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임종臨終

어제 오후 외손녀 둘이 왔다.

늘 그랬듯이 내 노트북을 둘에게 맡겨두고 옆에 앉아 티비 채널을 돌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채널에서 재방송 해주는 프로를 보았다. 말기암 환자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가슴 저미는 내용이었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면면들을 차분하게 보여주었다.

나도 나이가 있어 그 죽음들이 예사롭지 않아 진지하게 보았다.

걔 중에는 아흔이나 팔순을 넘긴 고령자도 있지만 사, 오십대의 젊은 축에 속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오십 대의 어떤 환자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간암 판정을 받고 불과 석 달 만에 죽음을 맞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입원한 첫 달에는 제법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농담도 주고 받더니 두 달째는 가족들의 부축을 받아야 할 만큼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러다가 석 달 만에 임종을 맞았다. 가족들은 그에게 차례로 얼굴을 맞부비며 천국에서 다시 만나 가정을 이루자며 눈물로 작별을 고했다.

티비를 보다가 눈물이 흘러 얼른 세면대에서 얼굴을 닦았다.

 

너무 가슴이 아파 다 보질 못 하고 티비를 껐다.

길든 짧든 한 사람의 생을 마감하는 일은 엄숙하기 그지 없다. 그 삶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성공한 삶이었거나 혹은 실패한 삶이었을지라도 죽음 앞에선 똑 같다. 성공했다고 돈보따리 싸들고 가는 것 아니고 실패했다고 맨몸으로 가는 게 아니니까. 죽음 앞에선 모든 인간이 같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임종을 좀 더 인간적으로 맞을 수는 없는 것일까. 임종을 지켜보는 한 간병인은 이렇게 말했다.

“임종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건,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서 후회가 담긴 말들을 많이 하는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해서 미련 없이 죽음을 맞는 것이 좋겠지요.”

 

내가 만일 몇 달밖에 살지 못 할 중병에 걸려 임종을 맞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단언컨데, 결코 말기암 환자들이 모여 죽음을 맞기 위해 준비하는 병원에는 절대로 가지 않을 것이다.

코와 팔에 주렁주렁 주사 줄을 달고 무슨 외계인처럼 앙상한 몰골로 병상에는 더더구나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의사가 아니지만, 절대로 약이나 주사로 암을 치료하진 않겠다. 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약은 하나를 죽이면 또 다른 하나를 망가트리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얘길 수 없이 들었다.

게다가 옆의 환자들이 매일 같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견딜 수가 있나. 멀쩡한 사람도 그런 모습을 겪으면 삶의 의지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나 같으면 병원보다도 조용한 시골을 택할 것이다.

기왕 병원에 있으면 막대한 의료비가 들 터이니 차라리 시골에 집을 하나 얻어 요양을 가겠다.

나는 바다를 좋아해서 푸른 바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해변가 높은 곳에 집을 얻을 것이다.

아침, 저녁 찬란한 태양도 즐기며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것이다. 가끔 바닷가를 산보하며 싱싱한 해산물을 먹는 즐거움도 갖겠다. 물론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을 때까지.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가능하면 한 잔하면서 생의 마침표를 찍는 것도 괜찮겠지.

가급적 혼자서 그런 투병을 할 것이다. 음식을 끓여 먹는 힘이 있는 한. 절대로 아내를 간병인으로 데리고 있으면서 고생시키진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날이 오면 가족들을 불러 삶을 멋지게 마치고 싶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산 속에서 그런 투병의 삶을 살아도 되겠다.

자연 속에서는 세상의 약은 쓰지 않겠다. 설령 고통이 오더래도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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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을 얘기하다 보니 아무래도 기분이 꿀꿀하다.

이런 날은 좋은 음악과 함께 한 잔해도 좋을 듯 하다. 본래는 월, 목요일이 약속한 날이긴 하지만, 어제 외손녀들을 잘 돌보았다고 저녁에 한 잔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절대로 ‘작심삼일’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보너스니까.ㅎㅎ

‘물과 함께하는 명상음악’이 오늘 저녁 나의 저녁 자리에 초대될 것이다.

 

병상에서의 임종보다는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내 삶을 마감하고 싶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8년 6월 17일 at 11:43 오후

    보통 사람들은 자연속에서 편안하게 하고 말들을 하지만 막상
    병이 깊어져서 단말마의 고통의 날이오면 병원을 찾더군요.
    어떻게 맞이해야 덜 고통스럽고 덜 추하게 죽을수 있을지가
    숙제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건강히 지내야 할텐데요.

    • 바위

      2018년 7월 20일 at 3:38 오전

      데레사님, 제 때 답글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평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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