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위한 ‘거울 속의 안나’
셋째동생이상경했단소식을들은것은내게청천벽력같은소리였다.
그소식을전해준둘째동생에게몇번이고그게정말이냐고물었다.처음두세번은예,행님.셋째가서울로올라온기사실입니더하고차분히대꾸하던둘째도연거푸몇자례더묻자아아참,그리몬믿겠시모찾아가서만내보모뒬꺼아입니꺼하고짜증섞인목소리를뱉었다.
어쨌거나내겐’아닌밤중에홍두깨’격인날벼락이었다.
4남1녀형제가운데나는맏이였다.그것도문중의장손이었다.
내아래로두살터울의여동생이있고,나머지셋은남동생이었다.그래서여동생을제외한남동생셋을우리는둘째,셋째,막내로불렀다.둘째는나보다여덟살작았고셋째가열두살,막내가열다섯살어렸다.
그러다보니남동생셋은나를부모처럼어려워하며큰형으로대접해주었다.
독서와음악을좋아했던나와는달리둘째와막내는유달리주먹이쎘다.
어릴때골목에서애들과놀며종종또래들을잘때려말썽을피웠지만그러려니했다.하지만,둘은중,고등학교에올라가서도싸움질을잘했다.차라리얻어맞고오면속은편할터인데남을잘두들겨어머니는사흘들이로맞은애들의집을찾아다니며용서를빌어야만했다.그때마다나는둘을불러다놓고귓방맹이를갈기곤했다.
싸움질과는거리가먼내주먹이었지만둘은피하지도않고잘맞아주었다.내주먹이약해서였을까.맞으면서도실실웃는꼬라지에약이올라나중엔장작개비를들정도였으니까.
둘째와막내에비해셋째는나처럼싸움질과는거리가멀었다.
얼굴도형제중에가장곱상한편이었고성격도온순하고부드러웠다.유달리깨끗한걸좋아해서항상운동화를씻어말렸고흙이라도묻을라치면물걸레로정성껏닦기도했다.
대학을나와C시의대기업에서노무관리업무를담당했다.내가80년대중반직장을나와작은사업체를꾸리며고전하고있을때명절에만나면일부러술집에데려가한잔사곤했다.그때셋째는내게이런말을했다.
행님,그리잘나가던행님이와이리됐십니꺼.걱정하지마이소.우리동생들이안있십니꺼.걱정하지말고예,올밤에는맘놓고한잔하이소.
셋째는80년대중반장가를가서남매를낳고잘살았다.
그러다가90년대초반,회사의노사분규에휩싸여사표를내고말았다.회사를나와수퍼마켓을차린다며내게은행보증을서달라고했다.보증이라면돌아가신할아버지께서부탁해도안서준다고다짐했지만아내의강권으로결국서줬다.하지만장사가시원찮다는얘길풍문으로들었고간혹고향에가서만나도소문과다름없었다.
그렇지만내가서준은행보증으로어려움을주지는않았다.
둘째의얘긴즉슨셋째가집을나와상경했고,이유는병때문이라고했다.
무슨병이냐고물었더니갑자기시력이쇠퇴해서거의장님이됐다는것이다.혹시당뇨땜에그런것아니냐고물었더니당뇨와는상관없다고했다.
셋째의주소를물어찾아갔다.둘째더러같이가자고했더니셋째가내게말하지말라고했다며같이오는걸싫어한다고했다.형님이찾아가도어쩌면안만나줄지도모른다는말까지했다.
금호동어느고시원에있다는셋째를찾아갔다.정오무렵이었다.
5층건물이었는데1층은음식점이었고2층부터5층까지가고시원이었다.말이고시원이지고달픈사람들의쉼터였다.
셋째에게전화를넣었다.전화를받은셋째는깜짝놀라더니황급히끊으려고했다.
나는착갈아앉은목소리로낮게말했다.야,임마.지금너거고시원앞에있응께빨리나와.
오분이나지났을까.셋째가나오는데난간대를더듬거리며나오는모습이안쓰러웠다.입성도초라했다.초겨울이었는데도얇은점퍼차림이었다.
나는셋째의두손을잡았다.손은싸늘했다.나를보고도머뭇거리는셋째에게말을건냈다.
그래,내는알아보겄나.댕기는데는지장이없나.
갠찮십니더,행님.뚜렷하게는안비도(보여도)희미하이윤곽은봅니더.
셋째의가녀린말씨에울컥가슴이끓어올랐다.진정하고다정하게물었다.
그래,점심밥은묵었나.안묵었시모내하고같이묵자.

동생을데리고1층에있는작은식당으로갔다.순두부찌개를시켰더니동생이말했다.
행님,막걸리도한배이(병)시키주이소.
우리는순두부찌개를안주로막걸리를마셨다.셋째는묻지도않았는데먼저말을꺼냈다.
행님,수퍼도잘안되고그총중에내눈꺼정맛이갔비갔고그냥집을나왔십니더.글안해도집안분위기가안좋은데내꺼정들누있시모집사람이울매나속이타겄십니꺼.바람좀씨운다쿠고그냥나왔빗십니더.
아아들은우짜고하는말이내목에걸렸지만묻질않았다.우리는막걸리세병을비웠다.

한잔더마시려는셋째를다독여고시원방으로데려갔다.막걸리두병과간단한안주도챙겼다.

동생,여게서한잔묵어도갠찮겄나.다른방에피해는안주겄나.
행님,갠찮십니더.말이고시원이지예.고시공부하는사람은아무도없어예.
그래서그런지옆방에서도사람소리가들렸고티비소리까지제법크게들렸다.
우리는술을따르고천천히마셨다.
아참,셋째야.내가니좋아하는음악갖고왔는데함들어볼래?
행님,무신음악인데예.베토벤겉으모지는사양할랍니더.
아이다,임마.니가와내한테소개해준음악안있나.’거울속의안나’말이다.
그라모안젤리스연주말입니꺼?
나는작은녹음기에준비한테잎으로음악을틀었다.
니콜라스드안젤리스(NicolasdeAngelis)가기타로연주하는’거울속의안나(QuelquesNotesPourAnna)’였다.
짜릿하면서도애수에젖은음악이울려퍼졌다.이음악은셋째가내게소개해준것이었다.지난80년대중반사업의실패로실의에빠져있을때고향을찾은내게들려준음악이었다.
행님,이음악이예.안젤리스라쿠는기타리스트가연주한곡인데’거울속의안나’라쿱니더.들어보이소.
그러고는내게테이프까지주었다.이테이프를강원도출장다니며울적할때듣곤했었다.셋째를생각하며.
이제내가들려주는음악을들으며셋째는고개를푹숙였다.그러고는어깨가파도치듯흔들렸다.

그날이벌써1년전이었다.
그동안셋째와더러연락을했지만만나진못했다.간혹찾아가겠다고연락하면오지말라고거절했다.
내가억지로가려고하면밖으로나가겠다며차갑게쏘아부쳤다.
그러니갈수도없고,그저간혹안부나물을따름이었다.
그것도미흡하면안젤리스가연주하는’거울속의안나’를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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