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의혹-3, 끝] 그는 메크 부인을 사랑했을까?

젊은시절차이코프스키의음악에푹빠졌던때가있었다.

그의현악4중주곡1번2악장’안단테칸타빌레’에매료된후유명한무용조곡’백조의호수’와’호두까기인형’을들으며가슴속에서치밀어오르는뜨거운열정을억제할수가없었다.

지금도떠오르는추억이있다.67년12월군에입대하여훈련받을때,추운겨울아침일찍야외교육장에나가앉았노라면철조망너머진주-부산간을달리는시외버스가지나가는걸볼수있었다.아,저버스만타면우리집으로갈수있는데하는생각이들면못견디게부모님과할머니,동생들생각이났다.

그때내머리속에떠오른멜로디가’호두까기인형’중’아라비아의춤’이었다.그잔잔한선율을마음속으로되뇌이며마음을진정시키곤했었다.

아,한곡더있었지.멘델스존의교향곡3번’스콧틀란드’2악장도엄청떠올리곤했다.

잠간,’아라비아의춤’에대해더설명을드려야겠다.

이곡은’호두까기인형’의5곡으로4곡인’트레파크’와는대조적으로오리엔탈무드를풍기는G단조3/8박자의춤.

나른한근동지방원주민의북소리를모방한비올라와첼로의리듬을타고잉글리쉬호른과클라리넷이동양적인무드를조성한다.이윽고뮤트(약음기,弱音器)를낀바이올린이노스탈저(懷鄕)가서린멜로디를감정을담아서울린다.

이멜로디를중심으로전개되던아라비아의춤은고요히끝을맺는다(박용구저’교양의음악’에서).

차이코프스키의인생에서가장중요한사건이메크부인과의만남이었다.

말이만남이지단한번도두사람은만나적이없었고14년동안1,200여통의편지를주고받았으니그의삶에있어그누구와도비교할수없는인연이었다고하겠다.

부인이차이코프스키에게첫편지를보낸것이1876년이었다.그때그는결혼문제로고민하던서른여섯살의총각이었고,부인은9년연상인마흔네살의과부였다.부인의남편은철도사업으로부를일군부호였지만둘사이에18명의자녀를낳아11명을남기고죽었다.

(메크부인)

메크부인은차이코프스키에게몇곡의소품들을의뢰했다가파격적인제안을했다.

부인은첫편지에서"당신은제게신과같은존재입니다"고예찬한뒤매년6천루불의연금을지원하겠다고했다.단지조건이있는데절대로만나지말자는것이었다.그역시마다할이유가없었다.여자와의만남에극히소극적이었고,내키지않는결혼문제로마음이편치않았던차이코프스키에겐참으로마음에드는제안이었을것이다.

메크부인의지원금과황제로부터연금까지받아차이코프스키는작곡에전념할수가있었다.

비록두사람의만남은없었지만매년85통의서신을주고받았으니거의1주일에한통씩을주고받은셈이다.물론처음에는지극히사무적인사연이오갔겠지만감정의동물인인간들,그것도남녀가주고받았으니평범한얘기들만오고갔을수가없었다.

차이코프스키가제자안토니나밀류코바와결혼을한것이그로부터1년후였다.이결혼을안부인은이런사연을적어보냈다."아주부당한일이지만제가질투심을가지게된것을아시나요?당신이결혼할때저는가슴이찢겨나가는듯한고통과괴로음을참을수가없었습니다.그부인을생각하면정말고통스럽고가슴아픕니다"

이에대한답장이었는지는몰라도차이코프스키의사연역시심상치않았다.그는이런사연을띄웠다.

"제가온몸으로당신을사랑한다는것을말씀드릴필요가있을까요?저는여태까지당신처럼저에게가깝게있고저와닮았으며저의모든생각과가슴의고동소리에귀기울여주는사람을만나보질못했습니다."

이때는이미그가밀류코바와의결혼생활을청산한후였다.하긴,결혼생활이래야일주일만에끝났지만.

메크부인은이런사연도보냈다."진정으로선생님을뵙고싶을때도있지만선생님의음악을들을수록두려워졌습니다.오직음악을통해서만선생님의마음속으로들어가는것이좋을듯합니다."

차이코프스키또한서신으로화답했다."저와의만남을통해제음악에대한사랑이깨져버릴까우려하시는부인의마음을충분히이해합니다.저역시인간이기에부인과같은생각입니다."

이와같은서로간의애틋한마음이결실되어작곡된것이교향곡제4번이었다.그는부인을위해이곡을만들었고,부인의요청에따라’나의가장좋은벗에게’란부제를붙였다.

차이코프스키는이곡을’우리들의교향곡’이라고불렀다고도한다.

그렇지만인간의정이영원할수는없는법이다.

마침내1890년10월메크부인은"파산을해서더이상연금을보낼수없다"는사연을끝으로그와의관계를청산했다.부인의일방적인통보로14년간의관계를끝낸것이다.

이에차이코프스키는부인에게몇차례서신을보냈지만,부인으로부터어떤사연도받아볼수가없었다.

그는비통한마음으로부인을증오하기까지했다고한다.

그로인한충격때문이었을까.기록을보면,메크부인과의관계가두절된후그의심신은더욱나약해졌고얼굴은몰라보게늙어갔다고한다.그리고3년후인1893년11월6일세상을떠났다.향년쉰셋의나이로.

메크부인의삶도마찬가지였다.

부인은차이코프스키가타계한지석달후인1894년1월세상을떠났다.마치그를뒤따르기라도하듯이.

이걸보면서의혹을뿌리칠수가없다.과연그는진심으로메크부인을사랑했을까?

그해답은차이코프스키본인만이알고있을것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