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추억나들이 (15)

진경의부축을받고서야영호는버스에서내릴수있었다.

오데다방에라도가까예.이래가지고집에가겄십니꺼.

진경의말에영호는건너편대포집을가리켰다.

다방보담도저게대폿집에가서한잔더했시모좋겄는데예.

술을먹어선지영호는대담해졌다.오늘처음본아가씨를억지로끌고갔다.

참,선생님본께우리아부지보는거것십니더.우리아부지도술을참좋아하거던예.술만잡수모어머이한테그리잔소리로들음선도또마신다말입니더.

막걸리를시켜벌컥벌컥마시는영호를보며진경이안쓰러운얼굴로말했다.

아버님이무신일하시는데예.

촌에서중학교선생님으로있십니더.참얌전하고젊잖으신분인데예,우째서술을그리키도드시는지몰라예.우리학교선생님들도전부진주살고있거든예.사실술첸사람뵈기싫어도망갈라캤는데예,교감선생님이지보고서선생님좀모시주라캐서억지로남았는기라예.

영호가따뤄주는술을진경도한잔마셨다.

앞으로하선생님하고대포한잔씩하모좋겄네예.하하.

그날이후영호와진경은가까운사이가되었다.나이도비슷한데다가속내를털어놓고얘기할상대가둘밖에없었서그랬는지도모른다.봉곡동에서자취를하고있던진경을영호는가끔씩찾아갔다.그곳에는진경이보물1호로꼽았던오디오가있었기때문이었다.

그때만해도오디오는전축이라고해서라디오와앰프,턴테이블에양쪽스피커가달린가구수준의기기였다.

그러나진경이가졌던오디오는두껑이달린박스형이었다.영호도고전음악을좋아했지만진경역시광팬이었다.바흐나슈베르트를좋아했던영호와는달리진경은포레나생상,드뷔시와같은프랑스작곡가들을더좋아했다.그중에도포레(GabrielFaure)의’비가(悲歌,Elegie)’를무척좋아했다.잔잔한피아노의선율을타고물흐르듯흘러나오는첼로의감미로운음색을영호도즐겨듣게되었다.

영호가진경의방을찾는날은반드시두세장의엘피음반을가져갔고진경이타주는커피를마시며음악얘기로시간을보냈다.영호에게그시절은영원히지울수없는시간들이었다.

대리교사를석달만에끝내고도둘의만남은계속되었다.

그게사랑이었을까.훗날까지영호는자문해보곤했다.9월의가을학기에복학을준비하면서영호는서울행을포기하려고마음먹기도했다.그것은진경과의사이를유지하기위해서였다.차라리복학을그만두고내년에교육대학에진학해서진경과같이교편을잡았으면하는생각까지했다.

영호가그얘기를꺼냈더니어머니는펄쩍뛰었다.

뭐라꼬?교육대학간다꼬?야가뭐라쿠노.애럽거로공부해서서울꺼정가놓코뭔소리하노.

영호의속내를알수없는어머니는한마디로면박을주었다.

두어달후면서울로가야하는영호의마음은조급했다.그렇다고진경에게속마음을털어놓기에는결단이서지않았다.진경의마음을알수없는데뭐라고고백을할수도없었다.내가서울가서졸업하고취직하면우리결혼하자.이런말을꺼냈다가코웃음이라도산다면말이아닐터이다.

영호는자신이없었다.서너달사겼다고함부로사랑고백을했다가면박이라도당한다면어쩌나.

뜸만들이며갈피를잡지못하다가결국은내원사(內院寺)의’사건’이터지고말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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