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추억 속에 듣는 ‘백조의 호수’

가끔고향에갈때마다찾아가는곳이있다.

인사동로터리에있는옛C견직자리다.70년대마산수출자유지역이그랬듯이60년대C견직도아침이면20대안팎의처녀들이구름떼처럼출근했던고향의대표적인회사였다.

반세기가흘러간지금은그자리에대형마트가자리하고있다.그옛날내로라했던견직회사의위용은어디서도찾아볼수없다.그래서그자리에갈때면내마음은아련한추억속으로빠져들었다.

그때사람좋았던그견직회사의S상무를떠올리면서-.

S상무를생각하면먼저생각나는게차이코프스키의’백조의호수’다.

내가군대에서제대하고연암도서관에서60년대의주피터음악회에이어새롭게월요음악회를시작했을때소개받았던분이S상무였다.첫인상이긴얼굴에약간곱슬머리여서멘델스존이나슈베르트를닮았었다.

고등학교선배이기도했던그는그견직회사의사장아들로음악을무척사랑했던분이었다.

우리는그분을음악회회장으로추대했고그는여러모로음악회를지원했었다.

그때그가운전하고다녔던’퍼블리카’란승용차가생각난다.우리는그차를자주이용했고,그는운전기사역할까지기꺼이맡아주었다.

그는많은클래식음반을갖고있었다.그가운데가장탐났던음반이’백조의호수’였다.

그때만해도나는’백조의호수’라면2막의’정경(Scene)’정도밖에몰랐다.그런데그가가진음반은두장짜리였는데전곡이수록된앨범이었다.그것도안드레프레빈(AndrePrevin)이지휘한런던교향악단의연주였다.

나는그음반을몇차례나빌려감상회를열었다.그음반을볼때마다탐이났지만당시만해도귀한EMI의원반이어서가히’그림의떡’일수밖에없었다.

그러다가오랜시간이흐른후우연히음반가게에서이씨디를살수있엇다.그때의기쁨이란-^^.

두장짜리씨디로장장2시간30여분의앨범이었다.그것도안드레프레빈과런던심포니의연주로.

지금도그음악을듣는다.아련한추억속에잠기면서-.

이음악은차이코프스키가남긴세개의관현악모음곡가운데’호두까기인형’이나’잠자는숲속의미녀’를뛰어넘은최고의무용음악이었다.

1871년여동생의자녀들을위해조그만모음곡을작곡했다가1875년볼쇼이극장의요청으로다시만든게이곡이다.

차이코프스키특유의애잔함과’허무한’감미로움이조화를이룬’불후의명곡’이다.

S상무는나를그의집으로초대하기도했다.

인사동로터리인근단층의저택이었다.그와나는커피를마시며그가가진귀한음반들을듣기도했다.

때로는진수성찬의식탁으로즐거운시간들을갖기도했다.

그값진시간들도내가1974년상경하면서끝을맺어야만했다.

2천년대들어(아마그이전일지도)견직회사는문을닫았다.

이젠그자리에대형마트가들어섰다.그가살았던집도여관으로변해있었다.

물론멘델스존과슈베르트를반반씩닮은듯한그의얼굴도볼수가없었다.

그래서’백조의호수’를들을때면웬지내마음은애틋한추억으로가득차있다.

약간의슬픔을동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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