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仁王山의 가을에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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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동창모임 ‘팔팔산우회’의 화요산행이 10월 말일에 있었다. 이번 주 산행코스는 인왕산. 몇 주 전 사직공원 쪽에서 ‘시인의 언덕’까지 산행을 한 적이 있어 인왕산 코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날 산행은 그간 해왔던 둘레길 산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험난한’ 코스였다.

오전 10시 반,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에 모인 친구는 여섯 명. 우리는 버스를 타고 상명대를 지나 홍지문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기서 계호 친구와 합류, 일곱 명이 산행에 나섰다. 홍지문 너머 상명대 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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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길은 험난했다. 오른 쪽으로 성곽을 끼고 거의 70도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길을 10여 분 동안 쉬지 않고 올라갔다. 이날 아침 기온이 3도까지 떨어져 두꺼운 점퍼를 입고온 친구들은 아예 웃도리를 벗어붙이고 나섰다. 가뜩이나 땀을 많이 흘리는 나는 땀 닦느라, 사진 찍느라 꽁무니에서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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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 중간쯤 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성산대교 쪽으로 빠지는 북부간선도로가 보였다. 멀리 스위스 힐튼호텔과 홍은동 지역 아파트도 보였다. 산 아래는 티비에도 소개된 적 있는 홍제동 ‘개미마을’인 듯한 동네가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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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험난한 코스인지 그 흔한 등산객도 보이지 않는다. 좁은 임도를 따라 좌우엔 소나무가 기세좋게 둘러섰고 억새풀이며 이름 모를 야생화가 자연의 정취를 풍겨준다. 한창 뒤쳐져 따라가던 나는 혹시 멧돼지라도 만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까지 났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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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은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과 누상동, 사직동과 서대문구 현저동, 홍제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우백호右白虎에 해당된다. 조선 개국 초기에는 서산西山으로 불렸는데 세종 때부터 인왕산으로 바꾸어 불렀다. 인왕仁王이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으로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개칭되었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에는 인왕산의 표기를 인왕산仁旺山으로 했지만 1995년 본래 이름으로 환원되었다.

인왕산은 높이 338m로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었고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지나며 동쪽 산허리에 북한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곳곳에 약수터가 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서울시민의 유원지였지만 군사상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 되었다가 1993년부터 개방되었다.

인왕산은 조선시대의 명산名山으로 숭앙 되었으며 조선 초기 도성都城을 구축할 때 북악北岳을 주산主山, 남산을 안산案山, 낙산駱山과 인왕산을 좌우 용호龍虎로 삼아 궁궐을 조성했다고 한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는 매바위와 치마바위가 담겨 있다. (백과사전에서)

이곳 인왕산에 얽힌 안평대군(安平大君, 수양대군의 동생)의 이야기가 있지만 후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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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30여 분 오르자 눈 아래로 홍제동, 홍은동 지역과 멀리 고양시가 한 눈에 보였다. 북부간선도로의 왼쪽은 성산대교, 오른쪽은 정릉 쪽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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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송림 밑으로 암벽이 보인다. 이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었다 보니 곳곳에 암반이 도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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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바위로 가는 길목에도 가파른 암반이 가로막고 있었다. 양쪽에 설치된 밧줄을 잡고 엉금엉금 기어올라 가느라 진땀 깨나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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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바위에 단풍이 물들었다. 암벽에 주름이 졌다고 하여 ‘치마바위’로 부른다고 옆의 친구가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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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모습이다. 멀리 남산타워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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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정상을 올라가는 길도 힘들었지만 내려오는 길은 더 힘들었다. 암벽 곳곳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계단을 파놓긴 하였지만 체중이 나가는 사람들은 발목에 무게가 실려 삐끗하면 발목을 접질을 수 있는 난코스였다. 그야 말로 조심조심 하산했다.

내려와서 인왕산 정상을 보고 있노라니 아찔하다 못해 현기증까지 났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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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길을 알려주는 표지석이다. 이 성곽이 북한산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성곽의 왼쪽으로 빠져 사직공원 쪽으로 하산했다. 그 시각이 오후 2시경이었으니 세 시간 가량 산행한 셈이다. 휴대폰의 만보기를 보니 10여km에 만 보를 훌쩍 넘겼다. 칼로리 소모량도 453kcal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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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산행 후에 하산주가 빠질소냐. 산행에 빠졌던 석준 친구가 체부동 맛집을 골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 아홉 명은 맥주와 소주, 빈대떡과 계란탕으로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며 건배를 외쳤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부담없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는 고교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며 호기 있게 마셨다. 이 자리에 기업 회장이나 전직 구청장, 교수, 교장 선생이 무슨 소용이랴. 그저 스무살 안팍의 고3짜리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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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두부김치도 주흥을 돋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실 소줏잔 비우느라 몇 점밖에 먹진 못했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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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메뉴 얼큰수제비 역시 제격이었다. 아무려나 우리는 맛깔스런 음식과 우정, 인왕산의 가을에 취해 힘들었지만 멋졌던 산행을 마무리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11월 2일 at 5:48 오후

    치마바위는 중종의 폐비 신씨가 중종이 인왕산쪽을
    자주 바라 본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치마를
    바위에 펴서 널어 안부를 전해서 치마바위라고
    부른다는 얘기가 있어요.
    폐비 신씨는 신수근의 딸로 공신들의 힘으로
    폐위를 시켰지요.

    내자동 서울경찰청 근무할때 사직공원으로 해서
    정상까지 많이도 갔습니다.
    치마바위 바라 보면서 억지이별을 당한 어린
    왕과 왕비도 생각해 가면서요.

    • 바위

      2017년 11월 3일 at 10:10 오전

      감사합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네요.
      산행은 다소 힘들었지만 인왕산은 참 아름다운 산이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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