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登山)의 도(道)

"등산의白眉(백미)는정상정복이지만,등산의완성(完成)은살아돌아오는것"

‘등산의道’가르치는77세師父…코오롱등산학교교장이용대

"등산매장마다名品브랜드널렸지만…山書(산에관한책)파는곳은하나도없더라"

30년간길러낸제자만1만5000명,북한산·설악산새루트개척하고,알프스몽블랑·히말라야등올라"등산은’나만의線’만드는창조이며…남이만들어놓은길로가지마라"

상처컸지만…그래도사랑하는山"친동생두명이산에서추락사하고,아끼던제자고미영도잃었지만…어느순간배낭을꾸리고있더라.왜냐고?그곳에산이있기때문"

아!愛弟子고미영,등산학교의자랑이자전설인그녀가사망前보낸엽서엔’주어진기회에감사해요’읽으며폭포수같은눈물이…

산악인들,책읽고글써야한다."왜우린세계최고봉가놓고기록으로남기는이가없나,山에대한철학이없는거죠.공부들도워낙안하고…"

한국등산인구많지만…"동네뒷산약수터가는데,히말라야등반용옷입어산은패션을자랑하거나경쟁하는곳아니죠"

여성산악인고(故)고미영씨가영원히세상을떠난날,이용대(77)코오롱등산학교교장은두번울었다.2009년7월21일서울을지로국립중앙의료원장례식장에서한때동료였던등산학교강사들이고씨의관을운구차에싣는순간자신도모르게눈물이흘러내렸다.누구보다아꼈던후배를다시볼수없다는생각에분노마저치밀었다.열흘전고씨는히말라야낭가파르바트(8126m)를등정하고내려오다실족사했다.

그날오후집에도착했을때그는편지함에서작은엽서한장을발견했다.고씨가두달전세계에서다섯번째로높은마칼루(해발8463m)를등정하기직전베이스캠프로가는길에쓴엽서였다.

"인생이선사하는최고의상은가치있는일을열심히할수있는기회라고생각합니다.주어진기회에감사드리며용감하게오르고안전하게하산하여출발시점으로다시돌아갈수있도록최선을다하겠습니다."

고희(古稀)를넘긴산악인의몸은벼락에맞은듯뻣뻣하게굳어버렸다.이어가슴을쥐어짜는듯한고통을느꼈다.키167㎝,몸무게50㎏의깡마른체구어디에서그렇게눈물이솟아나는지폭포수같은눈물은그치질않았다.

"정상을정복하는건등산의백미(白眉)이다.하지만등산의완성이뭔지아는가.바로출발한그곳에무사히돌아오는것이다.가족과소중한사람들이기다리는그곳말이다.살아돌아오는게자랑이어야한다.정상은반환점에불과할뿐이다."

이용대는1985년코오롱등산학교가처음생겼을때강사로출강하기시작했다.1997년부터교장으로일하고있다.그가몸담은30년동안이등산학교를거쳐간사람은1만5000명.서울우이동계곡등산로입구에있는코오롱등산학교에서만난그의목소리에선힘이느껴졌다.걷는뒷모습은청춘그대로였다.

이용대코오롱등산학교교장
◇등산의완성은출발지점으로돌아오는것

―산에오르는사람이갖춰야할첫번째마음가짐은어떤것인가.

"자기자신을,자기능력을알아야한다.산을우습게보면안된다.자만하거나방심하면정말큰일난다.프로도아마추어도마찬가지다.작년에국내산악인들이해수면에서에베레스트정상까지,제로(0)에서8848m까지무산소등반을했다.그중후배산악인이고산등반능력이탁월한선배를따라산소마스크쓰지않고올라가다마지막캠프에서사망했다.남을따라하면절대안된다.일반인도마찬가지다."


―국내등산인구가1800만명을넘는다.외국에비해유난히많은것같은데.

"주변을둘러봐라.우리나라만큼쉽게산에갈수있는나라도없다.서울만해도북한산·도봉산등은전철로가서바로등산을할수있다.프로와아마추어경계구분도없다.외국에선설선(雪線)이기준이다.만년설이있는높은곳은프로,그이하는아마추어영역이다.하지만우리나라산은높이가모두2000m이하이고대부분800m도안된다.먹고살만해지니까건강에신경쓰게된것도등산인구증가의주요인이다.전국에산악회만10만개가넘는다."

―사람들이산에갈수밖에없도록등을떠미는사회문제와사회분위기도있는것아닌가.

"맞다.1997년IMF외환위기이후산을찾는사람이폭발적으로늘었다.갑자기직장을잃은사람들이뒷주머니에신문꽂고와서읽다가는모습을참많이도봤다.그들은산에서위로받았고다시살아야겠다는힘을얻었다.영국산악인조지핀치는‘등산은스포츠가아니라삶의한방법’이라고했다.이말이가장잘어울리는곳이우리나라다."

요즘등산학교인기는그야말로하늘을찌른다.봄·가을학생을뽑는’정규반’은정원에미달하는법이없고,암벽반도인터넷접수시작30분만에마감되기일쑤다.이용대는"정규과정을마친사람들중에는최종학력이등산학교라고자랑하는사람도있다"고했다.

―산에가기위해돈내고등산학교를다녀야하는이유가있을까.

"프로는산에오르기위해건강을챙기지만아마추어는건강하기위해산에오른다.동기가무엇이든누구에게나등산과관련된기술과이론,철학은무척중요하다.등산을하는건내몸을살리기위해서라고들한다.그런데잘못된방식으로산에올랐다가오히려몸을해치는경우가많다.등산학교에선등산복과등산장비를올바르게입고착용하는방법,독도법,힘들지않게오르는스텝,안전수칙등은물론이고문학과등산의역사,생태도가르친다.전문암벽등반과히말라야등반코스도있다.산에대한모든것이있다고보면된다."

―등산학교교장으로서일반인들에게꼭알려주고싶은안전수칙이있다면.

"정상에갔느냐,몇시간만에주파했느냐등을따지면절대안된다.자칫체력이과다소모되면사고로연결된다.저체온증에대한이해는특히중요하다.봄·가을날씨따뜻하다고산도그런줄알았다가는큰코다친다.산은100m올라갈때마다기온이0.6~1도씩떨어진다.1000m라면6~10도가내려가는것이다.땀이난상황에서바람부는곳에서쉬다간체감온도가더욱급격하게떨어진다.평소보다240배나빨리

체온을빼앗긴다.두뇌활동이저하돼균형·평형감각도떨어진다."

―그런위급한상황에서어떻게대응해야하나.

"옷을더입는다고도움이되지는않는다.옷은체온을유지해주는역할을하지체온을올려주진못한다.빨리건과일이나따뜻한꿀물등을먹어야한다.체온이35도이하로내려가면죽을수도있다."

등산이란수평의세계에살던사람이수직의삶을경험하는것이다.어떤변화가일어나는지.

"무엇보다사람들이순수해진다.산에는출세도없고돈도없다.등산은무상의행위이다.수평세계에있을때얽매여있던모든굴레와스트레스에서벗어날수있다.등산은종교이자탈출이다."

―등산을배우는사람들이마주치는첫감동의순간이있을것같다.

"정규반졸업때북한산인수봉암벽등반을한다.100m높이암벽을죽을힘다해기어오른뒤정상에서서세상을바라볼때그들의얼굴에배어나오는웃음은억만금을줘도못사는것이다.창피한줄도모르고엉엉우는사람도있다.바로이런거아닐까.한번은’비박(야외에서잠자는것)’을하는데한출판사사장이’예순살평생이런아름다운광경은처음본다’고하더라.그이후그는완전히산에미친사람이됐다."

사람들은오늘도산에오른다.도대체무엇이있길래,무엇을얻으려고.영국인등산가조지맬러리는“그곳에산이있기때문에(Becauseitisthere)”라고했다.사진은산악인들이북한산백운대암벽루트‘시인신동엽길’을오르는모습./염동우C영상미디어기자
◇산가는이유?그곳에산이있기때문

중앙대법대를졸업한이용대는판·검사가되는게꿈이었다.하지만현실은그꿈과거리가너무멀었다.고등고시(지금의사법시험)만7번떨어졌다.외국어가필수과목으로추가되자합격가능성은거의사라졌다.이길이아니라는생각이들었다.그때산을만났다.

―처음산에가게된계기는.

"어느날친구손에끌려북한산노적봉에올랐다.하나도힘들지않았다.다른사람들은왜그렇게느리게가는지.많은사람을추월해올라갔다.문득희한한생각이들었다.’내가산타는데천부적인자질이있구나’하는….정상에올라붉게타오르는노을과도도히흐르는한강을봤다.한바탕함성을지르고내려오니모든체증이다내려가는기분이었다.그이후틈나는대로산에올랐다."

―고시도포기했는데먹고사는문제가큰고민이었겠다.

"당시체신부공무원으로취직했다.한국통신이생기면서그쪽으로옮겨갔고1995년6월정년퇴직했다."

그가한창나이땐해외등반이쉽지않았다.해외여행자체가매우까다로웠다.비용마련도어려웠다.그래도기회날때마다해외원정을떠났다.미국요세미티거벽,유럽알프스몽블랑·마터호른,이탈리아돌로미테산군,카라코람히말라야드리피카등에올랐다.한중수교직전인1992년2월엔국내에선처음으로백두산장백폭포빙벽을등반했다.

―직장생활을하면서그정도강도로등산을하는건쉽지않았을것같다.

"언제나산에목말라있었다.토요일출근할때배낭을싸서갔다.퇴근하면그대로설악산이나지리산으로달려갔다.그렇게주말1박2일을보내고오면집사람과하늘을두쪽낼듯싸우곤했다.어머니가든든하게지원해주신덕에산에도가고그럭저럭위기도넘긴것같다.하지만회사에선진급할기회를여러번놓쳤다."

그는3남1녀중장남이다.산은그에게축복인동시에재앙이기도했다.열한살아래인막냇동생은1973년스물일곱살때도봉산선인봉에서떨어져세상을떠났다.2000년여름엔북한산만경대암릉(岩陵)을오르던셋째동생마저추락사했다.

―혹시산좋아하는큰아들때문이라는부모님원망은없었나.

"그렇지않았다.막냇동생죽고한달정도집에다산에간다는말을꺼내지않았다.그런데어느날새벽어머니가‘사람은원하는걸해야한다’며현관에등산배낭을갖다놓으셨다.그런일이있은후에도산에대한열정은도무지식지않고오히려활화산처럼타올랐다."

―그렇게위험한데도왜사람들은산에오를까.그대답이궁금하다.

"등산이시작된이후계속되는철학적질문이다.마약보다더강한중독성때문이라고할까.자신의한계를극복하고도달하는신세계,다른데서는절대느낄수없는엄청난성취감.1920년대1·2차에베레스트등정에참여했던조지맬러리가말했다.’그곳에산이있기때문에(Becauseitisthere)’라고."

―보통사람들의눈에산악인은마치죽음을향해달려가는사람들같다.

"히말라야첫도전자이자희생자인프레더릭머메리는‘등산가는자신이숙명적인희생자가되리라는것을알면서도산에대한숭앙을버리지못한다’고했다.그말을하고한달후낭가파르바트에서행방불명됐다.인간은꿈과목숨을맞바꿀줄아는유일한동물이다.설사그것이목숨이라는너무나값비싼대가를요구할지라도꿈을버리지못하는존재말이다."

◇등산은창조의행위.나만의길만들어야

젊은시절,그는남이안가본루트를개척하는데재미를느꼈다.북한산인수봉에’동양길(1969년)”궁형길(1976년)’등을개척등반했다.그런열정은계속됐다.2004년엔설악산장군봉남서벽6개루트를개척했다.

"등산이란산에나만의선을만드는것이다.산에오른다는건창조적행위이다.등산의길이란산에오르는사람수만큼이나많은것이다."

―요즘알피니즘이순수성을다소나마회복해가고있다고했는데.

"228년을이어온알피니즘의역사는피크헌팅(정상정복)을목표로한’등정주의‘에서과정과수단을중요시하는’등로주의‘로변천해온발자취라고할수있다.이는철학의문제이기도하다.등정주의는8000m이상14봉정복으로끝이났다.이젠창조적인등반을해야한다.산에자기만의길을만들라는것이다.정상은하나지만그곳에이르는길은다양하다.남이수십년전만들어놓은루트로가지말고보다어렵고다양한길로오르라는것이다.그것이진정한의미의등반이다.아마추어도나만의길을만든다는느낌으로산을찾아가보라.산이달라보일것이다."

―산악계에선’정당한방법으로’라는뜻의‘바이페어민즈(byfairmeans)‘라는말이있다.

"문명이만들어낸장비의도움을받지말고양손과양다리만을써서산에올라야한다는뜻이다.세계최초로14봉을오른라인홀트메스너는’8000m고산에산소를쓰고올라가는것은6000m를무산소로올라가는것과같다’고했다.인공물의도움을받으면그건산을작게만드는것이다.난이도가뚝떨어져남이즐겨야할등반성이나모험성을감소시키는것이기도하다.떳떳하게등반을하다보니인간의등반기량

도탁월해졌다."

―인류가개발한장비를이용하지말라는것은너무극단적인것아닌가.

"물론그런비판은있을수있다.정말원초적인’공정한수단’이라면발가벗고올라가야겠지.장비는물론옷도신발도없이.겨울빙벽도손톱으로긁으면서.하지만그정도는아니지않겠나.한계가중요하다.선글라스·조명·취사도구·로프정도는용인될수있다고했다."

2009년7월히말라야낭가파르바트(8126m)등정에성공한뒤하산하다추락사한고(故)고미영(사진왼쪽)씨가이용대교장에게보낸엽서./고미영을사랑하는모임·이용대씨제공
―그런의미에서윤리문제가화두일것같은데.

"고미영이왜죽은지아나.하산길에는지름9~10㎜정도의고정로프가있었는데,그게10m정도잘려있었다.나중에알아보니외국등반팀이자기들로프가부족하다고그걸끊어간것이다.산악계가너무타락했다."

세계8000m이상14개봉정복에나섰던고씨는11번째로히말라야낭가파르바트(8126m)등정에성공한뒤산을내려오다해발6300m지점에서발을헛디뎌1000m절벽아래로떨어져사망했다.그는캠프1에서위쪽으로약100m떨어진곳에서발견됐다.

"미영이는1991년봄등산학교정규반13기로입학했다.이듬해엔암벽반7기를졸업했다.그때까지도몰랐다.미영이가누구도따라갈수없는강한근성의소유자라는걸.체력기술보강으로3박자를갖추면서세계에서손꼽히는산악인이됐다.2년9개월만에8000m이상11개고봉을점령한것은지금도전설이다."

―산악계의타락,무슨뜻인가.

"에베레스트주변엔정상등반을대행해주는에이전시가130여개나된다.8000만~1억원을주면평생아이젠한번안신어본사람들을산정상까지모셔간다.짐을대신져주고산소마스크도바꿔끼워주면서.힘들면밧줄로묶어서데리고올라간다.이게상업등반대다.매년5월이되면200여명이줄지어산에오른다.이게말이되나.전문산악인중에서도상업등반대를이용하는경우가있다."

―등산이얼마나위대하다고생각하나.

"1996년에베레스트첫등정자인에드먼드힐러리를만났다.그는자신의등정이달착륙에버금가는20세기인류탐험사의최고성과라고했다.하지만나는에베레스트등정을더값지게생각한다.달착륙은과학기술에의한것이다.하지만등산은인간의힘으로그전까지상상도하지못했던한계를극복한것이다."

이용대코오롱등산학교교장은자신이원로가아닌현직알피니스트라고했다.사진은이교장이서울우이동코오롱등산학교교육센터에있는20m높이의세계최대실내인공빙벽을오르는모습./이덕훈기자
◇산악인들,책읽고글쓰기에서정체성찾아야

이용대는책읽고공부하는산악인으로소문나있다.그는1970년대이후전문지와신문등에칼럼등을쓰고있다.날카로운비판도서슴지않아별명이’산악계의송곳니’이다.최근출판한‘그곳에산이있었다(해냄출판사)’는그가쓴1300여편의칼럼중에서51편을추려낸것이다.그는"요즘에도한달에200자원고지300매정도글을쓴다"고했다.

―책과글이등산에왜중요한가.

"산악인은글쓰기와책읽기에서정체성을찾아야한다.세계에서제일높은산들을오르고도그체험을기록으로남기는사람들이거의없다.우린행위만있고기록이없다.공부들을워낙안한다.메스너는무려50권의책을썼다.등반선진국엔책을내는사람들이수두룩하다.산악인은자기가이산에왜오르는지에대한철학이있어야한다."

―산을더욱잘즐기려면책을많이읽어야한다고했는데.

"책은산에오르는또하나의길이다.산서(山書)를읽지않는다면그것은반쪽의산행이다.산서에몰입하는이유는단하나.흥미롭고감동적이기때문이다.보통사람들이평생을살아도체험할수없는생생하고드라마틱한세계가살아숨쉬고있다.책을통해먼저접한산에실제로오른다면그느낌이더풍요로울뿐더러감격은몇배가된다."

―등산객옷차림에대해서비판적이던데.

"약수터가는데히말라야등반용옷을입는게우리현실이다.옷이신경쓰여제대로등산이나하겠나.산은패션을자랑하거나경쟁하는곳이아니다.옛날엔누더기같은옷을입었지만지금보다더행복했고자부심도높았다."

―이젠모든게다있어서행복하겠다.

"경제규모나인구에비춰볼때우리나라레저시장은세계최고수준이다.시장규모가6조원이다.전국어딜가도세계의모든유명브랜드옷과장비를다구입할수있다.이런광경은전세계어디에도없다.하지만한가지섭섭한것이있다."

―그게뭔가.

"책방이없다.유럽알프스주변국엔항상장비점과함께대형서점이있다.우린장비점은있어도그곳에산서(山書)를팔진않는다.이게현실이다."

인터뷰가끝날무렵"당신은스스로를훌륭한산악인이라고생각하는가"라고물었다.그는"만족하지못한다.내가슴이터질듯충만한,극적인산행을아직못해본것같다"고했다.그는자신이원로가아닌현직알피니스트라고했다.

Why[장일현기자의인&아웃]201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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