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회 먹으며 추억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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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몹씨 바쁘다. 일요일인 오늘도 오후 사무실에 나가 원고 수정작업을 계속했다.

지난 8월 초, 부탁 받은 책 한 권의 원고를 계속 다듬고 있다. 모 단체가 부탁한 ‘흥남철수’ 기념문집을 만들기 위해서다. 원고를 작성한 분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감수작업을 맡은 분도 팔순을 훌쩍 넘긴 분이다. 그러다 보니 글의 진행이 요즘 같지 않다. 문장은 쉽게, 간단하게 써야 하는데, 한 문장이 너무 길다. 해서 다듬는 작업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6.25동란이 일어났던 1950년 12월 하순, 함경남도 흥남부두에 구름떼처럼 몰렸던 피란민 중 절반 가량인 10만여 명만 겨우 탈출에 성공했다. 화물선이었던 미러디스 빅토리호에 승선했던 1만 4천여 명의 탈출기가 주된 이야기다. 물론 그에 덧붙여 ‘흥남탈출’의 단초가 되었던 ‘장진호전투’의 처절했던 이야기도 상세하게 담겨있다. 어쨌거나 그 일로 요즘 무척 고단하다. 하지만, 가슴 뿌듯한 자긍심도 느끼고 있다. 아직도 살아 있는 피란민, 그분들께 멋진 책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다.

저녁답에 집에 와서 저녁 밥 대신 홍어회를 먹었다. 낮에 사무실에서 아내가 싸준 사과를 많이 먹었더니 밥 생각이 없었다. 대신 홍어회를 먹으려고 신촌 G마트에서 막걸리도 사왔다. 홍어는 오늘 아침 아들이 갖다주었다. 광주 사는 지인이 목포에서 사온거라며 보내준 것이란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더니 맛이 좋다. 적당히 삭힌 홍어회가 찰지게, 입에 와닿는다. 해서 예로부터 ‘홍탁’이라고 했던가. 그 감칠맛에 하루의 피로가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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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재미에 음악이 빠질 수가 없지. 얼마 전 아들이 내 전용 티비를 사오면서 노트북과 연결을 시켜주었다. 하여 요즘은 오디오를 쓰지 않고 노트북을 통해 티비로 동영상을 보고 있다. 유투브엔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들이 다 있으니까. 대형 화면으로 보는 연주 실황이 너무 좋다.

오늘은 이글스의 ‘Ling’ Eyes’를 먼저 들었다. 이어서 ‘호텔 캘리포니아’까지. 지난  70년대 후반 이 노래들을 들으며 그 매혹적인 음색에 반하기도 했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들어도 그때의 감흥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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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조동진의 노래를 들었다. ‘은둔의 가수’인 그를 한때는 무척 좋아했었다. ‘행복한 사람’을 비롯해서 ‘나뭇잎 사이로”와 ‘제비꽃’, ‘겨울비’와 ‘작은 배’까지 참 좋은 노래들이었다. 마치 수도승이 경經을 낭독하듯 담백한 그의 노래를 듣노라면 내까지 선禪의 경지에 몰입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 처음 알았는데, 알고보니 대단한 ‘노사모’였다. 노무현을 위한 노래까지 만들었으니. 하지만 괜찮다. 정치적 성향은 개인의 자유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처럼 앞장서서 설치지 않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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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결국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노래하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까지 오고 말았다. 한 잔하는 날이면 웬만해선 첫 곡 ‘밤인사’를 꼭 들어야 하니까. 그의 기름진 음성이 들려주는 ‘밤인사’를 들어야 하루를 마감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 물론 하찮은 버릇이지만 이것도 이젠 고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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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마침표는 베냐미노 질리가 찍어주었다. 그가 부른 1925년도 녹음,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중 ‘귀에 남은 그대 음성’이다. 연이어 엔리코 카루소가 부른 같은 노래가 나오지만 아무래도 이 노래는 질리가 최고인 것 같다. 약간은 코맹맹이 소리지만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하고 감칠맛 나는 그의 음성은 그 누구도 따를 수가 없다.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치카나’에서 마지막에 부르는 아리아 ‘엄마, 안녕’과 함께.

이 노랠 들으니 중2 때인 1959년, 음악선생님이 유성기로 들려주었던 질리의 노래 구노의 ‘아베 마리아’가  생각난다. 그렇지, ‘라 파로마’도 있었지.

아, 자정이구나. 이젠 자야겠다. 또 다른 내일을 위해.

2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9월 12일 at 4:31 오전

    요즘 많이 바쁘시군요.
    나이들어도 일이 있다는게 복이고 말고요.

    이제는 크라식에서 이글스까지 섭렵하시는군요.
    저는 바위님은 크라식만 들으시는줄 알았거든요.
    이글스는 한 때 저도 좋아했지요.
    물론 호텔 캘리포니아가 우리나라에서 유행도 했었고요.

    늘 건강하십시요.

    • 바위

      2016년 9월 12일 at 9:19 오전

      저도 클래식은 즐겨 듣습니다만,
      때로는 다른 음악들도 좋아하지요.
      요즘 나일 먹으니 예전에 듣던 노래들이 생각납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시고요.
      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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