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974년의 목련꽃

그럭저럭햇수가41년이나되었다.

내가고향을떠나서울로온게1974년4월초였으니타향살이도어언마흔해를넘겼다.

그해봄,다녔던신문사를사직하고졸지에별정직공무원이되어터를잡은곳이화곡동이었다.이삿짐은진작화물차편으로보내고아내와돌을지낸두살배기아들과함께서울역에내렸다.택시를타고김포공항쪽으로가다가좌측으로꺾어하이웨이주유소를지나전셋집앞에내렸다.

그곳이그때말로한전韓電십만단지라고했었다.

나중에알고보니우리집옆에mbc-fm의유명한디스크자키P씨도있었다.같은동네살았던처형이주선해준집이었지만당시돈50만원을주고얻었으니집꼬라지야일러무삼하리오.

주인집귀퉁이의단칸방에작은부엌이딸린명색이단독주택이었다.여름이면찜통이었고겨울이면외풍이세어방안에서도외투를입고지내야될지경이었으니까.

지금생각하면가슴이아프다.

그래도아내와아들은잘견뎌주었다.

군소리없이,박봉이었지만출근할때면도시락에김치는국물흘릴까봐마요네즈병에넣어살뜰하게챙겨주었다.

내위의과장이보리밥도시락에빨간김칫국물이흐른밥을먹었던데비하면참으로고맙게생각했다.

하긴,그과장이나중에한국은행총재가되긴했지만그땐참애처롭게보였다.ㅎㅎ

내가화곡동에내려처음봤던게하얀목련꽃이었다.

고향에선볼수없었던꽃을서울와서처음본것이었다.집담장너머하얀꽃망울을터트리고있었던그꽃을본순간고향을떠난설움에울컥눈물이치솟았다.

그래서지금도양희은이불렀던’하얀목련’을좋아한다.

이사한다음날통근버스를타고중앙청으로출근했다.

총무과장은나를데리고보좌관(차관),장관까지인사를시켰다.

점심때가되자내직속상관이었던실장(당시직급은1급관리관이었지만후에국회의원,장관을지냈다)이점심먹으러가자며국무위원식당으로데리고갔다.그날처음으로비프스테이크맛을보았다.

저녁에는과장들이나를데리고신고식시킨다며사직공원앞대포집으로데려가서막걸리를먹이는통에영화진흥공사앞에서89번버스를탔지만졸다가종점까지가야만했었다.

우리동네에도목련이화사하게피었다.

아내가지방으로내려간바람에어젯밤잠을설쳐사무실도하루제켰다.

S쇼핑에가서참치회와석류주재료들을사왔다.아내가집에서요양하는동안막걸리와매실주를마셨지만그래도내겐석류주가제일이다.

전기밥솥에밥까지지어놓고석류주를곁들여한잔마셨는데아내로부터문자가날아왔다.

술마시지말고있으라고.가만생각하니부아가치민다.내나이가몇인데아직까지군기를잡으려고하나.

몇잔더마실터이다.

신문을보니미국어떤대통령은바람피우다가밤에마누라한테책으로얻어맞았단다.

나는그런죄지은적없으니설마그렇게까지야.

힘있을때먹고마셔야겠지.

오늘저녁도롯데가삼성을깨주기를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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