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크리모사(Lacrimosa, 눈물의 날)’를 되뇌이며

내일은모차르트가신의부름을받은지221주기가되는날입니다.

1791년12월5일오전1시부인콘스탄체와친지들이지켜보는가운데모차르트는이승을떠났지요.

피터샤프의원작소설’아마데우스’와소설을소재로한영화때문에모차르트의죽음에대한오해가많았습니다.

대표적인게라이벌작곡가살리에르가독살시켰다는거지요.

또무슨범죄단체에연루됐다거나하는억측도있었습니다만,모두거짓으로드러났습니다.

모차르트는유작’레퀴엠’을끝맺지못하고고심하다가서른다섯의짧은삶을마감했습니다.

모차르트를생각하면떠오르는곡이’터키행진곡’입니다.

피아노소나타11번K.331번의3악장이지요.

그경쾌하고매혹적인선율을처음대한게고1때였습니다.

아침마다등교할때방송실에서베토벤의또다른’터키행진곡'(극음악’아테네의폐허’중)과함께들려주었지요.

학교에서들은게관현악곡이었고,피아노곡은다니던교회에서들었습니다.

연주해주신이는진주우체국앞김내과의큰아드님이었는데지금성함은생각나질않습니다.

그분은슈베르트를닮은분이었지요.교회에서연주한악기는피아노가아니라올갠이었습니다.

그시절’터키행진곡’은내게많은메시지를준음악이었습니다.

모차르트가타계한1791년엔주옥같은명곡들이나왔습니다.

저유명한클라리넷협주곡도죽기석달전에작곡되었지요.심신이극도로쇠약한상태에서,금전에쪼달리면서도그처럼천상天上의멜로디를남겼다니그는분명이세상에온하나님의음악천사였습니다.

그가회색코트를입은남자로부터’레퀴엠'[鎭魂曲]을의뢰받고죽음의그림자를예견했다지요.

그래서후에가짜임이밝혀졌지만이런편지를남겼다네요.

"알지못할그누구의이미지가머리에서떠나지않아.내앞에늘그가서있는것같아.

그는나에게’레퀴엠’을빨리완성하라고강요하고다그치는것같아.

지금나는아무것도안하는것보다작곡하는게덜힘들어서그냥일할뿐이야.

지금내상태를보면시간이얼마남지않았다는느낌이들어.

내재능을더발휘하기전에마지막순간이올것만같아.

하지만인생은얼마나아름다웠는지!내삶은그토록멋진행운의별들아래에서시작했지.

하지만아무도자기의운명을맘대로할수없고,앞으로며칠이나살지알수없는법.

운명은받아들여야할뿐이야.섭리가정한일은오게마련이야.이제그만해야겠어.

내앞에는나의’백조의노래’가놓여있어.미완성인채이곡을남겨둘순없지."

모차르트에게’레퀴엠’을의뢰한사람은음악애호가였던발제크스투파흐백작이었고,회색코트의남자는그의친구로당시빈시장아들안톤라이트게프였다고합니다.

백작은죽은아내를위해곡을의뢰했고,자신의이름으로발표할꿍심이었다지요.

그엉뚱한발상이’불세출의천재’를죽이는동기가되었다니,참으로애석합니다.

물론모차르트는심신이쇠약했었지만재촉받은’레퀴엠’의작곡으로엄청난스트레스를안고있었으니까요.

‘레퀴엠’가운데가장유명한곡’라크리모사(Lacrimosa)’는’눈물의날’로풀이하지요.

이곡도여덟소절까지밖에작곡하지못했는데,이곡을포함한나머지부분을그의제자쥐스마이어가완성시켰습니다.스승모차르트가남긴스케치를참고했다지요.

오늘같은날꼭들어봐야할곡입니다.그의영혼이평안하기를기원하면서요.

모차르트의사인死因은수은중독과신부전증이었다고합니다.

그의유해는12월7일성마르크스공동묘지에안장되었다고하지요.

그날은날씨도좋았고,살리에르를비롯한친지들이장례식에왔었다고합니다.

그런데어떤글을보면,12월7일에광풍과폭우가쏟아졌다고합니다.

한사람의조객弔客도없이수레에실려공동묘지에묻혔다지요.

그래서그의무덤은찾을수가없다고합니다.

반면그의무덤은10년후이장되었고,유해는지인들이보관하고있다가지금어느박물관엔가있다는이야기도있습니다.

지금오스트리아는모차르트라는브랜드로엄청난수익을올린답니다.

모차르트는생전엔귀족들의질시와돈때문에개고생을하다가일찍갔습니다.

그렇지만그가남긴천상의음률은오늘도수십억인류의가슴속에울려퍼지고있습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