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한 마리 뜯으며…

설날을며칠앞두고아내의주문이떨어졌다.중부시장에가서명태한축사오라는.

시집올때만해도명태를뜯는재미를몰랐던아내는우리가족들이설날무렵삥둘러앉아명태를뜯으며우의를다지는모습을본후그재미에빠져들었다.

아니,명태살을쭉쭉찢어양념에찍어먹는그맛에빠져들었을것이다.

5,60년대그곤궁했던시절에도할아버지는초겨울이면대구를몇’하꼬(나무상자)’씩사서내장을발라낸후새끼줄에묶어널었다.할아버지가돌아가신후역시아버님도겨울엔어김없이대구를널어말렸다.

한달여찬바람에꾸덕꾸덕마른대구는긴긴겨울밤우리가족들의빼놓을수없는먹거리가되었다.

겨울밤,기분좋게약주를한잔하신아버님은자식들을큰방에불러앉히곤잘마른대구한마리를뜯었다.

그뜯는기술은아무나하는게아니었다.우선식칼로대구대가리를싹뚝자르고는등뼈를중심으로살을져며나갔다.그러기위해선껍질을벗기는게우선이었다.

마른살코기를적당한크기로다듬은후먹기좋게손으로찢어나갔다.

알맞게찢은대구포는고추장에찍어먹었다.

어른들이야약주한잔하셨지만,어린우리들은새콤한동치미(고향에선’동김치’라고했다)국물을마셨다.

찬바람이우는승냥이소릴하며지붕을훑고지나갈때우리는대구포를질겅질겅씹으며연신동치미국물을마셨다.찬국물에몸서리를치면서도먹었던그대구포의맛은지금도잊을수가없다.

7,80년대에들어대구가귀해지자’꿩대신닭’으로명태를뜯기시작했다.

깨끗하게잘말린명태의맛은대구에결코뒤지지않았다.80년대들어저마다일가를이룬우리형제들은설날이면모여앉아명태를뜯으며추억담을나누었다.물론막걸리한잔도곁들이며.

명태의소스는고추장이아닌김치속이었다.잘숙성된김치속에꾸덕꾸덕한명태포를찍어먹노라면그맛은가히일미였다.그래서어머님은김장담그면서일부러김치속을별도로만들어숙성시키는수고를하셨다.

엊저녁베트남에서귀국하는아들내외를기다리며티비를보던아내가명태를한마리뜯자고제안했다.

그거야’불감청고소원’이지.식칼로명태살을발라나가는재미도좋았다.

덤으로명태뜯는수고에막걸리한잔해도좋다는’윤허’까지떨어졌으니,앗싸,호랑나비!

어제아침영종대교의교통사고로베트남에서의출발이지연되어아들내외는자정이넘어서야잘왔다는전화를해왔다.그때쯤나는막걸리에기분좋을만큼취해갔다.ㅎㅎ

이젠나도명태를뜯으며추억도함께뜯어가는늙은이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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