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 아지매

계용묵이지은’백치白痴아다다’나나도향의명작’벙어리삼룡’은장애인의애환을담고있다.

나애심씨가불렀던가요’백치아다다’도심금을울렸지만,김진규씨가주연으로명연기를보였던’벙어리삼룡’은청년기의내게많은감동을주었던영화였다.

어린시절내가살았던동네에도약을잘못먹여저능인간이된정신장애자가있었다.20대의청년이지만정신연령은대여섯살정도밖에안돼언제나콧물이나침을질질흘리고다녔고바지는배아래로흘려내려있었다.

그가하는일이라곤동네우물에와서두레박으로물을길어집으로나르는것이었다.

그가우물가에나타나면짖궂은애들은그의이름을부르며놀려댔지만그는언제나멍청한웃음만흘렸다.

개나리꽃이필무렵이면떠오르는애달픈사연이있다.

내겐먼친척으로고모뻘이되는분이지만불행히도태어날때부터벙어리였다.벙어리를고향에선’버부리’라고했는데,우리는그의이름을따서영희아지매(아주머니)라고불렀다.

나이는나보다도열다섯살정도가많아내가초등학교2,3학년이었을때아지매는스무살이넘은처녀였다.

영희아지매가살았던집은우리집건너편에있었다.

우리가어린시절매일같이올라가뛰놀았던보리당으로가는길목의좁은골목에마주보고있었다.6.25사변직후의궁핍했던당시그래도우리집은양철(함석)지붕이었다.당시많은집들이초갓집이었던시절이라그래도우리집은그나마괜찮은편이었지만,영희아지매네집은고랫등같은기와집이었다.

대청에큰방세개가딸린본채가있었고사랑채와문간채가따로있었다.

할머니를’성님(형님)’으로불렀던영희아지매모친을우리는작은할매로불렀다.작은할매는그때중앙시장에서건어물장사를했는데점포가무척컸었다.우리가그집에가면언제나수루매(말린오징어)나말린열합(홍합)같은먹거리를주어핑계거리만생기면쪼르르건너가곤했다.

혼자사시는작은할매에게는아들셋과딸하나가있었다.

큰아들은전쟁에나가오른팔하나를잃은상이군인이었고,둘재아들은연희대(연세대의전신)를나와교편을잡고있었다.막내아들은나보다열살정도많았지만나는’아재(아저씨),아재’하며따랐다.그리고딸하나가영희아지매였고벙어리였다.

막내아재가나를좋아해서저녁밥만먹으면그집으로건너갔다.

그집은우리집보다저녁밥을늦게먹었는데,간혹저녁식사준비를하는아지매가도끼로장작을패는광경을볼수가있었다.당시만해도언어장애인을위한학교가없어아지매는학교근방은가보지도못하고집에서청소하고밥하는부엌데기로살고있었다.아지매가씩씩거리며장작을패면작은할매는끌끌혀를차며저년이저래도심(힘)이장사라.아이고,저년을오데다가치아묵으꼬하며한탄을했다.

비록아지매가말은못하지만어린내눈에는꽃처럼예쁘장한처녀였다.

아지매집으로놀러가면그녀는유독나를좋아했다.

어버버버하는말과손짓으로나를오라고불러잘구운오징어나누룽지를가만히쥐어주곤했다.

그러고는내가좋아하는’새벗’이랑’학원’같은잡지를꺼내주었다.초등학교2,3학년때라’학원’은어려웠지만’새벗’은참으로재미있고유익한책이었다.그잡지에서강소천선생의작품을많이도읽었다.지금도기억나는것은장편동화’진달래와철쭉’이었고"꽃신’을읽고는한참이나눈물을흘렸던기억이있다.

내가초등학교5학년인가되었을때영희아지매는시집을갔다.

도동인가초전쯤되는변두리지역에사는가난한농사꾼에게시집을갔다.어른들이하는얘기로는논서너마지기를지참금으로해서시집을보냈다고했다.

동네사람들에게푸짐한잔치를베푼후가마타고떠나는아지매에게작은할매는울먹이며말했다.

영희야,가서잘살거래이.니가숙구(성질)가좋응께잘살겄지만우떻튼지참고살거래이.

예쁘게한복을차려입은영희아지매는부끄러운듯가마안에서아뭇소리없이앉아있었다.

그렇지만장애인의시집살이가좋을리만무였다.

겨우일년을넘긴후부터영희아지매는두달이멀다하고집으로쫓겨왔다.

간혹작은할매의울음소릴듣고살며시그집으로들어서면대청바닥에보따리를던져놓고모녀는부등켜안은채울고있었다.아지매의얼굴은퍼렇게멍이들어있었고할매는가슴을치며울부짖었다.

이년아,니가복이없어뱅신(병신)으로나왔는데내보고우짜라쿠네.니죽고내죽자.

그런난리를몇차례나겪은후내가중학교1학년때결국영희아지매는죽었다.모진겨울이가고개나리꽃필무렵이었다.들리는말로는쥐약을먹고죽었다는것이었다.

아지매가죽고나자이상하게작은할매집이몰락하기시작했다.

사기를당해어물전도남의손에넘어갔고저택도팔아빚잔치를했다고어른들은수근거렸다.

그로부터3년이나지났을까.내가고등학교2학년때어떤변두리동네를지나다가우연히작은할매를보게되었다.

할매는초라한판잣집의울타리를턴작은가게에앉아있었다.앞에놓인물건이래야뻥튀기몇개와박하,사탕같은군것질거리조금이었다.머리가하얗게센작은할매는삶이고단한듯가게한켠에서꾸벅꾸벅졸고있었다.

나를보면할매가오히려당황할것같아먼발치로피해서갔다.

하늘나라로간영희아지매가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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