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대하소설 ‘대발해’ 펴낸
김홍신 소설가
“대학시절부터 등산 다녀…산은 영혼의 고요를 주는 곳”
소설 ‘인간시장’으로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작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3위,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에 선정, 86년 한국소설 문학상 수상, 87년 소설문학 작품상 수상, 헌정사상 처음으로 8년 연속 의정활동 1위 정치인, 지금까지 쓴 책은 모두 117권.
소설가 김홍신(金洪信, 61)을 지칭하는 수식어들이다. 수없이 많지만 대표적인 몇 개만 추린 것이다. 일반인들은 김홍신하면 보통 인간시장을 떠올린다. 원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고, 또한 많이 읽어 한국 소설사상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소설이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8년간의 정치인이란 외도생활을 끝낸 그는 3년여 간의 칩거생활 끝에 소설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것도 10권짜리 역사 대하소설 ‘대발해’란 화제작을 발표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산은 나에게 영혼의 고요를 주는 곳이라고 할 정도로 산을 사랑하는 소설가 김홍신씨가 인왕산을 올랐다.
그는 한마디로 ‘작은 거인’이다. 160㎝의 작은 체구지만 부드러운 듯 하면서 강단 있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다. 그가 쓴 글에서나, 의정활동에서 보면 그런 행동을 쉽게 볼 수 있다.
그의 소설 ‘인간시장’에 나오는 주인공 장총찬도 그래서 탄생한 인물이다. 김홍신은 장총찬을 등장시켜 부패하고 부조리한 권력층을 마구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현실에서 하지 못한 정의를 소설을 통해 에둘러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독자들도 그의 소설, 그의 말을 통해 통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첫 밀리언셀러라는 폭발적 호응으로 그의 노고에 화답했다.
거칠지 않으면서 입바른 표현이나 말 때문에 그는 필화(筆禍), 설화(舌禍) 사건을 여러 번 겪었다. 순전히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정의가 통하고 살아있는 사회였다면,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사회 같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들이다.
부드러운 듯 강단있고, 불의 보고 못 참아
그 첫 번째 사건이 80년에 나온 그의 책 ‘도둑놈과 도둑님’에서 비롯됐다. 도둑놈은 남의 물건을 훔친 인간이 법률적, 사회적 제재를 받지만 도둑님은 도둑놈과 똑 같은, 아니 그 이상의 나쁜 행위를 하지만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부패한 권력층의 모습을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사용한 말이다. 권력층에서 발끈한 건 당연한 일이다.
두 번째가 81년에 출판된 소설 인간시장으로 인해 발생했다. 홍길동같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부패한 권력을 가차 없이 차단하는 그의 활약에 많은 독자들은 고소해 했지만 살아있는 권력은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 없었다. 군부 시절이었으니 더 심했을 것이다. 그 살아있는 권력은 노골적으로 폭력없는 테러를 감행했다. 하루 종일 전화로 협박하고, 집에 수시로 돌이 날아오고, 입에 담지 못할 언어폭력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부인은 애들을 데리고 남편도 모르게 잠적하기까지 했다. 급기야 모처에 끌려가 취조받기에 이른다. 고문당한 건 아니지만 정신적 고문을 심하게 당하고 풀려났다. 그 뒤부터 그의 글은 사전검열을 거친 뒤 세상에 나온다.
세 번째는 90년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방송노조원들이 경찰에 맞아 피투성이 되는 걸 보고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서글프다. 대한민국이 민주국가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예고되지 않은 발언을 했다. 다음 날 바로 출연 금지를 당했다.
네 번째는 YS시절 크고 작은 비리사건이 수없이 터지자 라디오 진행자였던 그는 방송도중 “우리나라는 옳은 말을 할 자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 어떤 신문에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썼다고 해서 칼럼이 중지 당했고, 대중강연에서 똑같은 일을 했다고 해서 정부요원이 뒷조사를 하는가 하면 결국에는 이 방송도 그만두라고 합니다”라고 혼자만의 계획된 발언을 하고 방송을 중단했다.
다섯 번째는 의원시절 그 유명한 DJ를 향한 ‘공업용 미싱’ 발언이다. 전화협박은 물론이고 살해위협까지 받았다. 대충 알려진 것만 이 정도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어디서 나올까? 어머니한테서 받은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어릴 적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 한 토막. 그의 어머니가 얼마나 강단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루는 그가 동네에 사는 친척뻘 애를 때렸다. 그 집안의 5형제가 와서 보복했다. 김홍신은 외아들이다. 실컷 두들겨 맞았다.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 어린 김홍신을 학교 운동장 나무에 묶어놓고 자신은 바로 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 부모가 용서를 구할 때까지 일어서지 않았다.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로 퍼졌고, 버티던 그 집 부모가 결국 찾아와 사과를 했다. 무언의 시위로 상대방을 굴복시킨 어머니의 보이지 않은 교육이 커서도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어린 김홍신을 아들이 없는 큰집에 양자로 보내려고 하자, 어머니가 “외아들인 내 아들을 절대 못 내준다”며 끝까지 버텨 결국 지켜낸다. 또 한번은 동네 곱추를 놀렸다가 어머니한테 호되게 혼났다. 그런 다음 어머니는 장애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 김홍신은 어머니를 통해 사랑과 희생과 용기를 배웠다. 그 힘이 아직 그를 지배하고, 지탱해주고 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 71년 6사단 장교로 최전방 철책근무를 할 때 북한군 장교 3명을 총격전 끝에 전원 사살하는 무공을 세웠다. 초임 장교가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사태는 조그만 사건으로 급반전됐다. 거적을 아무렇게나 덮어놓은 북한군 시신이 불쌍하게 보여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놓고 소대원들과 기도를 했다. 전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빨갱이 소대장으로 몰렸다. 군수사대에 끌려가 취조를 받았다. 그는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게 무슨 죄냐, 인간적으로 측은해서 그렇게 했다”고 항변하는 순간 그의 몸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무 일 없이 끝나긴 했지만 하루아침에 영웅에서 빨갱이로 추락할 뻔한 웃지 못 할 사건이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산은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하나의 잣대
그가 어머니 다음으로 많은 교훈을 얻는 곳이 바로 산이다. 대학시절부터 산을 다녔으니, 산행경력만도 40년이 훌쩍 넘는다. 일반 산악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산과 그렇게 인연이 깊은 그가 산을 어떻게 생각할까?
“산은 내게 육신의 건강을 주고 영혼의 고요를 주는 곳입니다. 나의 영혼을 맑고 평화스럽고 자유로워지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산에는 너무 많은 교훈과 메시지가 담겨 있어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죠. 인간 생존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와 함께 지난 9월6일 인왕산을 찾았다. 그는 지금 햇빛 알레르기를 겪고 있다. 지난 3년간 하루 12시간씩 햇빛을 보지 않고 대발해를 쓰는 작업을 한 결과 얻은 영광의 상처다. 하루에 최소한 원고지 20장 이상은 꼭 썼다. 의정생활을 하면서 발해와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려는 중국 동북공정을 보고 사명감을 느껴 시작했다. 의정생활하면서 5년간의 준비 끝에 작업에 들어갔다. 산악인들이 목숨 걸고 산에 가듯이 그도 목숨 걸고 소설을 썼다고 했다.
“지난 3년 여간 두문불출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 작업을 끝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볼 수가 없다. 결과물이 나와야 사람들이 ‘아, 김홍신이가 저 작업하느라 그동안 보이지 않았구나’하고 용서가 되지 않겠느냐.”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통해 나온 결과가 바로 대발해란 대작이다. 산이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산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잣대가 된다. 쉽게 오를 수 있는 산도 날씨나, 신체 조건 등 상황에 따라 오르지 못할 때가 있다. 못 오를 것 같은 산도 강력한 의지로 도전하면 해내기도 한다. 그는 햇빛 알레르기를 얻었지만 해냈다. 인왕산에 오르면서 햇빛 차단제를 얼굴에 발랐다. 좀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3년 동안의 작업을 끝내고 가장 먼저 찾은 게 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산은 그에게 소중한 존재다. 산이 주는 깊이, 넓이, 포용력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산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이 빨리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건강만을 위한 차원이 아닌 정신적인 차원에서 안식처와 같은 곳이다. 요즘 매일 산에 간다.”
산은 어떻게 보면 법정 스님이 말한 ‘무소유’의 가르침을 주는 곳이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권력, 명예, 돈이 사람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김홍신씨는 고비 때마다 명예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잘 한 일이었고,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장관직 제의도 있었고, 국회의원 보선 출마까지 제의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소설에 매달렸다. 그는 나아가 “지난 총선도 떨어지길 잘했다. 떨어지지 않았다면 대발해를 쓰지 못했을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종로에서 500여표차로 아깝게 낙선했다.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재검표 하자는 주변 의견도 있었지만 군말 없이 승복하고 소설 쓰는 일에 정열을 쏟았다. 그게 바로 김홍신이다.
그는 앞으로 계획까지 벌써 세워 놓았다. 한 개가 아니라 세 개씩이나 있다. 먼저, 다음달(10월)쯤 인도로 갈 예정이다. 인왕산 가기 바로 직전 달라이 라마의 처제를 만나고 왔다. 달라이 라마를 인도에서 만날 약속을 전하기로 했다. 불교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한 정지작업이다. 제목은 잠정적으로 ‘붓다’로 정했다. 두 번째는 권력이 가지는 긍정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아우른 정치소설을 쓰는 것이다. 8년간의 정치인 경험을 백분 살릴 계획이다. 자료는 이미 축적돼 있다. 세 번째는 지독한 사랑에 관한 얘기로 심금을 울리고 싶다. 사람 사는 얘기인 것이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역시 그는 소설가가 제격인 것 같았다.
산 예찬론자들은 많다. 그도 산 예찬론자 중의 한명이다. 그냥 산에 오르는 등산객에서부터 목숨 걸고 산에 가는 산악인까지 모두들 나름대로의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산이 담고 있는 철학적 의미, 존재의 의미 등 단순한 듯 하면서 심오함까지 있을 것이다. 그에게 산이 담고 있는 무궁무진한 소재로 소설을 쓰는 걸 기대하면 무리일까? 산의 대중화에 휠씬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