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추석날 아침의 기적

지금도나는그추석날아침의기적을잊지못한다.

아니,정확하게말하면그일이어떻게이루어졌는지그아침의수수께끼를풀지못하고있다.

그일은내게있어기적이었고,그추석날아침의흥분을지금까지도기억하고있다.

이틀후면추석,60여년전의기억이어제일처럼떠오른다.

그때가국민학교3학년이었으니아홉살이었다.

2월생인나는일곱살에입학했고,그래서친구들은대개나보다한살이많았다.

그신산의시절,우리들의신발은고무신이많았었다.’기차표’인가’동東자표’인가하는고무신을신었는데,그것도대개가검정고무신이었다.

간혹흰고무신을신고다니는친구들은그나마밥술떠기가나은집안의애들이었다.

운동화는설,추석이나되어야간혹얻어신었다.

그것도대개가끈이없는검정운동화로끈자리엔늘어나도록고무로된천이붙어있었다.

그신발도귀해서새신발을사면신발바닥에잉크로반드시이름을큼직하게써놓곤했다.

교실에는신발을벗고들어가므로신발장에벗어두었지만자주도난사고가일어나서신발잃은애들이울곤했다.나도몇번이나신발을잃어어머님께혼난기억이있다.

그래서그시절잘불렀던노래가운데"…예배당에갔더니눈감으라해놓고신발싱켜(훔쳐)가더라"는노래가애들사이에유행할정도였었다.

아홉살이었던그해추석을앞두고나는어머니께’농구화’를사달라고졸랐다.

‘농구화’란묶는줄이있는운동화였다.그걸신고가면애들은선망의눈초리로부러운듯쳐다보았다.

마침한반에농구화를신고거덜먹거리는애가있어어머니께졸라댄것이었다.

어머니는선선히사주겠다고약속했고,나는추석이오기만을손꼽아기다렸다.

추석전날밤,농구화를사오시는아버지를늦도록기다리다가잠이들었다.

잠결에부모님의두런거리는얘기소리가들렸다.농구화를사왔냐며일어나려다가두분이다투시는것같아자는체하고들었다.아니나다를까.어머니는농구화를안사오신아버지를닥달하시는중이었다.

어머니는애가일어나면추석날아침에울고불고할터인데어쩔거냐며한숨을쉬셨다.

아버지는수금이덜되어서이것저것갈라주다보니그렇게됐다며변명을하셨다.

나는속으로이번추석에농구화는물건너갔구나하는생각이들었다.나도모르게눈물이흘러베개를적셨다.

다음날아침,심드렁한기분으로일어나보니머리맡에끈까지맨예쁜농구화가놓여있었다.

생각치도않은농구화를본나는"와~~내농구화"하고소릴질렀고,내고함소리에동생들도깨어나서부러운듯농구화를쳐다봤다.동생들은흰고무신한켤레씩사준걸로기억한다.

내가기뻐어쩔줄모르니까아버지도빙그레미소를짓고있었다.

밤늦게까지없었던운동화가어떻게기적처럼생겼는지나는알지못했다.

아버지가사오시고도어머니를속이셨는지,아니면내가실망할것같으니까신새벽에시장에가서사오셨는지나는도무지알지못했다.그렇지만그건내게있어기적이었다.

훗날까지도아버지나어머니께어떻게운동화가기적처럼생겼는지묻질못했다.

이제두분모두이세상에안계시니그운동화의기적은수수께끼로묻힐수밖에없다.

올해도추석을맞으며그시절의기적을음미해본다.

따뜻한부모님의사랑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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