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지금도 우리들 곁에 있다

내일12월5일은천재음악가모차르트가세상을떠난날이다.
흔히들’신동神童’이라고불리웠던그는1791년이날서른다섯의나이로세상과하직했다.샘물처럼솟아오르는천상天上의멜로디일천여곡을남기고서.그렇게천재는젊은나이에하늘나라로떠났다.
그렇지만결코그는이세상을떠나지않았다.
나는매일아침눈을떠면머리맡의라디오부터먼저찾는다.
즐겨듣는KBS클래식FM을듣기위해서다.이방송에선매시간마다모차르트의성악곡’봄의동경’을플룻이나피아노연주등으로편곡해서내보내고있다.
이곡만이아니다.그의피아노소나타11번(K331)중3악장’터키행진곡’도시간을알리는곡으로종종보내주고있다.
하여나는매일아침이면반드시모차르트와몇차례만나고있는셈이다.
모차르트를생각하면안타까운일들이많다.슈베르트만큼이나.
그가스무살을갓지났을때그의상전콜로레도백작의등쌀에견디다못해어머니와함께고향잘츠부르크를뛰쳐나왔다.그때만해도천재음악가는어디서든자기를써줄영주領主들이있을것으로믿었다.
그렇지만세상사가마음대로되는건아니었다.첫경유지뮌헨에서툇자를맞았고,두번째경유지만하임에서도일자리를쉽게구할수가없었다.기다리라는영주의말을믿고교습으로시간을때우며밥벌이를하다가우연히콘트라베이스악사베버의둘째딸알로이지아를만나게되었다.
소프라노였던그녀에게반한모차르트를알로이지아는꼬드겼다.같이이탈리아로가자고제안했다.이제안은분명히결혼을전제로한것이었다.
얼씨구나하고그녀와함께이탈리아로갔으면좋으련만심약한모차르트는아버지레오폴드에게승락을구하는편지를보냈다.하지만결과는뻔했다.아버지의불호령으로그는알로이지아를포기하고어머니와파리로떠났다.
당시그의나이스물두살이었던1778년3월24일이었다.

파리에서의삶도만만치않았다.
그이역땅에서콜레라로어머니마저잃고빈털털이가되어고향으로돌아왔다.그러나상전의끈질긴괴롭힘에다시고향을등졌고만하임으로갔다.
그곳에서모차르트는’꿩대신닭’이라고,사랑했던알로이지아의동생콘스탄체와결혼했다.그의나이스물여섯이었고신부는열아홉살이었다.
여기서나는’만일에’란가상을해본다.
그때모차르트가연인알로이지아와함께이탈리아로떠나는걸아버지레오폴드가승락했다면,그의삶은어땠을까.
돈만알고남편을달달볶았던콘스탄체와달리성악가였던알로이지아와함께했다면아마도모차르트는보다더편안하고여유있는삶을누렸으리라.
그러면그의건강도해치지않았을터이고모차르트는한참더오래살았을것이다.
속좁고명예욕이강했던아버지를만나모차르트는일찍이세상을떠났다.
하지만지금도그는우리들곁에있다.매일아침눈만떠면그의영혼과도같은음악들을만날수있으니까.
‘의랑논개비문’을지은파성巴城설창수선생은이렇게노래했다.
"하나인것이동시에둘일수없는것이면서민족의가슴팍에살아있는논개의이름은백도천도만도넘는다…."
그래,그렇지.
지금모차르트는가고없지만인류의가슴속에살아있는그의이름은아마도수억은넘을것이다.
그를추모하며이밤에도한곡들어야겠지.
추모주도한잔곁들여서.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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