공원KBS방송국옆에LG연암문화재단에서지어진주시에기증했던진주시립연암도서관이’월요음악회’의새로운무대였지요.당시관장이었던K선생의도움으로도서관이쉬는월요일밤에열람실에서음악감상회를열었던기억이새록새록납니다.

아,이야기가옆길로빠졌군요.월요일을얘기하다보니-.

오늘은선생이남긴음악들가운데교향곡얘기를좀해볼까합니다.

마침오디오에서교향곡9번’그레이트(Great)’의유려한선율이흐릅니다.

선생은31년의짧은생애에일천여곡을남겼고,그중가곡이육백여곡에달하지요.그래서후세의사람들은선생에게’가곡의왕’이란별칭을붙였습니다.

가곡이야기는천천히하고,세상사람들을많이헷갈리게한교향곡부터시작하렵니다.

선생이남긴교향곡은정확하게여덟개지요.

그런데처음7번으로붙였던C장조(D.994)를작곡한연대가선생이돌아가시기여덟달전인1828년3월이었고,마지막8번B단조(D.759)’미완성’은작곡한게1822년이라순서가맞질않았지요.

그래서7번을9번교향곡으로바꾸다보니7번자리가비게된겁니다.

사실은’미완성’을7번,’그레이트’를8번으로바꿔야하는데’미완성’이원체8번교향곡으로각인되다보니선뜻번호를바꿀수없었던거지요.

후세사람들의이런칠칠치못한실수로7번교향곡은어디갔냐고괜히선생만오해를받았지뭡니까.

선생도아시다시피7번교향곡은오스트리아음악협회에서연주할예정이었지만곡의규모가너무크다는핑계로빛을보질못했지요.

그후슈만이선생의둘째형페르디난트의집에서이곡을발견했고,1838년3월21일(어떤기록은1839년12월15일)라이프치히의게반트하우스에서멘델스존의지휘로초연되었습니다.이곡이작곡된지10년만이지요.

슈만은이곡을평하기를"장파울의장편소설4권에비유할만큼천계(天界)의유장(悠長)함이흐르는곡"이라고했습니다.

선생의저유명한8번교향곡’미완성’역시우여곡절을겪었지요.

이곡역시1822년작곡되어선생이명예회원으로있던슈타이어마르크음악협회임원휘텐브렌넬에게보내졌지만곡이2악장뿐이라나머지3,4악장이오기를기다렸다지요.

그러나나머지곡이오지않아휘텐브렌넬이깜빡했는데,선생의사후선생의작품에대한존경과사랑의열기가뜨거워졌지요.

이에선생의작품을연고자들에게서찾으려는애호가들의노력으로마침내1865년5월작곡된지43년만에빈음악협회의지휘자요한헤르벡에의해발견되었고,그해12월17일초연되어세상사람들의마음을사로잡았습니다.

선생,혹자들은이렇게말하지요.선생은혁명가라고-.

"심약하고소심했던내가어떻게혁명가가될수있냐"고선생은펄쩍뛰겠지만,사실선생은혁명가였습니다.

형식위주의틀에묶인고전파의굴레를물흐르듯바꾸어베를리오즈나슈만,멘델스존,쇼팽으로이어지는낭만파의물꼬를텄으니까요.그건선생이의도적으로행한게아니라선생의의식속에숨어있던자유로움과서정성이자연스럽게만들어낸혁명이었지요.

어떤이들은또말합니다.

선생이좀더오래살았더라면선생의9번을비롯한그후작곡되었을교향곡들은베토벤이시현한’인류애적정신’과선생의’서정성(혹은낭만성)’이합해져서브람스의신고전주의를훨씬앞당겼을것이라고요.

왜냐하면선생은베토벤의장대한교향곡들을너무도사랑했고,그영향으로9번교향곡이만들어진것아닙니까.

선생의짧은생애를애통할따름입니다.

말이너무장황했나요,선생.

관현악을빌려노래했다고도할수있는선생의교향곡들-.

베토벤의투쟁은없지만선생특유의노래가있는교향곡들-.

관현악의선율에가사만붙인다면금방새로운노래가탄생할것만같습니다.

특히’미완성’2악장의그투명하면서도몽환적인선율의아름다움-.

지난80년대네빌마리너가’미완성’에새로운옷도입히고,다시피아노스케치를관현악곡으로바꾸어10곡으로선생의교향곡전집을마련했다는데,그건선생이지닌순백(純白)의영혼을얼룩지게하는것같아아쉬운마음입니다.

자,선생.또새로운한주간도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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