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을의 코스모스

‘가을’을떠올리면많은것들이생각난다.

우선추석이떠오르고보름달,전어도생각난다.

아참!단풍과낙엽도있었지.

몇년전만해도가을이면양희은의’한계령(사실은하덕규의한계령이지만)"을참좋아했었다.

그맘때쯤일때문에경북선산엘가서며칠동안여관신세를진적이있었다.

하루는몇분들과점심식사를하고여관엘가는데,길옆의구멍가게서김이모락모락나는오뎅이눈에들어왔다.

날씨도으시시한때라따끈한오뎅생각이나길래들어가서두꼬치를시키고국물도마셨다.

보니막걸리도있어하나시키고손님도없어주인장의양해를구한후갖고다니던휴대용라디오(카세트겸용)를켰다.양희은의’한계령’이흘러나왔다.

처음은은하게흘러나오는반주를듣자니갑자기눈물이핑~돌았다.

그때그양희은의’한계령’이어찌그리구슬프게들리던지-.

구름짙게드리운가을날듣는,그것도객지에서듣는그노래는내가슴을울컥하게했다.

그가을의코스모스는내가초등학교2학년때의추억이다.

1953년가을,정전협정이끝났지만그해가을은참으로을씨년스러웠다.

교실은반파(半破)되어비가오면수업이어려웠고,가마니로얼기설기엮어놓아마치피난민수용소같았다.

학교운동장에서교사(校舍)로올라오는계단도부서지고금이가서볼품없었다.

그래도계단양옆화단엔갖가지색깔의코스모스가피어그나마운치를더해주었다.

우리는코스모스꽃을따서옷에꽂기도하고하늘에날리기도하며놀았다.

삭막했던시절코스모스는한줄기희망의빛과도같은존재였다.

지금도내가아끼는낡은앨범엔누렇게빛바랜사진한장이있다.

2학년담임선생님이셨던여선생님과(성함을올릴수없어그냥^^)급우몇명이찍은사진이다.

명함보다도작은흑백사진이지만내겐무척이나소중한사진이다.

그때만해도사진찍기가쉽지않았다.

코스모스를앞가슴주머니에꽂고빙긋이웃고서있는여덟살소년의모습-.

여러가지로고단했던시절이었지만그얼굴엔엷은희망이보였다.

선생님은진작돌아가셨지만코스모스꽃밭에서웃고서있는친구들은지금어디있을까.

되돌아보면앞만보고달려온시절이라옆의친구들은챙길여유도없었다.

이제일흔을바라보는우리는세상을그렇게살아왔다.

친구도,추억도외면한채-.

코스모스가피는계절이면그래서한번씩마음의몸살을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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