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의 해후邂逅

내가K부장을만난건참으로우연이었다.그것도자그만치40년만에.

일이있어고향에들렀다가동생들을만나점심을먹으려고들렀던비빔밥집에서였다.

서울과부산,진주에흩어져살다가오랜만에만난동생들과회포라도풀겸대낮부터육회에소주까지시켰다.

왁자지껄권커니잦커니고향사투리를날리며웃고떠드는데누군가가내등을툭쳤다.

뒤돌아본내눈에이젠팔십을넘긴K부장의주름진얼굴이다가왔다.

그는일행도없이혼자였다.구석진자리에둘이앉았을때그당당했던풍모는간데없고이젠쪼그라진왜소한노인만이남아있었다.

72년10월,내가20대후반의나이로지방신문사에들어갔을때,그는부국장겸취재1부장이었다.

위암장지연선생이토호들의협조로창간했던신문사였지만지방의한계로취재기자는몇명되지않았다.

기관출입을담당했던취재1부와주재기자들이속한취재2부가전부였다.

당당했던체구에40대초반의그는서울중앙지에서필명을날리다가영입돼온것이었다.

나와K부장의악연惡緣은그때부터시작되었다.

입사후석달만에교정부를나와시청출입을맡았을때그가사수射手였다.신참인내가시청공보계에들러보도자료를받아나왔다.그걸근거로기사를써올리면어김없이부장의질책이날아들었다.

이봐,P기자.이것도기사라고써온거야.내가발가락으로써도이것보다는낫겠다.

그러고는옆의휴지통으로원고지는던져졌다.그때의그모멸감이란.굴욕도그런굴욕이없었다.

지금도기억나는사건이있었다.당시누군가의제보로진주성지晉州城址안이조명기구의미비로밤이면암흑천지란기사를쓰게되었다.부장의잔소리가듣기싫어두차례나밤중에성지를답사하는수고끝에기사를만들었다.그렇지만예외는없었다.

어이,P기자.이런기사가어딨어.그래,현장에가보기나한거야.

원고는여지없이그의옆휴지통으로들어갔다.그때는나도젊은혈기를누르지못했다.

부장님,그렇게잘쓰면직접써보시지요.저는더이상못합니다.

자리를박차고일어나자선배기자들이말렸지만뿌리치고편집국을뛰쳐나왔다.

결국편집국장까지나서서중재를한후에야K부장과화해를할수있었다.

국장은짐짓내게호령을내렸지만마무리는이렇게했다.

K부장,일도좋지만신참들그만좀잡아라.

그후에도부장과의다툼이있긴했지만그전과같은노골적인야유나인격모독은없어졌다.

내가직장을옮겨상경하게되었다.74년4월회사에사표를제출하고부장에게인사를드리자저녁에좀만나자고했다.그때만해도술한잔못했던나를부장은일식집으로데려갔다.

맥주한잔을놓고앉았을때부장은이외의소리를했다.

P기자,내한테참섭섭했지.내가성질이못돼남을무시하는것도있지만내가당신한테성질을부린건다른이유가있었던거야.보니까글도웬만큼쓰고해서진짜신문기자한사람키워보려고못된소리를많이했던거야.그런데당신은서울로가고나는닭쫓던개가돼버린거라니까.

좋은자리잡아가는데말릴수야없지만언제라도돌아와.당신자린항상만들어놓을테니까.

벌써시간이40년을넘겼다.부인을먼저보내고아들과함께산다는K부장은연신소줏잔을기울였다.

걱정이되어천천히마시라고했지만예전실력아직도남았다며큰소리로웃었다.

어쩐지노인의웃음소리가공허하게만들려왔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