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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규 부산경찰청장의 산행


이명규 부산경찰청장

“산이 주는 큰 원칙, 경찰생활 내내 마음에 담고 지켜”


산과 경찰. 이 둘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지레 무슨 관련이 있으니 제일 먼저 화두로 꺼냈겠지 라고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결고리가 없다. 다들 한번 상상해보자, 무슨 관련이 있는지. 경찰이 산에서 훈련하나? 산에서 간첩이나 도둑을 잡았단 말인가? 조금 더 의미를 따져서 보자. 산이 주는 넓고 깨끗한 마음으로 경찰은 봉사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나? 아니면 경찰은 산을 통해서 체력을 단련시키고 호연지기를 키워야 된다는 말인가?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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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규 부산경찰청장이 김해 분성산에 산행하고 있다.

여기 평생 경찰생활을 하면서 오로지 산과 경찰일밖에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 경찰 간부를 통해 산과 경찰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자. 그는 2008년 2월 현재 부산경찰청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명규(李明圭. 56) 치안감이다.

그가 원래부터 경찰에 투신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꿈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릴 적 꿈은 목장이나 임업 등 산과 직접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자연과 부대끼며 생활하는 것이 훨씬 인간적인 일이라 판단됐기 때문이다. 축산업과 관련해서 취직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직접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부산의 명문 경남고교를 졸업했지만 농대 축산과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4년은 어릴 적 꿈의 실험무대였다. 실험 실습도 많이 했다. 동물들과 같이 부대끼며 생활했다. 소똥 냄새가 몸에 배일 정도였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겐 축산 일은 만만치 않았다. 하면 할수록 힘들었다. 그가 받는 좌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정말 축산이 나에게 맞는 일인가’ 회의도 들었다. 집에선 반대가 심했다. 누나와 여동생뿐인 집안에서 외동으로 자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축산 일을 하기엔 외동으로 자란 집안의 개인적 여건과 도시생활에 익숙해 있던 사회적 여건, 모두 그를 어렵게 만들었다.

대안이 뭔가?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은 깊어졌다. 그냥 취직하기엔 준비도 안됐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 상황에서도 산을 놓지 않았다. 고교 시절부터 대학 내내 산악부 생활을 했다. 경남고 시절엔 학교 가는 게 산에 가는 것과 같았다. 학교가 바로 구덕산 언저리에 있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산을 통해 의식하지 않은 사이 호연지기가 키워지고 있었다. 그건 국가를 위해 할 일이 없을까 라는 기개였다. 대안이 결정됐다. 경찰이었다. 인생의 방향을 전격적으로 틀었다. 간부후보생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산행하면서 배운 집중력이 큰 도움이 됐다. 76년 합격했다. 그의 경찰 인생은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당시 시험 준비 중에도 산에 다니며 만든 노래가 지금도 많은 산악인들이 부르는 ‘자일의 정’이다. 자작곡 미상으로 알려진 노래가 지금에서야 이명규 청장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땐 노래의 가치를 떨어뜨릴까봐 이름을 알리지 않고 후배들과 산에 같이 다니면서 부르는 데 만족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그 노래의 가치에 비추어 그의 이름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판단해 드러낸 것이다.

산이 주는 맑고 깨끗한 자연과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그의 경찰생활은 시작됐다. 그에게 경찰생활은 출발부터 신선했다. 비록 어릴 적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대안으로 결정한 목표를 달성한 기쁨으로 출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전띠 착용 생활화 운동이 그의 업적


그의 경찰생활 신조는 시민들 불편해소와 억울한 사람 없애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바로 산이 주는 맑고 깨끗하면서 치우침과 거짓 없는 교훈을 바르고 정의롭게 중립을 지키며 봉사하는 큰 원칙으로 전환해서 나타났다. 이게 바로 경찰의 상(像)이다. 그에게 딱 적격이었다.

초급간부 땐 경찰의 기강과 상사의 명령을 충실히 받들며 내공을 쌓은 후 중견간부 시절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첫 업적이 86년 서울청 교통관제실장 때 나왔다.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하던 교통관리 시스템을 한눈에 종합적으로 볼 수 있도록 개선했다. 실시간으로 정체 구간 파악이 가능해졌고, 신속한 체증해결로 시민들 불편해소에 크게 기여했다. 과학적 교통관리체제를 정착시킨 것이다. 93년엔 청와대 사정비서실 행정관으로 파견 근무하면서 업무에 기여한 공로로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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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안대학 교장과 교류하면서 감사패를 주고 받고 있다.

98년 강원 홍천경찰서장으로 발령받은 그는 획기적 성과로 주목받기에 이른다. 교통관제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교통시스템에 일가견을 가지게 된 그는 뜻하지 않은 사건을 접한다. 홍천의 한적한 간선도로에서 교통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흔히 있는 교통사고려니 하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인간미가 가만두질 않았다. 피의자는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마을 주민이었다. 피의자가 구속되면 그 가정은 풍비박산될 상황이었다.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사고지점을 중심으로 원인추적에 나섰다. 사고는 원래 있던 마을도로에 새로 만든 지방 간선도로의 접속 지점에서 발생했다. 주민이 좌회전하다 직진하던 차량에 충격을 가한 사고였다. 책임을 면키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새 간선도로가 생기면서 주민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황을 주목했다. 주민은 항상 다니던 길을 그대로 다녔다. 그러나 간선도로를 만들면서 좌회전 허용신호를 간과한 사실이 밝혀졌다. 피의자의 입장, 아니 주민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피의자의 형량이 훨씬 경감했음은 물론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홍천군민들은 크게 감동했다. 그는 이듬해 동해서장으로 자리를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홍천군에서 조례를 개정해, 명예홍천군민 1호로 선정했다. 뿐만 아니라 2004년 강원 경찰청장으로 부임했을 때 그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홍천군 곳곳에 출렁거렸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홍천군에서는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을 정도다.


산은 맑고 깨끗하고 원대한 포부 안겨줘


이어 2001년엔 한국 교통사고에 일획을 긋는 업적을 단행한다. 바로 안전띠 착용 생활화 운동을 전국민 캠페인으로 대대적으로 전개한 것이다. 지방서장으로 있으면 못할 일을 마침 2001년 경찰청 교통안전과장으로 부임하면서 했다. 매년 교통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어떻게 하면 사망사고를 줄일 수 있을까 로 골몰했다. 특별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주어진 여건 내에서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뿐이었다. 안전띠를 매면 충격을 최대한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번쩍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 이 방법이다’ 무릎을 쳤다. 바로 홍보에 나서고 시행에 들어갔다. 가시적 성과는 즉시 나타났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1만 여명에서 8천 명으로, 한해 2천여 명이나 감소했다. 한마디로 경사였다. 경찰로서는 사고 줄여서 기뻤고, 보험회사로서는 경비 줄여 기업운영에 도움이 됐고, 국가로서는 인재손실을 막는 겹경사였다. 교통보험사들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대략 1조원 정도의 지출이 절감됐다고 한다. 거기에 교통사고로 인한 한 가정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무형의 기회비용까지 감안하면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이 일로 그는 2002년 보험협회에서 주는 교통안전 대상 특별상을 경찰 신분으로 첫 수상했다.

2003년 그는 다시 경찰청 인사과장으로 부임했다. 이번엔 치우침 없는 산의 교훈을 그대로 적용했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이야말로 조직안정과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와 함께 경찰청장 2년 임기제 보장을 추진했다. 지금 첫 결실을 맺었다. 그의 공로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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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경찰청 직원과 산행하는 이 청장이 직원에게 수건을 건네는 자상함을 보이고 있다.

2006년 12월엔 그의 고향 부산에 경찰청장으로 내려왔다. 그의 부임 첫 일성이 ‘억울한 사람 없는 부산 만들기’ 였다. 그가 지방청장이면서 얼마나 사소하고 서민적인 일에까지 신경 쓰는가를 한 사건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박봉의 남편을 돕기 위해 한 주부가 생활정보지에 난 광고를 보고 부업 일을 시작했다. 색칠을 해서 보내면 장당 3,000원 가량 준다는 내용이었다. 보증금과 재료비 명목으로 7만원 입금을 먼저 요구했다. 나중에 돌려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로 인해 사기당한 주부가 한 둘이 아니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생계형 사기사건이었다. 어찌 보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무심코 넘어갈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청장은 역시 달랐다. 보고받는 즉시 수사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수사관은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는지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미적거렸다. 바로 호통이 날아갔다. “60을 바라보는 내가 살이 떨리는 사건인데, 자네들은 피가 끓어야지, 어찌 그리 태연한가. 이런 악질 사기범을 24시간 내에 잡아들여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 사건이 해결됐음은 물론이고, 2007년 대한주부클럽 부산지부에서 ‘400만 소비자가 뽑은 훌륭한 공무원상’을 수여했다. 그 해 그는 홍조근정 훈장을 또 받았다.

그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이다. 그의 얼굴엔 권위라고는 없다. 수수하고 다정다감한 얼굴을 누구에게나 그대로 드러낸다. 상대방에 위압감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바로 느낄 수 있다. 내적으로는 굉장히 엄격하다. 자신과의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을 정도로 철두철미하다. 시간만 나면 등산으로 마음과 집중력을 다진다. 한달에 두 번은 암벽등반, 두 번은 혼자서 산행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꼭 실천한다. 그는 산을 제대로 알려면 혼자서 가야 한다고 했다. 산에 혼자 가면 산을 100% 알 수 있고, 둘이 가면 50%, 세 명 가면 30%밖에 파악할 수 없다. 산의 깊이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는 “산은 자기 스스로 파악하고 배워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등반기술은 선배들에게 배울 수 있지만 산을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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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클럽 소비자센테에서 주는 훌륭한 공무원상을 받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항상 혼자 산에 다니는 건 아니다. 그가 최근 부산에서 만든 무명암 회원들과 함께 간다. 회원들 출신도 다양하다. 치우침이 없음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수준급 암벽 등반가다. 암벽을 시작한 지 어언 40년이 됐다. 암벽은 특히 집중력에 도움 된다고 한다. 자칫 실수하는 날엔 순식간에 목숨이 날아간다. 신중과 안정에 신경 쓰다 보면 다른 무엇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가 경찰 생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특히 도움 받았다고 한다. 그는 청장하면서 산 후배들을 무척이나 아낀다. 한달에 두 번씩 누구나 같이 간다. 이것도 그가 산에서 배운 철학이다.

그는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 꿈이 있다. 경찰 생활을 얼마나 더 할지 알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던지 세상을 바르게 하는 일은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그는 여태까지 세상을 바르게 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아직도 욕심이 채워지지 않았다. 하긴 좋은 일 하는데 그까짓 욕심이 대수겠나. 2007년 태평로 모임에서 묵묵히 원칙을 지키며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운 그의 공적을 기려 ‘함께 패’를 수여했다. 그의 여생에 더욱 자극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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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부 경찰서 직원들과 산행하면서 기념촬영했다.

그는 산에 대한 욕심도 아직 놓지 않고 있다. 퇴직 후 산악인 김홍빈과 함께 꼭 히말라야 원정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김홍빈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에 선배로서 뭔가를 보답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약속했다. 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을 모두 잃은 김홍빈은 그 상태로 다시 히말라야 정상에 도전했다. 몇 년 뒤 60이 넘은 퇴직 경관이 김홍빈과 함께 히말라야 어느 봉 정상에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산은 누구나 다 포용하면서 누구를 특별히 편애하지 않은 모습을 항상 보여준다. 이 산의 논리에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가 산을 다니기 시작한지 40여 년 동안 산이 곧 그였고, 그가 곧 산이었다. 그게 바로 산과 경찰이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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