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늙은이의 넋두리

소주

언제나 느긋한 토요일 오전이야. 미뤄진 일은 있지만 월요일에 하기로 했지. 이젠 ‘숨 넘어 가는’ 일이 아니면 굳이 토요일에 나가 일하고 싶지 않거든.

아내는 운동하러 가고 느지막히 혼자 식탁에 앉았지.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매주 토요일이면 하는 집 대청소뿐이야. 냉장고를 열어보니 엊저녁에 먹다 남긴 괜찮은 반찬들이 있어. 데울 건 데우고 구울 건 구우니 그럴 듯한 주안상이 금방 차려졌지. 연 사흘 간의 힘든 작업으로 삭신이 녹작지건 한데 음식을 보니 군침도 돌고 한 잔 생각이 나는 거 있지. 그것도 오전부터. 내 마음이 시키면 따르기로 진작부터 작심했지. 해서 석류주 한 잔을 따뤘지. 참, 위 사진은 내가 위블로그 처음 시작하면서 사진을 못 올릴 때 운영자께서 대신 올려준 사진이지.ㅎㅎ

한 잔 마시면서 곰곰히 생각해봤지. 도대체 이 술이 뭐길래 아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걸 계속 마셔야 하는가고.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한 거였어. 담배는 아예 안 피웠지만, 담배보다 더 끊기 수월하다는 술을 못 끊고 아내한테 면박을 당해야 하는 내 신세가 참 한심하더라고.

생각해보면, 내가 술을 배운 게 서른이 넘어서였어. 20대 신문사 다닐 때나 공무원 시절에도 술은 못 했거든. 간혹 회식자리가 있어도 술 한 잔 받아놓고 끝까지 버텼으니까. 그러다가 30대 초반, 모 협동조합중앙회로 직장을 옮기면서 술을 배우기 시작했지. 당시 했던 일이 기관지를 만드는 일이었거든. 전국 방방곡곡 출장가서 취재하고 사진 찍는 게 일이었지. 마치고 나면 반드시 그곳 임직원 몇 사람과 술을 마셨지. 대개 천주교와 관련된 곳이 많아 그들은 꼭 나를 뒷풀이로 데려가서 한 잔 먹였거든. “박 형제, 박 형제”해가면서 말이지. 나중엔 신부님 한테서도 술을 얻어 마셨고, ‘존경하올’ 모 주교님께서 주시는 술도 마셨다고.

그러다가 지방 연합회의 책임자로 일하고부터 술 마시는 게 일상화 되어버렸어. 출장을 가면 대낮부터 몇 차씩 옮겨 다니며 마셨고, 사무실에 있으면 출장 온 사람들과 또 마셔야 했으니까. 심지어 출장 온 조합 이사장이 버스에 내려 연락을 해왔지. 아침부터 그를 만나 술을 마시다가 그 길로 퇴근한 적도 있었으니까. 말 다했지.

80년대 중반, 직장을 그만 두고 알량한 개인 사업을 하면서부턴 고향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지. 대개가 중, 고교 동창들이었거든. 참, 많이도 마시고 다녔지. 그런데 한 가지 불문률은 있었어. 절대로 여자들이 술 따뤄주는 데는 안 갔어. 그냥 어울려 술 한 잔 마시는 게 전부였으니까.

20160522_083503

요즘은 그것도 싫고, 집에서 안주 사다가 한 잔하는 걸로 바꿨어. 내가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한 잔하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해. 하지만 이것도 아내 눈치를 봐야 하니 때론 피곤하다고. 말리는 아내와 더러는 티격태격하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이 나이에 술 한 잔도 안 마시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넋두리도 끝났어. 오늘은 왠지 쇼팽의 음악이 생각나네. 짐머먼(Kristian Zimerman)의 연주로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op. 23)를 듣고 있지.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폴란드의 피아니스트가 독일 장교 앞에서 연주했던 그 곡이지.

때로는 술 한 잔도 죄냐고 스스로 물어보기도 하지만 마실 수 있는 데까지는 마셔볼 생각이야. 변명 같지만 ‘술고래’도 건강이 나빠지니까 못 마시더라고. 어찌보면 술도 건강의 척도가 되는 것 같애.

그래, 오늘도 적당히 한 잔하는 거다. ^^

4 Comments

  1. enjel02

    2016년 5월 21일 at 7:28 오후

    혼자서 식사도 챙겨드시고 청소도 하시고
    애주가 늦게 배운 술이시군요
    사업상 그리되셨으리라 믿으며 절주를
    하실 수 있으니 폭음을 하시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면 지극히 정상 괸찮으신것 같네요
    즐기실 만큼 적당히 드시고 건강 지키세요

    • 바위

      2016년 5월 22일 at 2:29 오후

      요즘은 뭣이든지 혼자서 하는 편이지요.
      물론 식사는 아내의 손이 필요하지만, 그왼 가급적 직접합니다.
      한 잔하는 것도 직접 마련해서 해결하지요.
      그게 아내를 위하는 방법 같아서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2. 데레사

    2016년 5월 22일 at 6:51 오전

    ㅎㅎ
    맞아요. 술도 담배도 건강 나빠지지까 스스로 끊더라구요.
    그래도 너무 자주는 마시지 마세요.
    간을 1주일에 한 두번은 쉬게 해줘야 한다던데요.

    • 바위

      2016년 5월 22일 at 2:27 오후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도 2, 3일씩 터울을 두고 마시지만, 잘 안 될 때도 있지요.
      나이 많아지니 자꾸 욕심이 많아집니다.ㅎㅎ

Leave a Reply

응답 취소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