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7월의 그날 밤

한가로운일요일오후,베토벤의교향곡6번’전원(Pastorale)’을듣는다.

카라얀이지휘하는베를린필의연주다.

1악장’시골에도착했을때느끼는상쾌한기분’이그대로전달된다.

이음악은사계절중여름에잘어울리고,그중에서도7월에들으면제격이다.

베토벤이거닐었을1800년전후하일리켄슈타트의오솔길이떠오른다.

졸졸졸흐르는시냇물소리,이름모를산새들의노래소리와나뭇잎을간지럽히는산들바람.

예나지금이나’전원’이주는상쾌함은한결같다.50여년전과지금도……

그땐지휘자가부르노발터였던가.

반세기전인1964년7월의그날밤,아마금요일이었을게다.

주피터음악회의정기감상회를매주금요일밤에했었으니까.

처음두번은마돈나다방에서열었고,3회부터는도립병원앞동산예식장으로옮겼다.

그러나참가인원이적어늘적자였고회원들의호주머니를털다못해인근삼성다방으로다시옮겼다.

주인분이음악도좋아하고많은호의를베풀었지만다방에피해를줄수없어또옮겨야만했다.

당시만해도진주시내다방에서음악감상회를열면손님들이들어왔다가도나가버렸다.

단골손님이가버리면당혹해하는주인의얼굴을더이상쳐다볼수가없었다.

운영비가적게드는곳이없을까하고수소문하던중누군가의소개로미국공보원을찾았다.

당시공보원은촉석루옆공원한켠에있었다.그옆에는KBS진주중개소가있었고….

공보원은60년대후반연암문화재단에서그자리에도서관을지어진주시에헌납하면서없어졌다.

그후신後身으로진주문화원이생겼고…

공보원총무C선생은무척호의적으로음악회를도와주었다.

공보원관람석은50여석쯤되었고전면에작은무대가있었다.

실내는열악했고,팔걸이가있는의자는낡을대로낡아있었다.그러나어쩌랴.거의공짜로빌려준다는데….

금요일오후면무선사에서빌린전축과스피커를나르고,곰팡내가나는실내공기를순화시키기위해땀을뻘뻘흘려야만했다.

물론저녁밥은먹을여건이안돼빈속으로견뎌야만했다.

그해7월의금요감상회는오후8시에시작된걸로기억한다.

7시께부터LP음반을걸어놓고’손님’을기다렸다.오늘은몇명쯤올까.

그래도7월은방학때라서울로유학갔던대학생들이더러찾아와서그럭저럭20여석정도는자리를채웠다.

8시가되면시그널음악주페의’경기병서곡’이흐른다.그리고서너곡의소품이끝나고감상곡이오른다.

그날의감상곡이베토벤의교향곡6번’전원’이었다.5분정도의해설을하고음반을건후밖으로나왔다.

대개40여분의시간이걸리므로땀도닦고공원벤치에앉아주위를둘러볼여유가생겼다.

칠흑같은어둠속에촉석루는도도한자태로남강을바라보며서있었다.

공원엔더위를피해바람쐬러나온사람들이심심치않게왔다갔다했다.

남강교위엔자동차들의불빛이한가롭고강건너병풍처럼둘러선대나무밭엔새들의날개짓이요란스러웠다.

그제사시장끼를느꼈다.그렇지만별수있나.금요일저녁은굶는날이니까….

그러나그날은달랐다.누군가어깨를툭쳤다.돌아보니K형이빙긋웃고서있었다.

K형은고교선배였고당시인사동에서약국을열고있었다.

우리들의권유로음악회회장을맡았던형이우유와빵을내밀었다.

"야,밥을굶으면되나.젊은사람이…"어깨를두드리며한마디했다.

‘전원’이나오면그시절7월의그날밤이떠오른다.

흘러간추억은아름다운것.그렇지만그때는매주마다포스터를그려서레코드가게나서점,양복점쇼윈도에사정사정하며붙이던’그짓’이참으로하기싫었다.

방송국에찾아가서로컬프로에감상회광고를부탁했던일과’가리방’을긁어등사기로순서지를찍어내던일들이…

50여년이흘러간지금은그때그시절이그리울뿐이다.그땀방울과배고픔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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