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림왕 임종국을 생각한다

식목의 달을 맞아

‘조림왕’ 임종국 선생을 다시 본다

장성 축령산 편백림 596㏊에 250만 그루 조성


숲 사이로 여명이 스며든다.

그 여명은 희망의 빛이다.

한 인간의 영혼으로 만든 빛이다.

그 인간의 혼이 숲 속에 깃들어 있다.

그 숲 어디를 가도 그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죽어서도 그 산을, 그 숲을 떠나지 않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는 그 숲과 함께 했다.

유골을 수목장으로 묻어 그 숲에 바쳤다.

애당초 숲은 없었다.

한 인간이 20여 년간 황무지를 일군 집념의 숲이다.

그의 혼을 바쳐 가꾼 영혼의 숲이다.

한국에 조림의 필요성을 일깨운 선각자의 숲이다.

그 숲이 바로 축령산 편백림과 삼나무 숲이다.

‘한국의 조림왕’ 고(故) 춘원(春園) 임종국. 그의 일생은 숲으로 점철돼 있다.

그는 한국 조림의 효시다. 그가 가꾼 전남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은 한국 최고 밀도를 자랑한다. 1㏊당(약 3,000평) 700~2,500 그루정도다. 나무의 평균 높이는 18m로 성인 키의 10배 이상이다. 수령도 대부분 30년을 넘는다. 가히 숲 천국을 방불케 한다. 2005년 말 기준 입목축적(단위면적당 산림 밀도)을 보면 그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산림축적, 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없어


축령산 산림은 천연림 75㏊(29%)와 인공림 183㏊(71%)로 이루어져 있으며, 입목축적은 천연림이 101㎥, 인공림이 250㎥로 나무를 심고 가꾼 임지가 천연림보다 2배 이상 잘 보존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전국의 숲 현황과 비교해보자. 전국 평균 축적은 79.2㎥/㏊이며, 국유림은 103.4㎥, 공유림은 82.1㎥ 사유림은 70.7㎥이다. 축령산 인공림의 축적 250㎥는 다른 어떤 산림보다 촘촘하게 잘 가꾸어져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 수치는 전국 평균 축적의 3배 이상에 달하며, 세계 유수의 숲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평균 입목축적은 캐나다 120㎥, 미국 136㎥, 일본 145㎥, 독일 268㎥, 스위스 337㎥, 북한 41㎥ 등의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나라의 숲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축령산 편백․삼나무 숲은 불가능하게 보였을 법한 일을 그의 손으로 직접 일군 성과였다. 아마 그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축령산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임종국의 일생=임종국 선생은 1915년 전북 순창군 복흥면 조동에서 나주 임영규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순창중학교 3년 중퇴 후 농촌 일을 돕다가 25세 때인 1940년 전남 장성군 장재마을로 이주, 양잠과 특용작물을 재배하며 제법 짭짤한 농가소득을 올려 어렵지 않게 생활했다. 당시의 양잠과 특용작물 재배는 일종의 부농들의 농사일 이었다. 그는 농사일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고, 돈도 벌면서 영농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종국 선생은 우연히 장성군 덕진리의 인촌 김성수 선생 소유 야산에 쭉쭉 뻗어 자라고 있는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보고 ‘아! 우리 강산에도 이런 나무가 성장할 수 있구나’를 느끼며 한눈에 반해버렸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드리 편백-삼나무를 보고선 조림지를 만들 의욕에 넘쳤고, 대경목 생산이 가능하다는 확신도 생겼다. 조림을 해야 한다는 열정이 용솟음치는 것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해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6년이었다. 임종국 선생은 그 해 봄부터 본격 조림을 시작했다. 양잠업에서 양묘업으로 전환이었다. 일단 사재를 털어 자기소유 임야 1㏊에 삼나무 5,000주를 시험조성하여 성공하자, 용기와 자신감을 더욱 얻게 된다.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골라 심는 임종국식(式) 적지적수 조림을 개발하여 거침없이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어나갔다.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서삼면 모암리, 북하면 월성리 일대 등 100㏊를 추가 매입하고 대단위 조림을 실시했다. 먹을거리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조림사업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한 것을 본 주위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기도 했으나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68년엔 전국에 몰아닥친 극심한 가뭄으로 밭작물뿐만 아니라 그가 조림한 나무들이 전부 말라죽을 위기에 처했다. 하나 둘씩 말라비틀어져갔다. 그러나 그는 물지개를 지고 산을 오르내렸다. 물을 구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물을 구하러 다닌다는 자체부터가 고통인데, 인간이 그 물을 지고 산으로 옮기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어느 정도 효과 있으며, 또한 고통은 얼마나 따랐겠나? 그래도 그는 계속했다. 그의 어깨는 피투성이였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나섰고, 마을 주민들도 하나 둘씩 감동했다. 급기야 온 마을 주민들이 산으로 물을 지다 나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주민들 모두 어깨가 온전치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들은 행복해 했다. 죽어가는 나무를 살려냈다는 뿌듯한 자부심이 그들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임종국 선생의 장남 임지택씨(56)의 증언이다. 그의 정성에 감복한 나무들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해를 거듭할수록 조림면적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의 조림사업은 76년까지 계속됐다. 꼬박 20여 년간을 헐벗은 산 570㏊에 280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으로 가꾼 것이다. 72년 그가 5․16 민족상을 받을 때 자료에 따르면 71년까지 그의 투자비용은 총 7,370만원으로 평가돼 있다. 10년 자란 나무 한그루가 1,000원 하던 시절이니 엄청난 투자를 한 것이다.

그의 조림에 대한 열정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나무심기를 전국가적 운동으로 유발하는 촉매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66년 식산포장(殖産褒章), 70년 철탑산업훈장, 72년 5․16 민족상을 수상했다.

그의 조림사업은 가뭄․수해․돈 문제 등으로 몇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우직할 정도의 끈기와 검소한 생활로 잘 넘어갔다. 그러나 마지막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그 소유의 산과 임야들은 그가 돈을 끌어다 쓴 사채업자와 채권자들에게 넘어가고 만다. 이 당시의 상황을 그의 장남 임지택씨의 말을 빌려 들어보자. “초기엔 투자비용이 많아 여기저기서 돈을 빌어다 썼으나 60년대 이후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원으로 조림․조경사업이 날로 번창했다. 하지만 정부에 납품하던 물량이 때때로 줄거나 없어지면 자금순환이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를 전해들은 박 전 대통령은 재벌 몇 명을 불러 산림보전을 위해 조림지 일부를 매입하라고 권유했다. 재벌 몇 명은 장성 축령산 일대를 직접 현지답사하기도 했다. 일부는 이미 지분을 약간 보유하고 있었다. 모든 결정이 난 후 최종적으로 청와대에 가서 보고하고 계약서만 받아오는 작업만 남겨두었다. 그러나 운명은 외면했다. 박 전 대통령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재벌들의 조림지 매입계획은 없었던 걸로 돼 버렸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몇 일만 더 계셨다면 지금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고, 더 많고 더 좋은 숲이 가꿔졌을 것이다.”

이 때가 79년 말 상황이고, 80년엔 임종국 선생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 후 임종국 선생은 7년간을 투병하다 세상을 하직했다. 병원비로 상당한 돈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채업자나 채권자들이 부채상환을 재촉했다. 이 때 가족들이 상당히 힘들었다고 장남 임지택씨는 말했다. 어떤 날은 작업장의 십장들까지 병원과 집에 나타나 돈 달라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의 조림왕’은 그렇게 쓸쓸히 간 것이다. 장남 임씨가 전하는 그의 유언은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 나무를 심는 게 나라사랑하는 길이다.” 역시 조림왕 다운 유언이었다.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조림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임종국 선생은 지금 그가 가꾼 전남 장성 축령산 자락에 묻혀있다. 선산에 있던 그의 묘를 지난 2005년 수목장으로 이장한 것이다. 산림청은 지난 2001년 그의 공로를 기려 국립수목원내 ‘숲의 명예전당’에 업적을 새겨 헌정했다. 여태까지 다섯 사람만 올라있다. 국가발전과 민족번영을 치산치수에서 찾았던 故 박정희 전 대통령(1917~1979), 이 땅에 자라는 나무종자를 수집하고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국토의 구석구석을 누빈 故 김이만 할아버지(1911~1986),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조림수종 개발에 평생을 바친 故 현신규 박사(1911~1986), 미국인으로서 한국에 귀화해 7,200여종을 보유한, 아시아 처음이자 세계 12번째로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받은 천리포수목원을 조성한 민병갈(미국명 Carl Ferris Mille) 원장 등뿐이다.

산림청은 지난 2000년 이 편백나무 숲을 ‘22세기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했고, 앞으로 그 가치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또한 현재 ㏊당 200㎥ 남짓되는 산림축적을 산림보존지역에 한해서 ㏊당 600㎥ 이상으로 육성할 계획으로 있다. 뿐만 아니라 사유림 매수를 통한 경영임지를 현재 258㏊에서 534㏊로 확대할 계획도 세워놓았다.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머지않아 외국으로 수출되는 날도 기대해본다.

◆편백숲은 어떤 곳인가=장성 8경중 2경인 축령산 휴양림 ‘임종국 숲’을 한번 걸어보라. 백문이 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시사철 언제라도 좋다. 하늘을 가린 울창한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어우러져 원시림을 방불케 하며 풍경도 뛰어나다. 숲길은 승용차가 다닐 수 있는 정도의 임도가 있긴 하지만 아예 차는 내버려 둬라. 무조건 걸어라. 편백나무와 삼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를 마음껏 들이켜 봐라. 가슴이 확 트이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가 그냥 날아가는 기분도 들 것이다. 편백나무와 삼나무의 피톤치드(phytoncide, 식물이 병원균․해충․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로,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까지 가장 왕성하게 분비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량이 가장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은 실험용 쥐에 소나무, 잣나무, 편백, 화백 등의 4종류 나뭇잎에서 추출한 정유(나무 생장 호르몬)를 쏘인 결과,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코르티솔(Cortisol)치수가 20~50%가량 급감했다. 특히 편백나무 정유 상자속의 실험용 쥐는 코르티솔 치수가 1시간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물질, 편백나무서 가장 많이 나와


편백나무와 삼나무는 생김새가 비슷해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나뭇잎이 부챗살처럼 펴진 것이 편백, 솔방울처럼 뭉친 것이 삼나무다. 길 양옆 나무 밑으로는 구절초와 물봉선 같은 많은 야생화가 만발해 있어 산책코스로 제격이다.

장성 축령산 편백림은 전국 최대 조림성공지로서 산림휴양․삼림욕․청소년 자연체험 및 학습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외국의 산림 공무원, 전문가 등도 감동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 명품 숲으로 자리매김 받고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埼玉縣)과는 한일 문화교류 차원에서 친선방문을 실시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도 산림관계관을 장성에 보내 성공적인 인공조림에 대해 조언을 듣기도 했다. 2005년엔 중국 산림청 간부 일행이 장성 편백림을 방문, 경이와 찬사를 보내며 조성과정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인근에는 임권택 감독이 95년 만든 ‘태백산맥’의 촬영지로 유명한 영화촌 금곡마을이 있다. 김수용 감독의 ‘침향’(99년 제작), 이영재 감독의 ‘내 마음의 풍향’(98년 제작)과 드라마 ‘왕초’-‘8․15 특집극 오른손, 왼손’ 등도 이 곳에서 촬영했다. 편백숲과 함께 주변관광지로서 가볼만한 코스로 꼽힌다.



찾아가는 길

서울→장성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서 8:35(우등), 14:30(우등), 16:40(일반) 하루 3차례 운행. 4시간 정도 소요.

용산역→장성 KTX 하루 9차례(2시간 40분가량 소요), 새마을호 하루 5차례(3시간 30분 남짓 소요), 무궁화호 하루 14차례 운행(4시간 10분가량 소요). ☎ 철도청:1544-7788

장성읍에서 금곡 영화촌마을(06:00, 10:00, 12:00, 18:00)과 추암관광농원(07:00, 09:00, 13:00, 16:00) 방면으로 각각 하루 4차례 군내버스가 왕복한다. 약 40분 소요.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 장성 나들목에서 북일면 방향으로 가거나 서해안고속도로 고창 나들목에서 장성 방향으로 가면 된다. 나들목 기준으로 소요시간은 각각 30분 정도.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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