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간 동생과 가을 전어

내일부터9월이다.아직은햇볕이따갑지만아침,저녁으로산들바람이부니정녕가을이다.

밤엔답답해서창문을열어놓고잠을청하지만,새벽녘이면홑이불을끌어당겨야할만큼서늘하다.

젊은날,이맘때는나운영선생이작곡한’아,가을인가’를즐겨불렀다.때로는김성태선생의’기러기울어예는하늘구만리’하는’이별의노래’도’돼지목따는’소리로부르곤했었다.

미국알라바마에사시는카이저님이고향생각하며우리가곡을듣고향수를달랜다는말이실감난다.

요즘티비를보면가을전어가한창이라고야단이다.

전어를떠올리면생각나는곳이있다.지난80년대초경남지역을헤집고다닐때하동진교를거쳐남해로가자면반드시거쳐가는곳이있었다.진교술상마을이었다.

술상마을이란이름이특이해서머리에쏙들어왔다.누군가저동네는무조건술상[酒床]부터차려나오는동네아니야라고해서한바탕웃었던기억이있다.

나중에야그동네가대한민국에서전어가가장많이잡히는곳이란걸알았다.

2천년대초우연히지인과진교를거쳐하동노량으로가다가술상마을에들렀다.기억으로능소화가지천으로피었던계절이었으니5월하순께가아니었나생각된다.

전어철이아니어서포구는썰렁했다.겨우한집인가횟집이있었고,우리는바닷가평상에앉아광어회를안주로술잔을기울였다.아니,지인은운전한다고콜라를마셨고혼자서소줏잔을틀어넣었다.

눈앞에보이는바다건너남해설천면의푸른초목들을눈요기삼아.ㅎㅎㅎ

블로그를통해몇번얘기했지만이맘때는먼저간고종사촌동생생각으로가슴이울컥해온다.

나보다두살아래였지만같은나이의여동생보다더가깝게지냈다.고교시절,음식점을했던고모님이집을얻어나와동생을함께공부하도록배려해주었다.그래서두해가까이한방에서먹고자며지냈다.

동생과나는국수를무척좋아해서60년대초매일저녁마다국수로끼니를때우기도했다.

내가군에있을때아파서설대목에집으로전보를보냈었다.집에서는설날사촌동생을A시로보냈다.

눈이펑펑내렸던날면회온동생과함께외박을나와지새웠던그밤도이젠그리운추억이되었다.

추석때고향에가면국립대학교도서관에서근무했던동생을제일먼저만났다.

언제나반가운얼굴로나타난동생은악수도나누기전형,좋은전어횟집이있는데우떻노하고웃었다.

대낮부터횟집에들어간우리는펄펄뛰는전어회를채소와콩고물,고추장으로비벼소주서너병을해치웠다.

내가동생,제수씨가안멀쿠나(나무래나)하고물으면형,멀쌌노.형이서울서왔는데집사람이문제가.운제부터그리겁재이가됐노하면서인자부터이차다이.그라모실비집부터가까하고앞장섰다.

친구와술을좋아했던동생은국립대학교여러곳으로전근다니며몸을혹사했다.

결국병으로정년을채우지도못하고퇴직한동생은진양호근처살다가종내는사천읍내로이사갔었다.

2002년9월초,성묘차고향에갔다가사천까지가서동생을만났다.그때동생은병색이완연했고제수씨가부축을해서발걸음을떼어놓는정도였다.

그날동생과읍내식당에서점심을나누었다.전어가제철이어서반주를곁들인전어회생각이간절했다.

내생각을알았는지동생은야멸차게말했다.형,낼로봐라.술좋아하다가이리댔다아이가.인자형도술좀고마무라.이리안댈라모.그날나는술소리를입밖에도내지못했다.

넉달후그해12월30일동생은하늘나라로갔다.

동생이먼저간지도열두해가되었다.

이젠하늘나라에서도대충자릴잡았겠지.

가을전어를생각하니먼저간동생이떠오른다.

내일부모님성묘가면같은공원묘지에있는동생을위해서도잠시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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