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만의 변명

오늘 5월 15일은 딸의 생일이다.

늘 해왔듯이 어제 오후 가족들이 김포 한 음식점에 모여 축하모임을 가졌다. 미리 예약해둔 방에서 푸짐한 저녁식사를 즐겼다. 외손녀 둘은 놀이방을 들락거리다가 지 애비(사위) 곁에 앉아 애비가 떠먹여주는 음식을 받아먹곤 했다. 일곱 살배기 큰 녀석은 아예 애비 무릎에 걸터앉아 목을 껴안기도 하며 성가시게 굴었다. 이걸 본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한마디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끼어들었다. 저렇게 애비가 자상하게 하니 어찌 애들이 좋아하지 않겠어. 그런데, 너거 아버지 봐라. 너(딸)를 낳던 그날도 날 병원에 데려다주고는 강원도로 출장을 떠났다니까. 그렇게 인정머리 없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어. 해마다 이맘 때면 반드시 듣고 지나가는 푸념이었다.

엄마, 또 그 소리야. 그땐 아빠가 출장 간 거였잖아. 딸의 말에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약간은 썰렁해진 분위기를 바꾸려고 내가 나섰다. 몇 달 전부터의 약속이라 어쩔 수 없이 출장 갔지만 다음 날 일정도 취소하고 득달 같이 올라왔잖아.

내 변명도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래, 1978년 5월 그날 아침 당신을 적선동 산부인과에 데려다놓곤 강원도 원주로 출장을 갔었지. 그곳에서 지역 사무국장과 함께 오지였던 정선까지 갔어. 거기 한 성당의 신부님과 인터뷰 약속이 있었거든. 뉴질랜드 출신의 신부님이셨지.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서 가까스로 서울 병원으로 전화를 넣었고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다음 날 그곳 사람들과의 일정이 있었지만 새벽 첫 차로 상경했지. 그만하면 나로선 최선을 다한 것 아닌가.

물론 내가 요즘의 아들이나 사위처럼 자식들에게 살갑게 굴지 못 한 건 인정해. 늘 변명했지만 그때만 해도 애비가 자식을 살갑게 대했다간 어른들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거든. 부모 앞에서 자식을 안고 얼렀다간 버르장머리 없다는 타박이 돌아왔었지. 남자가 부엌 주변에서 얼씬거렸다간 사내자식이 뭣하는 짓이냐는 핀잔이 날아왔었다구. 그걸 보고 자랐으니 어떻게 자상하고 살가운 애비가 되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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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축하 모임을 마치고 가족들과 인근 매장에서 커피 한 잔씩을 나누었다. 다음 날 딸네 가족이 일찍 교회에 가야 된다며 서울 우리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사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는데 큰 외손녀가 마카롱을 사달라고 했다. 연희동에만 오면 사달라고 조른다. 딸기 마카롱을 샀다. 위 사진은 지난 3월 두 녀석과 마카롱 가게에 갔다가 찍었다.

오늘 아침, 아내는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다이어트 중인 딸은 밥 반 공기와 국 한 그릇을 비우고 갔다.

저녁답에 밥솥을 열어보니 밥이 반 공기밖에 남지 않았다. 아마도 교회를 다녀온 고2 손자가 점심을 먹은 탓이리라. 교회 행사로 외출했다가 돌아온 아내에게 남은 밥을 먹으라고 했다. 오랜만에 떡라면 생각이 나서였다. 라면을 먹고 있는데 티비를 보던 아내의 주문이 떨어졌다. 미역국을 좀 데워달라고 했다. 그래, 딸을 낳던 날 무정하게 출장을 떠났던 못 된 남편이 그깟 서비스는 해야겠지.

미역국도 데워주고 설거지까지 말끔하게 했다. 조금 전 이비에스 티비에서 방송됐던 슈베르트의 즉흥곡이 생각난다.

이 밤, 비도 축축하게 내리는데 그 음악이라도 들어야겠다. 약간은 처연한 마음을 달래면서.

2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5월 16일 at 8:06 오전

    잘 하셨어요.
    남자분들이 조금만 마음 써주면 여자들이 편하고 즐겁거든요.
    정말 잘 하셨습니다.

    • 바위

      2016년 5월 16일 at 4:59 오후

      저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도왔습니다.
      집안이 편하려면 아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걸
      요즘 실감하고 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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