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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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새벽 두 시에 밥을 먹고 , 새벽 세 시에 글을 올리다니. 곰곰 생각하니 모든 게 내 좁은 소갈머리 땜에 벌이진 일이다. 누굴 탓하랴.

일의 전말은 이렇다. 어제 목요일은 우리 고교 동창들이 만든 기우회의 정기 모임이다. 지난 4월 창립할 때 이름을 걸어놓고 몇 번 참석하질 못했다. 산우회 멤버이기도 한 이식만 회장이 나만 보면 기우회 모임 참석을 독려하는데 제대로 응하지 못했다. 어쩌다가 순번으로 내가 매주 화요일마다 가는 88산우회를 이번 하반기부터 책임을 맡다 보니 시간 내기가 무척 난감했다.

산우회 산행 후 하산주를 마시면 좀 과음하는 편이어서 다음 날 지장이 있다. 게다가 내년 8월까지 7백 쪽짜리 ‘군지’  원고를 쓰다 보니 시간내기가 난감했다. 마침 어제가 목요일이어서 아내에게 기우회 참석을 꺼냈더니 일언지하에 거절이었다. 무척 자존심이 상했지만 ‘인과응보’의 순리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지난 17일 산행 때 초복이랍시고 질펀하게 마셨으니까.

하지만 기분은 무척 나빴다. 아내와 사무실에서 집으로 오면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 신촌지하철 역에서 아내가 새 운동화를 사주겠다고 했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왔다. 저녁 밥을 먹으라고 했지만 대꾸도 않고 내 방에 틀어박혀 티비만 보았다.

열 시 좀 넘어 잠을 청했지만 배가 고파선지 좀체 잠이 오지 않았다. 식탁에 차려진 저녁 밥이 생각나서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럴 때 아내가 못 이긴 체 밥을 먹으라고 한 마디해주면 좋으련만 말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백기를 들고 갈 수도 없고. 가까스로 선 잠을 자다가 깨었더니 오전 한 시 반이다. 아무래도 밥을 먹어야겠기에 도둑고양이처럼 한 술 떴다. 하지만 식은 밥을 먹기가 쉽지 않아 한 잔 생각이 났다. 그런데 준비해 둔 술이 없어 궁리 끝에 작년 가을 선물 받았던 중국 술을 꺼냈다. 40도가 넘는 술을 들이켰더니 짜릿했지만 기분은 좋다.

밥을 먹고 소화도 식힐 겸 내 방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스포트닉스악단의 ‘모스코'(이 곡의 옛 이름은 ‘항구의 등불’이었다)도 듣다가 버트 켐퍼트악단의 ‘욕망의 블루스’까지 들었다. 젊은 날 들었던 추억의 음악이다. KBS(지금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가 밤 12시, 자정에 내놓았던 프로의 시그널이었다.

이제 맘이 좀 풀리네. 그래, 지고 살아야지. 그게 잘 사는 법이거늘. ^^

이웃님들, 편안한 밤 되십시오.

2 Comments

  1. 데레사

    2018년 7월 20일 at 8:32 오전

    ㅎㅎ
    마누라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도 있어요.
    서로 기 싸움 하시지 말고 그냥 져 주세요.
    이기면 뭣 합니까?

    • 바위

      2018년 8월 12일 at 11:28 오후

      그동안 블로그에 들어올 시간이 없었습니다.
      또 글 올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요.
      여러 가지로 죄송합니다.
      데레사님,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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