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렸던 ‘겨울나그네’

1969년7월부터11월까지다섯달을나는M읍(당시)의육군병원에서요양생활을했다.

그해4월A시의예비사단에서근무했던나는늘골골했다.

그전해11월인가울진,삼척에무장공비가출몰하는통에예비사단의병력증강이있었다.

광주CAC의한전투병과학교에서사병으로근무했던나는예비사단이란말에자원하여A시로왔지만연말이라눈은많이내리고근무환경은열악했다.

전출간첫날부대에들어서니막사는없고연병장한켠에천막을쳐놓았다.

천막안에는멍석이깔렸고난로가있는데난로주위에는월남에서막귀국한고참병장들이덜덜떨며모여있었다.

얼마후부대에서전입된병사들을모아놓고인적사항을적으라며양식을나눠줬다.

나는도저히근무할엄두가안나비고란에파월신청을했다.당시내주특기는선착순으로파월되었다.

그러나파월은안되고연대인사과에서근무하다가이듬해1월사단인사처로파견되었다.

그때부터몸에이상이왔다.

연대까지가서밥을먹어야하는데가기싫어끼니를걸르기일쑤였고,파견나와불규칙적으로생활하다보니건강에적신호가온것이다.

이걸본장교가의무대에연락하여엑스레이를찍었더니중증TB(폐결핵)판정이난것이다.

의무장교는즉각앰블런스를불러나를D시의육군병원으로후송시켰다.

이곳에서두달여있다가TB전문병원인M읍의육군병원으로온것이다.

군대에서TB환자로생활하는건말그대로천국이었다.

본래이병은잘먹고안정을취하면낫는병이라삼시세끼하얀쌀밥에고깃국,사과나우유,계란을주었다.

어려웠던그시절을생각할때당시상류층의식생활수준이었다.

안정이우선이라점호도없고,계급도없이아침식사후군의관의순시만끝나면하루종일자유시간이었다.

시간이남아도니대개는바둑을두거나라디오를들으며소일했다.

그곳에는서점이있어서바둑책을사서보는게일이었고,그때산바둑책을지금도갖고있다.

또하나위안꺼리는라디오를듣는거였다.

집에서갖다준금성라디오를들었는데,음악채널을찾다보니일본NHK후쿠오카[福岡]방송이잡혔다.

매일아침8시부터2시간방송되는’아침의명곡’이내게큰위안이되었다.

일본어를알아들을수는없었지만음악은만국공통어였으니까-.

초가을어느날아침라디오를켜니슈베르트의’겨울나그네’가흘러나왔다.

디트리히피셔디스카우의노래였다.그날은이상하게첫곡’밤인사(GuteNacht)’가나오는데나도모르게눈물이흘렀다.

곡이거듭될수록눈물이펑펑흐르는것이었다.

마침내침대가벽쪽에있어서벽을보고돌아누워눈물을닦는수밖에없었다.

초가을이주는계절적인우수(憂愁)와음악이주는감동이뒤섞였던것이리라.

음악이끝나라디오를끄고누웠는데군의관이순시를왔다.

내침대앞으로와서라디오를보곤싱긋웃더니"야,아까겨울나그네좋던데…어느방송이야"하는것이다.

우리병실과군의관실이벽을사이에두고붙어있어진료를하며음악을들었던것이다.

요즘도간혹곡을듣다가가슴이먹먹하거나눈물이핑~도는경우가있다.

그렇지만대놓고눈물을흘린건그때그’겨울나그네’가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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