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년 전의 그 날, 의기 논개論介를 추모하며

아차,이런실수가있나.

이달들어의기義妓논개의순국일인음력6월29일(8월5일)에추모의글을남겨야겠다고생각했었다.

그러다가일때문에왔다갔다하다보니날짜를나흘이나넘기고말았다.

오늘아침달력을보며가슴이철렁했지만이미시간은흘러갔다.

지나간시간을되돌릴순없지만늦게나마님을추모하는글을올린다.

논개는1574년전북장수군계내면대곡리(일명장계)에서태어났다.

태어난일시가갑술甲戌년,갑술월,갑술일,갑술시였다.술戌이개여서’낳은(사투리로놓은)개’라는뜻으로논개라는이름을지었다고한다.

성씨는주朱씨로본은신안이었다.

논개에대한내력은내블로그의’그이름논개'(2012.8.13)에서밝혔기에생략한다.

토요토미히데요시가1592년3월30여만의병력으로조선을정벌코자대마도를출발,4월14일부산포에상륙했다.

이것이이른바임진애란壬辰倭亂이다.7년간의전쟁이시작된것이었다.

왜군은호남으로진격하기위해그해8월진주성을침공했지만패전하고말았다.

1차진주성전투에서패한왜군은이듬해인1593년(계사년癸巳年)음력6월12만병력으로진주성을재침공했다.

결국6월29일진주성의7만민관군은장렬히산화했고,성은함락되었다.

논개가기생으로신분을바꿔왜군의축하연에참석,왜장게야무라로코스케[毛谷村六助]를안고남강에투신,순국한것도그날이었다.그때논개의나이는스무살이었다.

지난8월5일순국의날을지나쳐안타깝기그지없다.

아마진주에선추모제가열렸을것이다.

어렸을때그날엔논개사당,논개문과의암에서추모행사가있었다.

그날쯤이면어김없이홍수로남강물은붉은빛으로넘쳐흘렀고,어머니들은자식들에게"이에미(의암이란뜻으로논개를그렇게불렀다)제사니께절대로남강에가모(가면)안된다"고엄명을내렸다.

그렇지만기억에그무렵이면남강에서꼭익사사고가있었다.

420년전의논개를추모하며파성설창수선생이지은’의랑논개의비문’일부를올린다.

<하나인것이동시에둘일수없는것이면서민족의가슴팍에살아있는논개의이름은

백도천도만도넘는다.마지막그순간까지원수와더불어노래하며춤췄고그를껴안고죽어간입술은

앵두보다붉고서리맺힌눈썹이반달보다고왔던것은한갓기생으로서가아니라

민족의가슴에영원토록남을처녀의자태였으며만사람의노래와춤으로보답받을

위대한여성으로서다.(중략)…….피란매양물보다진한것이아니어무고히흘려진그옛날민족의피는

어즈버진주성터의풀거름이되고말아도불로한처녀논개의푸른머리카락을빗겨

남가람이천추로푸르러구비치며흐름을보라.애오라지민족의처녀에게드리고픈민족의사랑만은

강물을따라흐르는것이아니기에,아아어느날조국의따사로운금잔디밭으로물옷벗어놓고

거닐어오실당신을위하여여기에비를하나세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