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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정신과 의사, 산을 말하다 - 마운틴
정신과 의사, 산을 말하다

지난연말 인사동(실제 행정구역은 관훈동)에 있는 경인미술관을 찾았다.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정회원이자 연세대 영동세브란스(지금은 강남세브란스로 바뀌었다)정신의학과에 재직 중인 이홍식(李弘植, 60) 교수가 자신의 첫 유화 개인전 ‘히말라야’를 연다고 해서였다. 정신의학과 교수와 산과 그림. 묘한 느낌과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많은 메시지와 교훈을 독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 정신의학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권위자로 꼽힌다. 그가 속한 대한민국 의학한림원은 2004년 4월 국내 의학발전과 국민건강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창립된 기구이며, 현재 전체 회원이 350명으로 의학연구자 5%만이 가입돼 있다. 이와 함께 세계정신분열학회 이사, 대한신경정신의학과 국제이사, 대한정신약물학회 2대 이사장,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 원장, 대한정신약물학회 회장, 한국자살예방협회 초대 회장, 국제신경정신약리학회 위원장 등은 이 교수가 역임했거나 맡고 있는 직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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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 교수가 자신이 그린 히말라야 유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에 대한 기본 정보만 가지고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곧 환갑을 맞을 이 교수였지만 직접 보니 의외로 젊게 보였다. 동그란 밝은 얼굴, 뒤로 넘긴 머리에서 오랜 세월 의사로서 지낸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이웃집 아저씨처럼 더 가깝게, 더 쉽게 다가서게 만들었다. 드러난 외면만큼 내면도 그에 못지않은 것 같았다.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그는 상대방을 친근하게 무장해제 시키는 치명적(?) 무기를 갖고 있는 듯했다. 보통 환자들은 증세를 말하며 의사도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진단을 내려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지만 대개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정신의학 전공이라 그런지 달라 보였다.

그에게 많은 전공과목 중에서 왜 하필 정신의학을 선택했는가 물었다. 바로 돌아왔다. “할 게 없어서”라고. 한바탕 웃은 뒤 설명을 덧붙였다. “인턴 시절 몇 가지 경험을 했다. 다들 정신이상자들을 피하고 멸시하는 듯한 분위기에 묘한 연민이 느껴지더라. 내가 이들을 돌봐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병원 근무자들은 입원환자들을 푸대접하기도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과 더불어 참 안돼 보였라. 그래서 나라도 이들을 돌봐야겠다고 해서 선택했다.” 그의 인간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후회하신 적은 없으셨습니까? 세속적인 기준으로 돈 되는 전공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하셨을 법도 한데….”

“75년 의대 졸업할 당시만 하더라도 돈에 의해서 전공 선택을 좌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스승들한테도 그렇게 배웠다. 경제적 대가는 부수적인 문제였지, 우선 고려대상은 아니었다. 관심이 있느냐가 우선이었다. 그런 교육을 받은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지금은 후회되는 부분도 있다.(웃음) 돈도 안 벌리고, 개업도 안하고 얽매여 있으니…. 그러나 어느 순간 돈이 이 사회의 절대적 기준과 최고 가치가 돼 파워를 휘두르고 있었다. 우려스러웠다.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뭐가 존경스럽고, 일류고 하는 모든 가치가 돈에 의해 좌우된다. 인간상실 시대다. 금융위기로 인한 거품이 집값으로 빠질 게 아니라 정신적 거품도 변화가 오리라 본다. 아니, 와야 한다. 3,000년 전 공자가 한 말이 지금 하나 틀린 부분이 없지 않나. 돈 못 벌어도 내가 좋으면 되고, 그렇게 스스로 만족하며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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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트레킹 하면서.

지극히 인간적이었던 그가 환자에게도 지극히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정신 건강이 튼튼한 정신의학자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권유로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해서 의대에 입학했다고 했다. 봉사하기 위해 선택한 삶은 감성을 가진 의사로서 환자에게, 아니 의료계에서 평가받는 의사로 자리매김했다. 의사에겐 세 가지 무기가 있다고 한다. 메스와 처방약, 그리고 말이다. 의사들은 가장 강력한 무기인 말을 잘 쓰지 않는다. 환자(患者)는 한자에 나와 있듯이 먼저 마음을 어루만져줘야 하는 사람을 말한다. 누가? 바로 의사다. 모두 이 교수 같으면 환자들이 살맛나고 병도 빨리 나을 수 있을것 같았다.

그가 의예과에 입학한 69년, 동아리 모집 포스트를 보고 화우회에 가입했다. 중고교 당시엔 공부만 했지, 그림은 관심 밖이었다. 학창시절 억눌렸던 감정을 마음껏 화폭에 담았다. 그러나 그림은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빡빡한 의대 공부 일정으로 본과 들어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언젠가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간직한 채 유화도구들을 뒷방으로 물렸다.

의사 본연의 일에 충실하면서 세월은 흘렀다. 97년 일리노이주 시카고대학 의학교육 과정에 연수 떠났다. 공부하기 위한 3번째 미국행이었다. 이번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집을 얻어 생활했다. 마침 그 집 사위가 인디언으로서 독특한 감정을 지닌 화가였다. 말동무가 되어 많은 기법을 배웠다. 30여 년 전 뒷전으로 물려뒀던 그림에 대한 열정이 다시 솟구쳤다. 내친 김에 성인을 위한 그림코스에 아예 등록했다. 일주일에 두 번 과정이었다. 교장, 우체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열의가 느껴졌고 열심히 배웠다.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시간은 훌쩍 지났다. 벌써 귀국 날짜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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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30년 만에 되살린 소중한 추억의 끈이었고, 정신적 안식의 끈이었다. 귀국해서 집에 별도의 화실을 마련했다. 부인도 흔쾌히 승낙했다. 틈틈이 유화를 그렸다. 찍어온 사진을 바탕으로 화폭에 담았다. 많은 자연 풍광을 담아 그렸지만 히말라야에 대한 느낌은 남달랐다. 히말라야를 보는 순간, 강렬한 ‘그 무엇’이 다가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거대한 느낌이었다. 히말라야에 3번이나 트레킹 다녀왔다. 몽블랑, 킬리만자로, 중국 다꾸냥산도 갔다 와 산에 대한 느낌은 풍부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도 걸었다.

황량한 산은 인간에게 ‘원래 아무 것도 없었던’ 태초의 느낌을 전했고, 종교, 무속인들에게까지 영적인 느낌을 받게 했다. 자연의 풍광은 인간을 압도했고, 사상이나 이론 이전의 세계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표현대로 “나 같은 사람이 한번 당해봐야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자연의 위세에 인간은 미물에 불과하며, 오만하게 살지 말라는 교훈으로 들렸다.

사진으로 찍은 풍광을 산에서 받은 느낌까지 함께 화폭에 담으려 애썼다. 산에서 깜깜한 밤을 맞으면 밤이 까맣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밤하늘은 별이라는 모래를 깔아놓은 듯 밤이 많은지 별이 많은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밤의 색깔은 검은 색이 아니었다. 깊은 바다색이었다. 망망한 바다,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은 그런 무념무상의 색이었다. 이 순간은 사진도 찍지 않는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찍는 거다. 도대체 표현할 수 없고 느낄 수밖에 없다. 신이 만든 오묘하고 입체적인 색깔이다. 자연의 촉감과 소리, 시각이 일치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모든 현상은 전체를 알아야지 조화를 볼 수 있다. 조화를 캔버스에 옮길 때 피사체와 공간을 여하히 처리하느냐의 문제가 대두된다. 그 촉감과 소리, 눈을 되찾으려 상념에 빠진다. 결국 관계의 문제가 떠오른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면 균형이 잡혀 이상적인 그림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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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800킬로 순례길을 걸으며 외국인들과 함께.

관계는 중요한 팩트(fact)다. 팩트를 빠뜨리면 구성이 안 된다. 팩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웬만한 수준이면 볼 수 있고, 본 것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산이 주는 느낌, 팩트끼리의 관계 이상으로 감성을 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산이 주는 영적인 부분이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정이다. 화가에게는 그림에 담아야 할 혼인 것이다. 그는 이미 산에서 받은 영적인 느낌을 느꼈고, 그림에는 혼을 담으려 애쓰고 있다. 정신과 의사로서 그는 환자에게 인간관계에서의 정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타고난 인간성에 그림과 산을 통해 체득한 감성이 덧붙여져 있는 최적의 의사인 것이다.

산은 동적 명상이고, 좌선은 정적 명상이다. 명상은 정신건강에 도움을 준다. 동적 명상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적 건강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게 바로 등산이다. 걷기 등과 같은 운동만큼 공평한 것도 없다. 고생한 만큼 육체에 유익하다. 산은 덤으로 조금 더 준다. 걸어 올라갈 때 힘들지만 내려갈 때 육체적 건강에 덧붙여 만족감, 행복, 즐거움을 만끽하도록 한다. 우울증 치료에 등산만한 운동도 없다고 권한다. 깊은 호흡은 생리적 변화에 임팩트를 주고, 긴장을 완화시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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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 스스로도 조선일보 마라톤에 8년 연속 출전했다. 기록은 중요치 않다. 8년 연속 출전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을 꾸준히 가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육체가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다는 지론 때문이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면 자살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등산인구 증가는 자살 예방적 차원에서도 긍정적이다. 좋은 추억과 행복, 즐거움, 긍정적 기억을 많이 가진 사람은 외부 충격이 오더라도 견디는 힘이 있다. 그러나 단련되지 못한 사람은 극단적인 부분만 보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교수는 정신과 의사로서 자살예방협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만큼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환자들의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병원이름을 정신과 병원에서 정신건강병원으로 직접 바꿔 대학재단에 승인받기도 했다. 지금은 보건복지부에서도 정신건강과로 바꿨다. 잘못된 조그만 부분을 고치고 편견을 바로 잡는 의무와 사명감을 가진 이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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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랑과 추억이라고 강조한다. 다 정신건강 때문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별로 겪지 않는 건 이미 검증됐다. 사랑은 인간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산다. 문학, 학문, 경제도 사랑에서 나왔다. 가족과 연인, 자연과 꾸준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도 사랑이다. 사랑과 더불어 추억을 많이 만들라고 권유한다. 추억도 어려울 때 견디게 해주는 힘이다. 위기의 순간이나,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을 떠올리며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만든다. 사랑과 추억을 만들 것을 주문하는 정신과 의사, 그리고 그 의사가 좋아하는 산, 산을 담은 그림이 바로 이 교수의 모습이다. 그 속에 환자를 담고, 사회를 담고, 세상을 담는다. 따뜻한 정으로.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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