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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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토요일이다. 길거리엔 노란 은행잎이 무러익은 가을의 정취를 실감나게 하건만 기분은 왠지 우울하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모양이 그래서일까. 대통령은 늘 그대로 옹고집에 불통이고, 오늘도 광화문광장에선 촛불시위가 있다지. 이런 꼬락서니를 보는 세종대왕과 충무공은 어떤 심사일까. 세종대왕 가라사대 “이럴려고 내가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던고. 참으로 고이쩍도다.” 잇따라 충무공도 한 말씀하셨겠지. “이럴려고 내가 왜놈들을 남해 바다에 수장시켰을꼬. 자괴감에 할 말이 없구나.”

오늘도 아내는 동탁(동네 탁구)에 나가고, 나 홀로 식탁에 앉았다. 배를 넣으려고 토요일엔 ‘아점(아침과 점심을 함께한다)’을 얼마 전부터 하고 있다. 식탁에 놓인 어묵국과 오징어젓갈을 보니 한 잔 생각이 났다. 집에서 한 잔하는 거야 어떠랴. 스스로 다독거리며 석류주 한 잔을 따랐다. 그래, 여기에 음악이 빠질소냐. 유투브에서 막스 브르흐의 ‘콜 니드라이’를 골랐다. 흔히들 ‘신神의 날’이라고 했지. 유대교 신자들이 ‘속죄의 날’ 을 ‘콜 니드라이’라고 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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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카잘스의 연주로 들었다. 카잘스, 흔히들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첼리스트라고 불렀던 거장이었다. 이런 명곡을 아무렇게나 식탁에서 한 잔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유투브에 감사드리면서. 다음 곡 역시 브르흐의 ‘아베 마리아’였다.

엊저녁 아내는 작은 불평을 했다. 아들 편으로 햅쌀 한 자루를 보내 주었는데도 며늘애로부터 잘 받았다는 인사 한마디 없다며 툴툴거렸다. 내가 핀잔을 주었다. 그래, 인사 받으려고 준 거 아니잖아. 며늘애도 고2짜리 뒷치다꺼리 한다며 힘들 텐데 좀 이해해주면 안 돼? 그 사이 딸애가 카톡으로 큰 외손녀가 지은 오행시를 보내왔다. 일곱 살배기 치고는 글씨도 잘 썼다. 다니는 교회 주일학교에서 숙제로 내준 ‘추수감사절’이란 오행시였다.

외손녀의 오행시는 이랬다. (추)운 겨울이 다가옵니다. (수)영장도 꽁꽁 얼겠죠. (감)나무의 감도 다 떨어지겠죠. (사)람들도 다 얼 지경이에요. 그래도 (절)대 저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곧 크리스마스가 오니까요!

이걸 보고 딸애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니가 거의 써준 거지?” 답글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혼자 쓰더라구. ‘겠죠’ 이런 거 몇 군데 틀렸다고 알려준 게 끝.” 이걸 보고 아내는 기분이 좋아 외손녀 둘 부츠나 사줘야겠다며 희희낙낙이었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낙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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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둔 난초를 아내가 춥다며 성화길래 내가 거실에 옮겼더니 예쁜 꽃을 피웠다.

오늘 밤도 광화문에선 촛불집회가 열리겠지. 일련의 사태를 보며 대통령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지만, 이때라 하고 천방지축으로 깨춤추는 얼치기 야당의 ‘대선주자’란 인간들이 더 한심하다. 마치 자기들이 대통령이라도 된 양 설치니 그 꼴값 떠는 꼬락서니가 목불인견이다. 또 추 아무개란 여인네의 더러운 짓거리는 어떻고. 마치 자기가 대통령을 부리는 상전처럼 궁상을 떠는 꼴이라니. 오, 통제라! 제발, 촛불 든 사람들이여,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건 좋지만 종북들에게 이용당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이 가을, 얼마나 좋은 계절인가. 뭇 사람들이 이 가을을 예찬했었다. 구르몽의 ‘낙엽’도 그렇고, 정비석의 ‘들국화’도. 하지만 가을이 말을 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터이다. “그래, 이처럼 어수선하게, 또 우울하게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을이 좋다고? 이럴려고 가을을 예찬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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