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와 함께 추억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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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향에선 산딸기 수확이 한창이다. 5월 하순부터 출하되기 시작해서 6월 중순이면 끝물이다. 해서 1년에 3주 정도 잠깐 나오는 산딸기를 제 때 맛보지 못 하면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그런 까닭에 아무리 바빠도 산딸기가 나온다는 문자를 받으면 제깍 주문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지난 5월 하순 가족들과 통영에 갔다가 1박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향에 들렀다. 딸애가 초등학교 2학년인 외손녀에게 진주 성지를 보여주고 싶대서였다. 한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막상 성지에 갔더니 ‘논개제(論介祭)’가 한창이었다. 주차할 데가 없어 할 수 없이 딸네 가족만 내려주고 나머지 식구는 가까스로 골목에 주차한 후 커피전문점에 들어갔다. 아내는 모처럼 진주에 왔으니 시장 구경이라도 해야겠다며 일어서기에 방아잎을 좀 사오라고 부탁했다. 매주마다 산행하는 친구들이 방아장떡을 좋아하기에 산행 시 장떡이라도 만들 요량에서였다.

시장에 갔던 아내가 방아잎에다 땡초(청양고추 종류인데 새끼손가락 정도 되는 고추가 매우면서도 정감이 가는 맛을 보였다. 분명 서울 청양고추보다 맛이 좋았다.)와 함께 산딸기를 몇 박스 사왔다. 아내는 진주 얘기만 나오면 심드렁하지만 산딸기는 엄청 좋아했다.

그날 오후 집에 왔더니 휴대폰으로 산딸기가 출하된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가격도 시장에서 산 것보다 저렴했다. 아내는 이번 기회에 넉넉하게 사서 그동안 신세 진 분들에게 인사를 하잔다. 자식들과 사돈댁, 지인들까지 해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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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6.25동란이 났던 1950년. 그때 다섯 살이었던 나는 불교 가정인데도 옥봉성당 성모유치원에 다녔었다. 그해 5월의 졸업사진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 무렵 뒤벼리 뒷산에서 과수원을 하셨던 할아버지를 만나러 어머니와 종종 뒤벼리 뒷산을 지나가곤 했다. 어머니는 세살배기 여동생은 업고 내 손을 잡고 비탈진 산길을 걸으며 길섶에 있는 야생 산딸기를 따서는 건내주었다. 지금도 가시줄기에 보석처럼 매달려 있던 빨간 산딸기가 생각난다.

고단했던 5, 60년대를 겪으면서도 5월이면 어김 없이 나오는 산딸기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맛보았다. 당시 ‘입이 짧아’ 잘 먹질 못 해 유난히도 ‘봄을 탔던’ 내게 어머니는 제철 과일들을 놓치지 않고 사주셨다. 산딸기 자체도 단맛이 있지만 하얀 설탕을 버무려 먹으면 무척 맛이 좋았다. 과육 속에 있는 작은 씨앗도 깨물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서른을 넘겨 서울로 온 이후에도 6월 초면 어머니는 어김 없이 산딸기를 부쳐주셨다. 그럴 때면 그냥 먹는 것보다 설탕을 듬뿍 넣어 발효시키면 알딸한 알코올 음료가 되어 별미를 제공하곤 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지금은 고향 생산 농가의 덕을 보고 있지만 이맘 때의 산딸기는 제철 과실을 넘어 내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이젠 산딸기와 함께 추억도 함께 맛보는 나이가 되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8년 6월 7일 at 9:41 오후

    맛있겠어요.
    저도 산딸기 먹어본지가 아득합니다.
    시장에서 잘 안보이던데요.
    좀 자주 포스팅 하세요.
    늘 궁금해요.

    • 바위

      2018년 6월 8일 at 11:10 오전

      데레사님, 게을러서 자주 올리지 못 해 죄송합니다.
      산딸기는 시장에서 사기 어렵고, 재배농가에 주문해야 합니다.
      저는 매년 사먹기에 출하가 되면 연락이 오지요.
      자주 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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