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범신씨의 산에 대한 감상및 소회

새로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된 박범신씨의 산에 대한 소회와 감상입니다.

월간 산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산은 사원(寺院)이다. 경외해야 할 신과 같은 존재이고, 갈망과 헌신의 상징이다. 그 품속을 낮은 어깨 고요한 걸음새로 걸을 뿐이지, 올라가 정복할 수는 없다. 등반은 산의 포근한 품에 안겨, 자연의 위대함을 조금이라도 느끼겠다는 것이지, 정복하겠다는 건 결코 아니다. 육체의 호사가 아니라 바로 영혼의 안식을 산에서 만나고 싶다.”


소설가 박범신씨(61)를 인왕산에서 만났다. 인왕산은 조선조 도성을 세울 때 북악(北岳)을 주산으로 하고, 낙산의 좌청룡(左靑龍)과 함께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빼어난 산이다. 인왕산 산기슭은 큼직큼직한 바위 계곡과 맑은 개울, 송림이 어우러져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살림터와 풍류처로 각광을 받기도 했던 산이다.

박범신씨의 삶은 산과 점철되어 있다. 그가 처음 산과 인연을 맺은 건 1967년. 전주 교육대를 졸업한 해였다. 처음 발령받은 곳이 바로 덕유산(1,614m)과 적상산(1,034m)으로 둘러싸인 전북 무주 괴목국민학교(당시 이름)였다. 그의 첫 객지 생활이었다. 동시에 세상에 대한 외로움과 괴리, 소외감을 가져다 준 장소이기도 했다. 이방인으로서 겪는 소원(疎遠)함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해도 풀리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안식처는 인근 산을 오르내리는 일이었다. 산에 오르는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단지 산에 오른다는 그 자체가 정신과 육체의 위안이 되었을 뿐이었다. 적상산을 무척이나 올랐다. 일주일에 서너번 이상이었다. 산이 주는 느낌, 바로 그 포근함이 너무 고마웠다. 인생의 동반자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그땐 몰랐지만 나중에 “아, 이게 산이었구나”하는 느낌이었다. 산이 준 이 위안은 아마 나중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되는데 정신적 힘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등단은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여름의 잔해’란 소설로 이루어졌다. 이후 그는 ‘불꽃놀이’(80년), ‘풀잎처럼 눕다’(82년), ‘숲은 잠들지 않는다’(84년), ‘불의 나라’(86년), ‘물의 나라’(87년), ‘황야’(90년), ‘위기의 남자’(91년), ‘수요일은 모차르트를 듣는다’(91년), ‘마지막 연인’(92년), ‘태양의 방’(92년), ‘잃은 꿈 남은 시간’(92년), ‘틀’(93년), ‘겨울 강 하늬바람’(93년), ‘적게 소유하는 자가 자유롭다’(93년) 등을 거의 매년 한편 이상 작품집을 쏟아냈다.

소설가 박범신씨의 산사랑은 아주 특별나다. 히말라야에서 70여일을 혼자 보내는 등 산에서 고독을 즐기는 수준이상이다. 그럼으로써 소설 소재를 구상하기도 한다. 한국에 산악문학이라는 새장을 활짝 열어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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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1993년말 돌연 절필을 선언한다. 20여년간 계속해온 작업에 대한 정신적 피폐함을 느꼈을까, 아님 세상에 대한 또 다른 두려움을 느껴서일까?

그는 말한다. “그냥 단지 쉬고 싶고, 인간 본연의 실존적인 모습을 고민하고 싶어서 당분간 절필을 선언했을 뿐인데 세상은 나의 절필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세상 밖 낭떠러지로 밀어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난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너무 섭섭했고, 때로는 세상에 배신감까지 들 정도였다.”

그는 이 때 또 다시 산을 찾기 시작한다.

경기도 용인에 화장실도 없는 상태의 집에 거처를 마련한 그는 막무가내 이리저리 산을 찾아다녔다. 정신적인 안식처로서의 산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사랑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번은 밤 9시 무렵 볼일 보러 잠시 밖으로 나갔는데, 하늘의 별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마치 잡아보라고 유혹하는 것 같이 반짝였다. , 그 별을 쫓아 새벽녘까지 산길을 헤매고 다녔다. 집에 돌아오니 시간은 새벽 3시를 넘고 있었다. 라이트도 없이 야간 산길을 걷느라 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건 예사였고, 가시에 찔리고 이름도 모를 벌레에 쏘이고 웅덩이에 빠지기 일쑤였다. 인근 굴암산과 태화산(641m)이 마치 집 앞마당이나 된 듯 시도 때도 없이 오르내렸다. 거의 산에 대한 경외감 수준이었다. 3년전인 1990년 히말라야 첫 트레킹에서의 경험도 그에게 산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그는 이후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코스 등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섯 번이나 더 갔다 왔다. 2005년 12월엔 장애인들과 함께 희망원정대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정상 우후루 피크봉(5,895m)을 밟기도 했다. 영혼의 안식처로서 산에 대한 경외감은 더욱 쌓여만 갔다.

“산은 어머니의 자궁이다. 인간은 그 곳에서 열달 동안 있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못하며, 볼 수도 없다. 이건 마치 사람들이 산에 갈 때 자기가 지나치는 부분, 부분만 보며, 전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보지 못하는 모습과 꼭 같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전혀 겸손하지도 않고 교만하면서 거만하기까지 하다. 산이란 자연 속에서 시간을 되돌아보고 겸손을 배워야 한다.”

96년 그는 3년간의 절필을 끝내고 화려하게 복귀한다. ‘흰소가 끄는 수레’(96년), ‘제비나무의 꿈’(96년)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의 복귀에 대한 변(辯)과 3년간의 절필에 대한 내면적 이유는 97년 발표한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꽃’에 잘 드러나 있다. 죽은 고기나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인생을 유기하며 살아가는 인간들, 사랑에서조차 늘 아웃사이더인 우리들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해주는 소설이다.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젊었을 때 만큼 작품 발표는 덜 했지만,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그 부족분을 보충했다. 한국문인협회 및 국제 펜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문학 발전에 이바지함과 동시에 명지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그는 2005년 ‘나마스떼’를 발표하고, 그 소설 남자 주인공의 고향인 히말라야를 2006년 3월부터 방문, 70여일간 고행의 산행에 들어간다. 이 때 쓴 편지형식의 글들을 모아 산문집 ‘비우니 향기롭다’를 발표했다.

그는 이 책에서 존재의 가없는 하찮음과 존재의 가혹한 무거움을 만났던 경험을 그대로 써 내려갔다.

‘고독은 버나드 쇼의 말처럼 방문하기엔 좋은 장소지만 체재하기엔 쓸쓸한 장소 입니다. 아니 쓸쓸한 장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약해지고 무너져가고 있다고 느낄때 고독은 처형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갖은 고생을 다해서 최종 목표 지점에 올라왔는데도 너무 지쳐서 그런 것일까요. 아무런 환호도 솟아오르지 않습니다. 물론 슬픔도 없지만요. 다만 지나간 내 모든 시간이 다 전생에서 겪은 일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는 짧은 순간 자신의 전 생애를 축약해서 보게 된다는데, 지금의 내가 그렇습니다. 평생 용서할 수 없었던 정한도, 평생 해체할 수 없었던 욕망도, 평생 버릴 수 없었던 아집도 여기선 힘을 못씁니다. 그것들은 더 이상 나를 억압할 수 없습니다.’

‘사색은 달리는 자에겐 머물지 않습니다. 머물러 서서 먼 곳을 볼 겨를이 없으니 사색은 내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그 다음엔 세상이 만든 습관과 관성에 따라 달려가면서 악을 쓰다가, 어느 순간 문득 멈추어 뒤돌아보면, 삶의 어느 지점에서부터 사색하는 걸 잊어버린 것인지, 원래의 그 자리조차 찾을 길 없는 것이 바로 50대의 내가 살아온 세상이었습니다.’

‘이 곳에선 시간이 천천히 흐릅니다. 실러는 시간의 걸음에는 세 가지가 있는바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고 말했다지만, 이 곳에서 시간의 흐름은 오히려 그 반대로 흐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과거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미래는 정지되어 있으며, 현재는 장강의 물처럼 느릿느릿, 흐르지 않는 듯이 흘러갑니다. 이 곳의 현재에선 뛸 필요가 없지요.’

‘나는 무엇을 찾아왔던가. 삶은 필연적으로 구심력을 쫓아오는 회귀와 원심력을 따라가는 유랑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많은 날들 집으로 돌아왔듯이 지난 두 달 반 동안, 나는 끝없이 유랑의 길로 흘러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천 길 낭떠러지 위에 걸린 출렁다리를 아슬아슬 건널 때, 만년빙하의 파노라마를 올려다볼 때 그리고 깊은 밤 내 발의 물집들을 잡아뜯으며 침낭을 뒤집어쓰고 씁씁하게 돌아누울 때, 나는 자주 왜, 무엇을 찾아 낯선 시간 속으로 흘러다니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삶은 더러 후회투성이였고 미래는 불확실했으며, 오늘의 내 영혼은 잔인한 시간의 주름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히말라야에서 인간의 고독, 겸손, 사색, 시간, 여유, 비움, 존재에 대한 무한한 고민을 그대로 쏟아냈다. 인간 실존에 대한 근원적 의문이었다. 그러나 정답은 없었다. 단지 본질에 조금 더 접근하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산은 무엇일까? 인간에게 주는 의미를 뭘까?

1980년부터 16년동안 히말라야 14좌를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완등한 ‘폴란드 산악계의 작은 거인’ 크지스토프 비엘리키는 말했다. "산은 지극히 주관적인 곳이다. 도시에서 10년 걸려 체득할 수 있는 것을 산에서는 단 5분만에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산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포용력이 넓어지게 한다. 산에 다니면서 받는 감동, 그것이 내가 산에 다니는 이유다."

그러면 박범신씨에게 산은 뭘까? 그에게 물어보았다.

“산을 걷는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경쟁체제에 찌든 인간의 독성(毒性)이나 독기(毒氣)를 빼내는 행위 입니다. 한 일주일 정도 걸어보면 두고 온 사람, 편리한 세상 등 온갖 생각, 잡념이 솟아납니다. 그러나 다시 일주일 더 걸어보세요. 육체적 피로와 힘듬으로 인해 그런 생각 할 여유조차 없어집니다. 다시 일주일 더 걸어보세요. 모든 사고는 관념으로만 작용하고, 더 이상 실존하는 게 없어집니다. 그 관념도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천에 옮길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無)와 유(有)가 똑 같아 지는 세상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종교의 무념무상의 세상이지요. 여기선 시간이란 개념도 의미 없지요. 다 인간이 만들어낸 부산물에 불과하죠. 산이란 자연 속에서 인간은 겸손함을 배우고, 인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인간은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이고, 혼자이면서 함께인 것을 왜 모르는가?”라는 화두(話頭)를 던지는 것 같았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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