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자리

나도이젠손주넷을둔할아버지가되었다.

친손주둘,외손주둘이다.

오늘아침도아내는밥먹다가말고돌을눈앞에둔외손녀가눈에밟힌다며야단이다.

그러면서"옛말에’내리사랑’이라더니그말이맞다"며계속외손녀예나얘기다.

내가한마디했다."아무리손주가좋아도건강을살펴야지.기침을콜록콜록하면서무슨손주야."

지난설날일주일정도딸네가족이우리집에묵었을때아내가감기,몸살로고생했던걸꺼냈다.

그러자아내는질세라말한다."저러니까손주들한테할아버진인기가없는거라고."

그말이맞는것도같다.

내가기억하는할아버지는부지런한농부였지만유독약주를좋아하셨던것밖에는없다.

본래옛진양군문산이고향이셨던할아버지는결혼하고진주로나왔다고한다.그래서지금도큰집은문산에있다.

할아버지는전형적인농부셨고,전답장만하는걸좋아하셨다.

진양호가조성되기전도동에큰과수원이있었고,초전에도논,밭이많았다.

그래서가을이면우리집엔직접거두거나소작인들이가져오는쌀가마니와콩,고구마등속이쌓였다.

내가장손이다보니초등학교시절부터할아버지와한방에서잤고밥도할아버지상에서함께했다.

성질이무척급하셨던할아버지는식사할때일절말을못하게했다.밥상머리에서말을했다간날벼락이떨어졌다.

재미있는건할아버지의아침모습이었다.

약주를좋아하셨던할아버지는매일아침해장술을드셨다.

아침에일어나셔서"에헴"하시면5분이내에어머님이약주를대령해야만했다.

겨울엔대개말린대구를꼬치에꿰어구운안주에따뜻하게데운정종반주전자가아침해장이었다.

막걸리는따끈하게데워서자시곤했다.

여름철엔나물이나고추전종류를좋아하셨다.만일어머님이미처준비를못해5분이넘어가면그날아침은밥상머리가할아버지의잔소리로시끄러울수밖에없었다.

할아버지는내가중학교2학년이던1959년음력11월에돌아가셨다.

‘사라호’태풍이한반도를강타했던그해였다.

그래서지금도내기억의할아버지는불같이성질이급하시고약주를좋아하셨던것밖에는없다.

그토록애지중지모으셨던전답은아버지의사업실패로다날아가버렸고-.

그래도명절이면망건에갓을쓰시고하얀두루마기를입으셨던그모습은지금도눈에선하다.

지난설날우리집으로인사왔던딸네가족은아내의고집으로일주일간머물렀다.

사위도직장이여의도라좀불편했지만그런대로잘지냈다.

문제는아내였다.설전부터감기기운이있어콜록거리다가명절준비한다고몸살끼까지겹쳐골골했다.

그런데도손주들이좋다고붙잡으니’죽는건조조군사’라고손주들치닥꺼리며청소는소롯이내몫이었다.

큰외손녀가원체발발거려1분을한자리에가만있질못하고책이며눈에띄는물건들을헤작거리니그치닥꺼리가보통아니었다.

그렇지만어쩌랴.할미가좋다는데할애비가내칠수야없질않은가.

그래서몸생각하라는충고밖에더할말은없었다.

나쁜할애비로찍힐까봐.

여성들과어린이들의지위향상이극대화되어상대적으로남자들의위상이쪼그라든오늘날할아버지의자리는어디일까.

예전의큰소리치던가부장적인자리는차치하고가족구성원으로서의자리마저제대로차지하고있는지알수없다.

이것이오늘날의잘못그려진세태(世態)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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