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골’에서 옥수수술에 취해

(이미지사진)

원주에서조지윈스턴의’디셈버’를만난글을쓰다보니잊지못할추억꺼리가생각난다.

1979년1월이었으니삼십수년전일이다.

당시신협중앙회에근무했던나는기관지에연재할농촌신협을탐방하고있었다.

그때원주지역은지학순주교님의사목지침으로농어촌,광산촌의주민복지사업을교구차원에서추진하고있었다.그일환으로취약지역에많은신협들을조직하여지역살리기에앞장섰다.

마침강원연합회의추천으로원주외곽의농촌지역에있는한단위조합을방문하게되었다.

지금은지역이름을알수없고단지’황골’이란동리이름만기억할뿐이다.

‘황골’이란이름도옥수수가많이나는지역이라붙여진것이라고동행한직원이설명했다.

오전10시쯤연합회직원과시내버스를타고’황골’로갔다.

버스종점에내려얕으막한언덕배기를10분정도걸어올라갔다.

그전날눈이내려산길에는제법많은눈이쌓였고,한참을쌕쌕거리며올라가니자그마한부락이나타났다.

그곳조합의이사장을만나인사를나누었다.키가자그만하고호리호리한분이었는데다부지게보였다.

동행한직원이가톨릭농민회에서열심히활동하는분이라고소개했다.

그럭저럭조합취재를마치고사진도몇장찍었다.

마침점심때가되었는데이사장이앞장을서며따라오라고한다.

둘이서따라가니웬움막같은집으로안내를하는것이었다.

안으로들어갔는데,바닥은부엌이고토담위는방으로만든특이한집이었다.

방에앉으니미리얘기를해놓은듯자그만소반에안주한접시와한되들이주전자를그집아주머니가들고온다.보니안주는단무지였다.

이사장이먼길찾아주어수고했다면서주전자의술을따라준다.

이지역의특산주인옥수수술이란설명을덧붙이면서-.

셋이서이런저런이야기를나누며술잔을주거니받거니하다보니한주전자가금방없어졌다.

내느낌으로옥수수술은빛깔이노란게기름기가있어보였다.

술은약간단맛이나는게마시기가생각보다부드러웠다.

한주전자를비우고나니금방또한주전자가왔다.

점심도먹지않고빈속에술이들어가니후끈후끈열이났다.

그러구러셋이서세주전자를비웠다.

세주전자를비우니주인아주머니가술이떨어졌다는것이다.

그말을듣고이사장은"거왜남겨놓은술있지않느냐"며비장(?)의술까지가져오라고주문한다.

아주머니가주전자를들고오면서이술이마지막술이라고강조했다.

그땐셋다상당한취기가올라이술로끝내자고다짐하면서잔을들었다.

이사장은새술을부어주면서좁쌀주라고설명했다.

대취한상태라좁쌀주가얼마나좋은술인지는몰라도그냥물마시듯마셨을뿐이었다.

어떻게눈쌓인언덕을내려와시내버스를탔는지모른다.

눈을떠니다음날아침,여관방이었다.

언덕을내려오며얼마나굴렀는지팔다리곳곳에퍼런멍이들어있었다.

다행히눈길이라옷은멀쩡했다.

이것도잠시,가방속에있는카메라가혹시넘어지면서잘못된건아닌지서둘러확인했다.

가방도얌전히웃목에있었고카메라도이상없었다.

그제야안도의숨을쉴수밖에-.

그로부터십수년후,원주모조합의발전사를집필하면서자주원주에들렀다.

그조합상무에게’황골’이야기를했더니안내를하겠단다.

조합승용차로찾았는데그전모습은없고일종의관광단지로변해있었다.

한식당에들러옥수수술과순두부를시켰다.

상무는생각보다술이독하니조심하라고누누히당부했다.

그러나그날먼저뻗은사람은상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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