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찬손

그대,설연휴엔잘쉬었겠지요.

이젠교직을떠난지도한참되었으니그때처럼일에파묻혀못살겠다는앙탈은없을터이지요.

그대를마지막만난게벌써서른해를넘겼으니요즘의일상이궁금하긴합니다만,다부질없는노릇이겠지요.

진작두어번전화를드리긴했지만응답이없었으니까요.하긴,새삼전화를주고받을처지도아니지만.

지난해여름고향에들렀을때전화를넣었더니낯선남자의목소리가나와얼른끊었습니다.목소리의주인공이아드님이었거나다른사람이었더래도자칫오해의여지가있을것같아서였지요.

지금생각하니너무심약한판단이었다는생각도듭니다만,아무튼그게올바른선택이었기를빌뿐입니다.

엊그제설날을보내고나니문득그대생각이떠올랐지요.

아시지요.그해설날의애틋했던만남을….

사십년을훌쩍넘긴일이어서아둔한제기억도가물가물합니다만,그새하얗던지리산자락의겨울풍경은결코잊을수가없습니다.조그만한교사校舍추녀끝에달렸던고드름과햇빛을받아반짝였던지붕위의눈,하얀눈옷을입고서있던교정의앙상했던플라타나스가지들까지도아직은생생하게기억하고있습니다.

그설날아침그대를떠올린건분명히호박시루떡때문이었습니다.

차례를끝내고가족들이빙둘러앉아방바닥에음식들을놓았을때제눈에먼저들어온게호박떡이었습니다.

그대도알다시피우리고향에선차례나제사를지내곤방바닥에음식을놓고먹었지요.모르는사람들은경우없다고탓할수도있지만조상의영정앞에서자손들이상위에음식을차려놓고먹는건오히려불경不敬이라고생각했었던고향사람들의정서때문이었지요.

어쨌거나그호박떡이그날그대를찾게된빌미가되었습니다.

그며칠전그대와만났을때하필설날학교에볼일이있어가야된다며한숨짓는소릴들었지요.

설날부모님이계신H읍엔가지도못하고어쩌면도시락싸들고학교가야된다는말을들었을때만해도제가학교까지찾아간단생각은솔직히못했습니다.

그렇지만유독호박떡을좋아했던그대를생각한순간저는맹랑한용기를내게되었지요.

어머니께는일때문에고향에못간친구가있다며둘러대고호박떡과몇가지먹거리를쌌지요.

지금은지리산까지멋진도로가뚫려고향에서불과삼사십분거리지만,그때만해도그곳까진시외버스로두어시간넘게걸린비포장도로였습니다.

원지에서경호강다리를건너한시간을넘게달려종점에닿았지요.그종점에서다시걸어삼십여분을더가야조그만학교를만날수가있었습니다.

제법묵직한짐보따리를들고걷는다는게생각보다만만치않았습니다.그보다더제마음을초조하게만든건점심때맞게도착했으면하는조바심이었지요.

고향에서만나지못한눈[雪]을그곳에서보았습니다.

멀리흰눈을머리에인천왕봉도요.허허벌판을하얗게물든인눈들과날카로운굉음을내지르며얼굴을할키고달아나는폭풍도만났습니다.

지금생각하면참으로멋진겨울풍경이었지만그때제눈에는아무것도보이지않았지요.

오로지점심시간전에학교까지도착해야만한다는그마음뿐이었으니까요.

마침내조그만교사가눈에들어왔을때의그기쁨,환호성이라도지를뻔했습니다.

보따리를들고눈길을뛰다가한차례미끄러졌지만그건아무것도아니었지요.

그보다더기뻤던건교무실창문으로보았는지그대가함박미소를짓고현관앞에서있는걸발견했을때였습니다.

청소라도했는지그추운날소매를걷고맨손으로서있었지요.

그때제게좀더큰용기가있었더라면얼른달려가그대를껴안고한바퀴빙글돌았을겁니다.서양영화를보면연인들이잘했던그포즈로말이지요.

그렇지만저는먼저손을내미는그대의손을마주잡는것으로만족했습니다.

아,그런데그대의그손은참으로시린찬손이었습니다.

그대,그찬손이아직도제기억에남아있습니다.

해맑았던그대의미소와함께.

웬지오늘은푸치니의오페라’라보엠’에나오는’그대의찬손(Chegelidamanina)’을듣고싶습니다.

젊은시절마리오란자가부르는노래를즐겼지만오늘은스테파노의목소리로듣고싶네요.

그대,늘건강하시고편안한나날들되시기를빌면서,이만줄입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2 Comments

  1. 엘에스디

    2016년 10월 24일 at 7:11 오후

    그리운 그 시절에 나오는 그대와 그 가을의 여인은 같은 인물이렸다. 아무리 꽁뜨라고 네가 우겨도 이건 분명non fiction이다. 한 발 양보해서 90%의 fact에 10%의
    fiction이 다해 진 것이 분명하다.

    • 바위

      2016년 10월 26일 at 10:28 오전

      상덕아,
      픽션 90%에 팩트 1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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