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슈베르트를 위해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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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슈베르트(FranzSchubert),지금은 ‘가곡의 왕’이란 별칭을 붙여놓고 좋아들 하지만 그의 길지 않은 삶은 무척이나 고단했다. 1797년 1월 31일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828년 11월 19일 타계했으니 서른한 살의 짧은 생애였다.

그 서른한 해를 살면서 보통사람이라면 다하는 결혼조차 못했다. 그토록 가슴 태우며 사랑했던 여인들이 있었지만 붙잡을 수가 없었다. 변변한 직장조차 없었고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에서 쫓겨나 떠돌아다녔으니 머리 누일 단 칸 방 하나 없었다. 그의 피아노 음악 제목처럼 ‘방랑자’로 젊은 시절을 보냈으니 어느 여인이 그의목메인 청혼을 받아줄 수 있었으랴.

 

오래 전 어린 시절이어서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글이 생각난다. 서양 음악사에서 세 사람의 위대한 작곡가로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를 평가하며 쓴 글이었다.

그 글에서 모차르트는 귀족을 위해서 작곡을 했고 베토벤은 민중을 위해, 슈베르트는 친구를 위해 작곡을 했단 글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참으로 정확히 짚은 글이었다.

또 하나, 추운 겨울날 스토브도 없이 꽁꽁 언 손으로 열심히 작곡하고 있는 슈베르트의 방을 누군가 찾아왔다. 하얀 눈을 덮어쓰고 찾아온 사람은 그의 형님. 형님은 한마디를 전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긴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이미 다 아는 일이니까.

슈베르트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도와주었던 친구 쇼버와 더불어 응어리진 심사를 풀기위해 몸을 던졌다가 몹쓸 병에 결려 아까운 나이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얼마나 외롭고 안타까웠을까. 분을 못 이겨 술을 마시고 유흥가를 떠돌다가 세상을 하직했으니 말이다.

죽을 때까지 ‘겨울나그네’ 원고를 고치고, 베토벤의 현악 4중주를 한 번 더 듣기 원했던 그의 심정.

그는 편안히 눈을 감았을지 몰라도 나는 알지 못할 분노로 가슴이 아프다. 그때 그의 연인 테레체 글로브가 못 이긴듯 슈베르트를 맞아주었더라면, 눈이 밝은 출판업자가 그의 원고를 좀 더 좋은 값으로 사주었더라면, 그 시절 청중들이 롯시니보다 슈베르트를 더 알아주었더라면 아마도 슈베르트는 오래 살았을 것이다. 오붓한 가정도 꾸리고 알토란 같은 자식들도 낳았겠지. 그래서 더 아름다운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의 상처 받은 마음을 다독여주었으리라.

 

오늘 일찍 집으로 왔다. 사무실에서 쓰기 시작한 이 글을 매듭짓고 나름대로 혼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였다.늦은 점심을 먹으며 창밖을 보니 우산을 받쳐든 사람이 보인다. 석류주 한 잔을 따뤘다.

그래, 고단했던 시절, 한 잔 마시고 집에 와서 울고 싶을 때면 들었던 ‘겨울나그네’의 첫 곡 ‘밤인사’.

그 동안 그의 주옥과 같은 음악들로 해서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던가. 나는 슈베르트에게 큰 빚을 졌다.

그는 짧은 생애에 감미로운 음악으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갈채를 받았건만, 그 두 배를 넘게 산 나는 과연 무엇인가.

칠십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자괴심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래서 오늘은 슈베르트를 위해 울고 싶다.

그 삶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억울했던 서른한 해의 신산했던 삶을 다독여주며 울어주고 싶다.

앗차, 음악이 있어야겠지. 오늘은 그의 음악 중 ‘네 손을 위한 환상곡 F단조(D.940)’를 올려야겠다.

슈베르트 선생,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선생을 추모하며 또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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